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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pr 04. 2023

그녀와 달콤살벌한 쇼핑 (2)

내 사랑 강남 싸가지 (15)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22



그녀와 백화점 쇼핑 중 하이라이트는,

가전 제품과 그릇 등 주방 용품을 보러 다닐 때였다.


먹거리를 사러 갈 때도, 같이 밥 해 먹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가전 제품과 주방 용품 등 생활 용품을 보러 가면 왠지 결혼을 준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팔짱을 더 꼭 끼는 것 같은 건 단지 내 기분 탓이었을까.


뭐가 이쁘다, 어떤 게 좋다.

막 이야기하는데 옷 살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알콩달콩 재료 사다가 음식 만들어서, 저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 (plating) 해서,

저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먹으면 맛있긴 하겠다.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밥 먹다 말고, 서로 먹여주다 입맞춤 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다, 백허그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신혼 때는 시도 때도 없다는 말을 곧 실현시킬 기세였다.


쇼파를 보면서도 아, 저기 앉아서 같이 영화 보다가도, 헤~


“오빠, 뭐 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나를 그녀가 깨웠다.


“아니야 ㅎ“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야한 생각 했지, 또?“


앗,

어떻게 알았지?


매일같이 연락하고 만나고,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붙어 있다 보니,

가끔 나보다 여친이 나를 더 잘 알고 있을 때가 있다.


나만의 모습,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마저도 잘 캐치했다.

특히, 앞만 본다는 단순한 남자보다는,

섬세하고, 앞뒤 좌우 모두 본다는 여자가 확실히 관찰이나 캐치가 빠르다.


입 헤 벌리고, 침 흘리며, 멍 때리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정도면 다 아나? ㅋㅋㅋ

모르는 게 바보일지도 ㅎ


암튼 그녀의 하얀 피부와 고운 살결,

그런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점점 더 과감해지는 말과 자세는,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낮져밤이'

라고 하나.


보통 낮에는 저 자세로 순한 양이었다가,

밤에는 있는 힘껏 한 마리 늑대로 돌변해서,

그녀 위에서 그녀를 만족시켜 줄 때 나 또한 거칠어졌다.


그런 장면이 낮에도 머릿 속에 떠오를 때도 있었고,

며칠 못 보면 밤에도 나왔다.


건강한 청년이구만.

좋게 이해하고 이만하고 넘어가자.


로맨스 수필이지, 에로스 소설은 아니니까.




그 생각에서 빠져 나오니,

이번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공주님이 밥은 할 줄 알까?

아니 라면이나 자기 손으로 끓일 줄 알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쟈기, 음식은 잘해?”


움찔


나의 짧은 질문이 무슨 표창 마냥 꽂혔는지,

움찔움찔하면서 동공 지진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내가 맞은 총알을,

이제 내가 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라면 정도는 끓일 줄 알아.”


‘그것도 못 끓이면 사람이냐?

물 끓이고 면 넣고 스프만 넣으면 끝인데.‘


(라면 조리에 진심이신 분들께는 죄송 ;;)


“글쿠나.

다른 건 할 줄 아는 것 없어?“


뭐라고 엄청 길게 말했는데, 다 기억나진 않고,

결국,


‘나 음식 못해’

였다.


그냥 못하면 못한다고 짧게 말하지,

그렇게 말하긴 싫어서인지 이리 저리 돌리면서 긴 시간 말하는 게 귀여웠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었겠니?

당연히 못할 거 알고 물었어, 자기야


요즘 음식 잘하는 여자가 얼마나 있겠니?

다들 귀한 집 딸들이고,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 다니고 놀고, 이것 저것 하느라 잘하는 애가 드물어.


시집 갈 생각 없는 애들도 많고, 간편식에 뭐에 다 나왔는데 뭘 그렇게 힘들게 만들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요리를 그렇게 하고 싶겠어.


진짜 요리 좋아하고, 어머니가 계속 시키는 친구들이나 하겠지.


그러니 요리 잘하는 남자 셰프가 인기 아니겠어?

내가 어수룩해 보여도 알건 다 안단다.

우리 이쁜 자기하고 엮여서 이러고 살고 있지만 ㅋㅋㅋ


"그럼 신부 수업하려면 요리 학원 다녀야 겠넹?"


"오빠가 다니면 되지!"


오호라 역공!


"그럼 같이 다니자."


"시러, 난 남이 해주는 밥이 맛있어."


'그건 다 마찬가지거든요. 아가씨야.'


보통, 이런 대화를 하면,


"나 음식 잘해. 맛있는 것 해줄게."

라는 달달한 말을 남자는 기대하는데,


현실은...


나중에 해주는 것 잘못 먹다 보면, 이거 계속 먹다 보면 나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들 수 있다.


못 해도 먹어줘야 는다고 하는데, 음식 느는 걸 확인하지 못할수도...


아무래도 이 친구에게서 밥 얻어 먹긴 글렀다는,

슬픈 예감이 들면서,


'나라도 요리 학원에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진심 들기 시작했다.


아니면, 내가 밥 먹자고 식당을 차려야 하나 흐

(소설 잘 되어서 베스트 셀러 되고, 식당 차리면 구독자님들 초대하겠슴다 ^^

식당 이름은 James & Restaurant 입니다. 미리 선점 예고합니다~)


누구라도 한 명은 밥을 해야 둘이 먹고 살고,

애를 낳아도 먹일 것 아닌가.

사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갑자기 회식 때 고기를 먹고 불판에 볶음밥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회사 아저씨가 떠올랐다.


"와, 왜 이렇게 잘하세요?"


