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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pr 07. 2023

그녀와 달콤 살벌한 쇼핑 (3)

내 사랑 강남 싸가지 (16)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24


결국, 그녀가 200만 원이 훌쩍 넘는 그 옷값을 계산했다.


지금도 입고 다니는 그 옷.


그 브랜드를 아는 여러 사람들은 꼭 내가 그 옷을 입고 다니면,


“오~ A 브랜드~ 언제 샀어?“


이렇게 장난을 친다.

한 두 번 당해본 것이 아니라, 이 브랜드를 모르고, 아니, 옷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 이게 진짜 비싼 브랜드의 옷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될 정도다.


기분이 묘했다.


전에 사귄 다른 여자친구가 옷을 선물로 사준 적은 있어도, 티셔츠 정도였다. 코트를 사줘도 30 만원 정도였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고 생일 때 조금 무리해서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게 그 정도였다.


그것도 사실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 옷은 입고 다니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사실 난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어렸을 적 생일 파티 같은 걸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생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실 때만 ‘아, 생일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생일 선물을 받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이라고 받으면 당황하고 부담으로 느끼기도 했을 정도다. 확실히 ‘어린 시절 경험이 이렇게 무섭다.’


지금은 그나마 선물 고르는 재주는 경험이 쌓여서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흙수저의 기본이 어디 가겠나?


공부는 조금 했어서 공부 꽤나 하면서 잘 사는 친구들의 생일에 초대를 받곤 했다.

빈 손으로는 못 가니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을 잘 고르려는데, 가뜩이나 적은 돈 내에서,

내 기준에서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하려니 어려웠다. 그렇게 준비해 간 선물을 꺼내서 막상 줄 때,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과 비교하면서,


‘앗, 이게 아니구나, 잘못 샀구나.‘

하며 뜨끔했던 적이 있었다.


마치 도시락을 싸 가서 친구들과 같이 밥 먹을 때, 비교되는 초라한 반찬을 보여주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가난은 그렇게 혼자 있을 땐 실감이 잘 나지 않다가도, 상대적으로 비교하게 되면 적나라하게 피부에 와 닿곤 했다.


선물도 받아 본 사람이 잘 고르고 하는데, 그런 일이 적다 보니 젬병이었던 거다. 계속 다니며 선물을 준비하다 보니 그것도 조금 늘긴 했다.


잘 살고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집 어머니들은 확실히 자녀에게 자신감도 심어주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라고 그렇게 좋은 집에 초대해서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걸 좋아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인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아셔서 그랬을 거다.


물론, 친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진정한 친구 3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분들은 어렸을 때 좋은 동네에서 사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잘 될 가능성이 높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잘 나가는 친구들끼리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특별한 친분으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걸 잘 알아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어떤 조직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 잘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고등학교 출신들이 잘 나가는 걸 보며 그런 걸 실감했다. 그래서 강남엔 불나방처럼 다들 모여 들어, 불패일지도.


여친에게 주는 선물도 정성을 담아 특기 중 하나인 그 친구 그림도 그려주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그녀도 좋아하지 않는 친구 중 하나였다.


처음엔,

“우와, 오빠 그림도 잘 그리네.”


하다가,

“근데, 이게 끝이야?”


라고 실망감을 내비치곤 했다.


그러니 바보 소리를 듣지.

그림과 함께,

그녀에게 필요한, 그녀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를 잘 봐뒀다가 같이 주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반지나 목걸이 등 악세사리 아니면 그녀가 좋아하는 향수 같은 것이라도 함께 선물하는 것이 좋았다. 잘 모르겠으면 그녀에게 없는, 그러면서 흔하지 않은 명품백을 선물하는 게 답이다. 물론 비싸다. 역시 모르면 돈이 더 든다는 진리.


그렇게 잘 준비해야 센스 있는 남자에 등극할 수 있었다.


전에 한번 이야기한 노총각 형님처럼, 관심 있는 여자가 과자 먹고 싶다고 한다고, 곧이 곧대로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선물하면 보통 그냥 out 이다.


순수하게 고맙다고 할 친구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전에 받아 본 선물, 이벤트가 있으니 비교하게 된다. 크고 싼 선물보다, 비싸고 작은 선물이 좋다. 들고 다니고 보관하기도 편하다. 즉, 비싼 작은 과자에, 고가의 반지나 목걸이 혹은 하다 못해 귀걸이이라도 선물하는 걸 더 좋아했다.


