내 사랑 강남 싸가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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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 친구들이 오빠 보고 싶대.”
“사진 찍어서 보내줘?”
“왜?”
“보고 싶다며, 사진 보여주면 되잖아.“
“아니, (인간아)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그러자는 거 잖아. 언제 시간 돼?”
시간 안 되는데.
내가 바보냐?
괜히 그런 드립을 쳤겠니?
초록은 동색이요. 끼리끼리 노는 것이 보통인데.
그녀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건,
내 사랑 강남 싸가지 4명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여친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생각보단 쉽지 않은 일이다.
남중 남고 출신인 내가 가까운 사이인 여친까지는 괜찮지만,
처음 보는 여성 3명을 포함해서 4명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렵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의 기대 섞인 설렘도 있지만, 이상한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선 걱정이 있고, 불안까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친의 친구라면 비슷한 결일 것이니,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일단 친근감을 갖는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만나고 나서 날 평가할 것을 알기 때문에도 쉽지 않다.
“우와, 니네 남친 만나봤더니 사람 좋고 훈남이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여친도 기분이 좋을 텐데.
좋게 이야기 해주는 친구도 있겠지만,
친구 편에 선다고 대놓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서 관계가 엇나가게도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현명한 여성들은 친구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일단 참고한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당연히 친구들은 여친만큼 나를 잘 모르고, 우리 둘만의 관계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여친이 나에 대해 가장 잘 안다. 주관이 있는 친구들은 좋지 않은 말을 들어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내 친구의 여친에 대해 함부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정말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친구니까 의견이니 참고하라고만 이야기한다. 솔직히 내가 함께 살 여자도 아니고, 보면 얼마나 봤고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나.
사람과의 관계는 쉽다면 쉽지만,
오래되고 깊어질수록 복잡 미묘하며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기본 예의는 꼭 지키려 한다.
그리고,
그녀와 소개팅에서 100만 원을 썼으니,
그녀와 그녀의 친구 3명 도합 4명을 상대하려면 400 만원을 준비해야 하나? ㅎㅎㅎ
이전에 사귄 여친의 친구들을 다 만나도 금전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진 않았다.
100만 원도 준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전엔 여친과 데이트 하려면 10만원 정도만 들고 가면 되었던 것 같다. 특별한 날엔 그보다 조금 더.
여친의 친구들과 만나도 20만원만 들고 가도 그 안에서 다 해결되었다.
하지만 우리 여친님이 어디 보통 분이신가.
친구분들까지 한꺼번에 모시려면 거의 한 달 치 월급이 날아가는 건 아닌가.
그런 현실적인 걱정 속에,
전편 백화점에 이어 두 번째 전장으로 떠났다.
이래서 인생은 매일이 전쟁이라고 하나 보다.
이번 전장도 역시 강남이다.
그녀를 만나다 보니 분기에 한두 번 정도 가는 강남을, 이제는 거의 밥 먹듯이 간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서, 강남역과 역삼 쪽 뿐만 아니라,
학동, 청담, 압구정, 신사동 그리고 삼성역 등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휘젓고 다녔다.
정말 구석구석 이렇게 다양한 맛집들이 많나 싶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고, 밥 먹어야 하니 밥집이 몰리는 걸 실감했다.
맛집 여행 지수는 올라갔지만,
통장 잔고는 하향세였다.
역시 인생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잠실과 교대까지도 넘나 들었는데, 희한하게 사당 너머로는 잘 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강남, 송파, 분당 정도에 살고 있었다.
강남 특히 대치동 도곡동 집값이 너무 올라서,
자신들은 독립하며 잠실로 갔다는 말을 들으며 강남 3구라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도 역시 와인 파였다.
여친께서 날 배려한답시고,
"오늘은 오빠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우리 캐주얼한 곳으로 가자."
그렇게 말해서 간 곳도 크게 캐주얼하지 않았다.
조금 좁으면서 편안한 분위기라 그런가 했는데,
안심도 잠시, 나중에 메뉴를 보니 역시나 정말 오지게 바가지 씌우는 가격이었다.
강남 땅값이 얼마고, 임대료가 얼만데
라는 명분으로 참 장사 잘한다 싶었다.
그래도 고자 전 남친과 자주 갔다는 곳보단 그나마 캐주얼 했다. 다행히 조금 저렴한 편이었다.
(그녀의 X 편 참조)
그녀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먼저 맥주를 한잔 하면서 긴장을 풀고 있는데,
그녀의 친구 2명이 마침내 도착했다.