이렇게 물으니 대답이 재미있다.


"안 하면 집에서 맞아."


그 아저씨는 농담이라고 한 이야기 같은데,

웃는 모습이지만 왠지 진짜 같고,

남일 같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지만, 역시 밥 잘하고 말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놈의 돈, 돈, 돈!


나의 기분 좋은 상상을 여지없이 바사삭 깨지게 만든 건 역시 가격이었다.


그녀가 이건 좀 괜찮네 하는 쇼파는 300만원이 넘었고,

우와 이거 맘에 들어하는 건 1000만 원 가까이 되는 것도 있었다.


비싼 게 좋긴 좋아 보였다.


가전 제품도 디자인을 가미한 최신형 냉장고나 TV는 아시다시피 200-300이 기본이고,

크고 좋은 것은 훨씬 더 비싸다.


갑자기 적극성을 보이는 그녀에게 강아지처럼 끌려가 이것 저것 다 보고 있으니,


매장 직원 분이,


"결혼 준비하세요?"


라고 묻는다.


아, 짧지만 강렬한 멘트.


'네'라고 얘기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아니요'라고 하자니 그녀가 싫어할 것 같고.


모른 척 '네'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견적을 내보고 나니,

그것 또한 결국 나를 안드로메다로 꽂아버리려는 상술임을 알았다.


"가전 다 하시면, 신혼 부부 특별 세일 몇 백 할인해 드려요. 서비스 상품도 있구요.

역시 안목이 훌륭하시네요. 좋은 제품들만 고르셔서.

다해서 딱 5000만 원입니다."


크아악~


500만 원이 아니고, 5000만 원!

1억의 반이란 말이냐!


그냥 서비스 상품인지 뭔지 안 받고, 그만큼 돈 빼주면 안될까?


진심 눈이 튀어 나올 뻔 했다.

안 그런 척, 담담한 척 했지만,

손이 덜덜덜 떨렸다.


그녀가 자기는 무조건 호텔에서 결혼할 거라고 말하길래 알아봤더니,

괜찮은 호텔은 최소 5000만 원이었다. 비싼 곳은 억이 넘었다.


가전과 결혼식 비용만으로 1억이군 허허허

내 통장에 얼마 있더라 흐


이러니,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결혼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고 하더니,

실감을 했다.


아니, 이래서 결혼을 포기하는구나 싶었다.


당장 그 돈을 쓰지 않아 다행이라며,


다음에 결혼식 날짜 잡히면 다시 올게요

라고 너스레를 떨고 탈출에 성공했다.


이건 집 사려고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게 아니라,

결혼식 자체를 위해서 신용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쩝


남자가 집을 해오고, 여자가 그 집을 채운다는 말이 있는데,

솔직히 강남에 좋은 집을 살 여력도 안 되었다. 그건 대출을 받아도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렇게 여러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녀가 날 부른다.


"오빠, 저것 좀 보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야."


주방 냄비였다.


그래도,

저건 뭐 얼마 안 하겠지.


하고 갔다.


냄비 하나에 50만 원이었다. 허허허


"요즘 이 브랜드 엄청 인기 좋은 것 아시죠?"


몰라요.


"이거 세트로 하시면 300에 드릴게요.

지금 행사하실 때 싸게 들여가세요."


푸하하


냄비 몇 개 모아 놓은 걸 300에 가져가라고?

그게 싸다고?


싸다구 맞을 소리를 ㅎㅎㅎ


하나에 몇 만 원 정도 할 거라 예상하고 그나마 안심하고 보았던,

이 냄비에서 완전히 멘붕이 와 버렸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리며, 매장 내 의자에 잠깐 앉았다.


"오빠 괜찮아?"


안 괜찮아.


물어보나 마나 같이 살면 저런 고가의 냄비를 살 걸 알기 때문에,

아예 묻지도 않았다.




"아, 오빠 옷 좀 보러 갈까?

오빠도 회사 다닐 때 좀 좋은 옷 입고 다녀.


처음 만날 땐 깔끔하게 입고 오더니,

점점 편한 옷만 입더라, 이제"


어이구, 이제 자기 볼 것 다 봤다고,

내 생각해 주는 거야? 고맙다, 고마워.

역시 내 여친 밖에 없다~


몇 백, 몇 천만 원의 향연 속에 이제는 그로기 상태가 되어,


‘그래 날 죽여라’


반 포기상태로 끌려 갔다.


"오빠 이 옷 오빠하고 어울리겠다."


코트였는데 딱 봐도 좋아 보였다.

모르는 브랜드였는데 비싼 게 티가 났다.


"한번 입어 봐~"


"됐어, 니 옷 사.

난 회사 다니면서 이것 저것 사서 괜찮아."


"아니양, 한번 입어 봐아

딱 봐도 오빠 옷이양"


그랬다.

안감은 부드럽고, 착용감은 가벼우면서 귀티가 나는 옷.


소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비싼 옷을 많이 사 본 그녀답게 안목이 있었다.


한 50만 원 하려나.

200만 원이 넘었다. 허허허


"맘에 들어?"


맘에 안 들겠니?


딱 봐도 비싸고 좋은 옷인데 비싼 게 돈 값 하기는 하는 것 같다.


"괜찮은데, 좀 더 둘러보자."


"뭘 둘러봐. 아까부터 계속 둘러봤는데, 이게 제일 나아.

맘에 들지?"


"이거 계산해 주세요."


사색이 된 나를 뒤로 하고,

그녀가 계산대로 향했다.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25



아래가 첫 화부터 보실 수 있는,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매거진입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대문 사진 : 네이버 미녀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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