그렇게 사람은 경험을 통해 깨닫고 세상에 적응해 간다. 즉, 데어봐야 정확히 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엔 조금씩 익숙해졌다.


선물을 받은, 기뻐하는 구김살 없는 다리미 친구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누군가의 생일인 걸 우연히 알게 되면 케잌을 사가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먹지 못한 생일 케잌을, 친구나 동생들 혹은 지인들의 생일을 챙겨주며 함께 실컷 먹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축하의 뜻도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혹은 애써 외면했던 어린 시절 케잌 못 먹은 한을 그렇게 푸는 것일지도.


케잌 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나는데,

우리 잘난 여친님은 딸기 아니면 망고가 들어간 호텔 케잌을 그렇게 좋아하셨다.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거다. 딸기 케잌은 어느 호텔이 유명하고, 망고 케잌과 빙수는 어느 호텔이 유명한지.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를 통신사 할인해서 사 먹던 나였기에, 어떤 날인가 여친과 기념일에 이 케잌을 사가니 이런 말을 들었다.


“오빠, 애도 아니고 누가 파리바게트 케잌을 먹어?”


허허허, 그럼 그런 케잌 드시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은 죄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건가?


어렸을 땐 입도 대보지 못한, 그런 케이크를 비하 하니 오기가 생겨서 인스타에서 수제 쌀 케잌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서 케잌을 사서 갔다.


보통 프랜차이즈 빵집 케잌이 2-3 만원 정도라면,

그 곳은 3-5 만원은 정도여서 큰 맘 먹고 사갔다.


두 배 가격의 케잌을 사간 나.

돌아온 대답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빠, 맛있다고 작정하고 사온 게 이거야? 진짜? ㅎㅎㅎ“


“허이구, 그럼 진짜나 가짜나, 그럼 담에 케잌 니가 사오셩.“


“알았숑”


그러고, 사온 케잌이 the famous (그 유명한) 호텔 케잌이었다.


맛을 봤다.


히야, 돈이 좋긴 좋구나.

맛있긴 열라 맛있네.


“이거 얼마야?”


“12만 원”


크하하하하하

진심 졸도할 뻔 했다.


1-2만 원짜리 케잌도 돈 없어서 못 사 먹고 생일 파티 한번 못 해본 인간이,


부잣집 여친 만나서 12만 원짜리 케잌을 다 먹어보네.


‘그런데, 넌 진짜 저 케잌 한 판 먹는데, 12만 원을 쓰고, 그게 편하게 목으로 넘어가니?’


묻고 싶었다.


와~ 정말 인생길 걷다 보면 이 꼴 저 꼴 다 본다더니,

우리 예쁜 여친 소개해 주신 부장님 덕에 (오랜만에 등장. 일명 악의 축. 1회 참조) 세상 구경 제대로 합니다요.


케잌 하나로도 그런 인간이 나인데,


그런 인간이 생일도 아닌데도, 이런 고가의 선물을 여친에게 생전 처음 받아 보니,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오빠, 이 옷 오빠한테 정말 잘 어울린다.

잘 샀어. 헤헤

회사 갈 때 꼭 입고 다녀~"


기쁘게 웃는 그녀를 보니, 머릿 속에 여러 생각과 감정이 혼재했다.


얘는 뭘 보고 내가 좋다고 사귀고,

이런 고가의 옷까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선물해 줄까?


이런 걸 진짜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었다.


‘나중에 헤어질 때 돌려달라고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렇게 선물을 받고도 웃지 못하는 상태로,

걸어가는데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가 보였다.


"히야, 이거 예쁘다."


왠지 이번엔 내가 사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맘에 들면 사.

오빠가 사줄게."


"아니야, 먼저 우리 좀 보자~

우리 백일 되어가는데 커플링 하고 시포~"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곳은 유명 브랜드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엄청 비싼 곳은 아니었다.


물론, 예전에 커플링 하면 20만 원이었지만,

여긴 70만 원이어서 비싸긴 했다.


그래도, 그녀가 구입하는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 이 친구가 반지는 상당히 저렴한 걸 보네.

싶었다.


나도 이제 점점 미쳐가는 건가. 커플링 70만 원이 보통, 그 정도 하지. 이런 생각이 든다니. 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신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러면서 여러 반지를 구경하고, 끼워도 보고,

더 가까워지는 것 같고 참 여러 갈래의 기분이 느껴졌다.


"오빠, 담에 우리 100일에 저 반지 하자.

맘에 들지?"


"웅웅, 그러자."