"잘 지냈어? 꺄아~ 넘 오랜만이당~~~"
"얼굴 왜 이렇게 예뻐졌어? 연애하더니 얼굴 좋아졌넹~ 남친이 잘 해주나 보당 ㅋㅋㅋ“
"오늘 옷 넘 예쁘당. 잘 어울려~~"
여자들만의 만남의 축포를 한참 동안 쏘아 올린다.
몇 분 동안 서로를 치켜 세워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전쟁에 나가기 전 사기와 텐션을 올려 주기 위한 군악대의 힘찬 연주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험난한 하루가 될 수 있겠다는 촉이 온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한 편의 긴 예고편을 찍더니 이내 날 본다.
"흠흠,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무척 어색하고 긴장되었지만,
첫인상부터 어쩜 이렇게 우리 여친하고 비슷할까 하며 신기했다.
머리 스타일, 화장하는 법 그리고 입는 옷까지
(심지어 같은 브랜드도 있었다. 보통 자주 보지 못하는)
"끼리끼리"라는 말을 새삼 느꼈다.
아무래도 서로 좋은 미용실과 헤어디자이너 정보, 화장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겠지.
그런데, 그것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너무 닮은 아버지와 딸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무지막지하게 생긴 아저씨와, 판박이 얼굴에 머리만 긴 딸이 다정하게 손 잡고 다니는 걸 보고,
신기했던 것처럼.
피는 못 속이는데, 그에 못지 않게,
어렸을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오래 보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라 온 친구답게 많이 닮아 있었다.
역시 인간은 선천적인 부분도 크지만, 후천적인 환경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인류학적 교훈의 실증을 여기서 본다. 책상에서 읽는 책도 좋지만, 사람은 사람과 부딪히고 세상을 주유하며 겪어 봐야 더 확실히 안다.
부족함 없이, 고생하지 않고 살아와서 그런지, 다들 딱 봐도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구김살 없어 보였다.
별 걱정 없이 살아와서 세상을 무척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대화를 하면 할수록 느껴졌다. 가끔 나오는 철없는 면까지도.
이미 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던지,
호구조사는 하지 않고,
"우리 친구 어디가 제일 예뻐요?"
"같이 만나면 뭐해요?"
"첫 키스는 언제 했어요? 꺄아아~"
등등의 시덥지 않은 질문들을 많이 했다.
한창 사회생활의 레벨을 높여가던 때라, 성심성의껏 답해주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점점 더 편해져 갔다.
특히, 우리 친구 ‘어디가 제일 예뻐요?“
라는 질문엔,
“그냥 다 예쁘고, 성격도 좋고 다 좋아요.”
라는 다소 성의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이 아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예쁘다는 말을 하며, 평소 잘 쓰지 않는 형용사와 감탄사로, 세심한 남자로 등극했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 여친의 눈빛은,
‘장하다, 내 새끼.
키운 보람이 있네.‘
하며,
던진 물건을 잘 물어오도록 훈련 받은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는, 애정을 담고 있었다.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서,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와 봤다는 이야기부터,
그 학교 남자들과 소개팅이나 미팅을 해봤다는 둥
친하지 않았을 때 하는 이야기를 마구 날렸다.
한 친구는 증권사에 다니고, 한 친구는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그걸 듣기만 하고 있기도 했다.
대화 속에서 한 친구는 아버지가 고위직 공무원이고, 한 친구 아버지는 은행 부행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내가 해외 출장을 다닌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어렸을 때 거기에 살았었는데 아버지가 해외 지사장으로 계셨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좀 더 듣다 보니 대단한 집 딸 자식들이었다.
내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우리 집은 중산층 중에서도 약간 아래여서,
집이 어려웠을 때는 어머니가 식당일 등을 하기도 하셨다. 전세도 겨우 벗어났다.
여친의 집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괴리감을 느꼈지만,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어렸을 때 공부 열심히 한 덕에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큰 회사를 다니니 그나마 이 친구들이 날 만나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나란 사람은 똑같지만, 만약 내가 고졸에 자장면 배달하고 있었으면,
이 친구들과 이렇게 밥과 술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소개팅 자체가 있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글픈 현실이네 라는 생각도 들면서,
보란 듯이 자신 있게 살려면 더 열심히 하고, 잘 나가고 돈도 더 많이 벌어야 겠구나
그렇게 생각의 방향이 흘러갔다.