"근데, 저 반지로도 괜찮아?"


"웅, 괜찮아.

어차피 결혼반지는 티파니로 다시 하면 되니까."


아, 티, 티파니.

소녀시대 티파니가 아니다.


잘은 몰랐지만, 해외 출장을 같이 갔던 동료가 결혼을 준비한다며 그나마 면세점에서 사면 조금 싸다며, 산 그 티파니 결혼 반지.

얼마냐고 물으니 380만 원이라고 했던, 아침 먹고 싶은 그 곳

(‘타파니에서 아침을’ 참조)


커플링이라곤 종로 금 도매 상가를 떠올렸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색한 비싼 코트를 입고, 티파니를 생각하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자신의 할 말만 계속 이어갔다.


"이건 약혹 반지 겸해서 하고, 편하게 끼고 다니자, 오빠양

이건 내가 사줄 테니깐, 결혼 반지는 오빠가 정식으로 프로포즈할 때 사줘~ 아라찌?"


반지는 하나만 하면 되지 편하게 끼고 다니는 스페어 반지까지 하는구나.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당시엔 그냥 반 포기 상태로,


’예에, 그렇게 하세요.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이런 분위기였다.


사람은 역시 쎈 걸 맞아 봐야 면역이 생긴다고 했던가.

이 친구를 만나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지, (특히, 이 백화점에서)

이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만난 여친들이 하는 행동들은 거의 애들 장난으로 보였다.


어쩌면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평생을 함께 할 여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여자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놀라지 않게 쎈 예방주사를 맞은 것 같다. 상당히 앓았지만 다행히 살아는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부자들의 습성 비슷한 것도 알게 되었다.


망나니처럼 펑펑 돈을 쓰는, 정신 못 차리고 사고까지 치는 2세들도 있긴 하지만,

교육을 똑바로 받은 2세거나 아니면 무일푼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불린 부자들은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재벌이 뭔지 아니?"


"돈 많은 사람."


"아니, 이상할 정도로 자기 돈 안 쓰는 사람."


이라는 말이 있다.


그랬다.


주변에서도 보고, 뉴스 등에서도 보면,

자기 돈은 악착같이 푼돈도 아끼면서, 법카는 잘 긁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여친에게 회사 법카를 줘서,

그 여친이 백화점에서 명품백 사고,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등

회사 업무 목적과는 너무 다르게 펑펑 쓰는 바람에 회계 처리에 골머리를 썩인다는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왕왕 접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잘 밝히지 않는다.


늘 수수한 차림이라 잘 몰랐는데, 지방 어느 도시에서 손 꼽히는 부자였던 친구를 보면,

명품 표시가 너무 티 나는 것은 촌스러워 잘 입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


돈 많다는 것 남들이 알아봤자, 밥 사달라, 돈 빌려달라 귀찮은 일들만 있다는 거다.


심지어, 자기들끼리는, 특히, 가족들끼리는 어디 가서 집에 돈 있다는 이야기는 남들에게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니.


참, 난 그렇게 있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1/N이 익숙하고, 산다는 말도 잘 안 하고, 어떨 땐 한발 더 나아가 인색하게 구는데,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어떤 것에는 전혀 아끼는 것이 없기도 하다.


우리 여친도 밥은 남자가 사고, 커피는 여자가 산다는 원칙이 확고하고,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식은 확실하긴 했다. 그래서 고생을 했다.


그런데, 사귀는 기간이 일정 기간 지나고,

나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것들이 쌓이고, 관계가 깊어지니 이제는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잘해줬다.


"이것 필요하지 않아? 저것 필요하지 않아?“


"내 것 사면서 오빠 것도 같이 샀어.

오빠가 하고 다니면 멋있을 것 같아서 샀어.

오빠 챙겨주고 싶어.“


이런 식이었다.


금액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깜짝 놀랄 정도의 고가의 선물도 꽤나 자주 받았다.


조금 부담스러우니 이제 사지 말라고 하니,

청개구리마냥 더 사 재꼈다.


관계가 깊어지면 상대방을 더 생각하게 되고 챙겨주게 되는데,

그러면 챙김을 받는 난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게 보통 맞다.


그런데, 여친의 챙김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불편해지는 나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달 카드값은? ㅎㅎ


지금은 옛날 일이라 추억이고 웃음이 나왔지만,

당시엔 카드 명세서를 보면 당연히 있던 웃음도 싹 사라졌다.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34



아래 첫 화부터 보실 수 있는,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매거진입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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