밝은 친구들답게 다들 리액션이 좋았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진짜요?"
"정말요?"
"아하하하하, 재밌어요."
그렇게 깔깔깔 웃으며,
더 힘내서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 계속 많이 해봐.
쑥맥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말 잘하네.
라고 북돋아 주는 듯 했다.
그런데, 사실 더 웃긴 건 한 친구의 이름이었다.
남자 이름이었는데,
실명을 공개하기 보단, 다른 남자 이름으로 이야기 하자면,
"김영식" 이었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네? 뭐라구요?"
"김영식이예요. 남자 이름이라 이상하죠?"
'저 정도면 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저희 언니들 이름은 영수, 영철이예요.
아들 낳을 때까지 딸들 이름을 아들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고,
작명하시는 분이 이야기해서 그렇게 지었대요."
요즘은 남아 선호 사상이 많이 옅어졌지만,
예전 어른들은 그런 것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강남의 으리으리한 빌딩과 부잣집 이미지 뒤에는,
무당, 점쟁이 등에 빠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냉철하고 남을 잘 믿지 않을 것 같은데,
희한하게 용한 무당이 있다고 하면 가서 점 보고 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종교적인 부분도 있긴 한데, 그건 잘못 이야기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넘어간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나에게 같은 회사나 같은 학교 출신 남자를 소개 시켜달라고 한다.
"찾아볼게요. 어떤 타입 좋아하세요."
짧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술 한잔 들어가서 그런지,
연예인에 빗댄 아주 디테일한 이상형부터, 이전에 자기가 만났던 남친과의 썰까지.
잘 들어주니 아주 밤을 샐 기세였다.
마치 날 자신의 절친 혹은 남친으로 생각한다 싶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절친의 남친이긴 하군 ㅎ
이래서 영화에 나온 강남 부잣집 아줌마 역할 대사 마냥, 연결 연결해서 네트워크에 들어가면 쉽게 믿고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그 친구가 너무 원맨쇼를 하며 불타 올라, 길게 이야기하고 멀리 나간 것 같아,
여친이 자기가 봐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말려서 겨우 접었다.
요는,
"잘 생기고, 키 크고, 몸 좋고, 학벌 좋고, 직업 좋고, 집안 좋고, 성격 좋고, 그러면서 유머까지 장착한
암튼 다 좋은 남자"
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오빠, 괜찮은 사람 있어?"
'있겠냐?
내 주위는 고사하고, 그런 사람이 현실에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있어도 그런 남자가 이 친구를 좋아할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이게 다 진심이라면 그냥 혼자 사는 쪽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싶었는데,
말은 하지 않았다.
많이 꾸며서 예쁜 편이라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어서 그런지 약간 남성적인 면이 있었다.
가끔 여성미보다는 남성미가 좀 더 느껴지는 면이 있어서 신기했다.
역시 이름 가지고 장난 하는 것 아니다. 이름 막 짓는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개팅을 시켜줬는데,
소개팅한 남자 이름은 "조영식" 이었다.
이것도 한 편의 코미디였다.
한 마디만 하면,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영식’ 씨, ‘영식’ 씨 하는데, 그것부터 웃겼다. 그래서, 분위기는 좋았다.
결국 결혼까지 했는데, 청첩장에 신랑 조영식, 신부 김영식이라고 써 있는데 왜 그렇게 웃기던지 ㅎㅎㅎ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타 아니면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거다.
요즘은 외국처럼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례 선생님이 신랑 조영식 군과, 신부 김영식 양이 하면서,
스스로도 웃겼던지 ‘풋’ 하고 웃음을 참으며 주례를 겨우 마무리했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 대학 교수라는 분도 그 상황이 재미있었을 거다. ㅎㅎ
사람 이름 때문에 웃었던 걸론,
협력사 고위 임원인 전무님의 명함을 받은 이후로 이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성은 ‘이’요, 이름은 ‘상한’ 전무님이셨다.
이상한 전무님을 보며 나도 웃음을 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그 무뚝뚝한 경상도 싸나이 우리 부장님도 힘들어 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내 필명이 이상 이라는 게 또 다른 함정. 이상한 작가는 되지 말아야지 ㅎㅎㅎ
그렇게 3명의 강남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목이 나가려 하고 있었다.
'집에 언제 가지? 아,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
싶었을 때,
늦게 온다던 마지막 친구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밝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아래가 다음 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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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첫 회부터 보실 수 있는,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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