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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pr 13. 2023

그녀의 친구 (2)

내 사랑 강남 싸가지 (18)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34


마지막으로 온 친구는,

무척이나 예쁜 친구였다.


한 눈에 봐도 미인이었고,

도도하면서도 스타일리쉬 하다고 해야 하나.


그것은 과한 꾸밈이 없는데도,

단정하면서 멋이 있는 모습이었다.

옛말 중에 ‘기품’이 떠오를 정도였다.


여성도 남자를 볼 때, 옷 잘 입는 남자가 좋다고 하지만, 몸 좋고 잘 생겨서,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잘 어울리는 남자가 멋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굳이 비싼 옷은 아니더라도, 깔끔한 옷만 잘 어울리게만 입었는데도, 명품 옷으로 도배한 여성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런 걸 보고 속된 말로,

‘꽂혔다’고 하나.


개발에 주석 편자라고, 몸에 이런 저런 비싼 명품을 걸치고, 성형에, 화장에, (끝판왕 조명 선택까지)

갖춰도 싼티가 나는 경우가 있다.


자기 돈 쓰고 스스로 만족하는 거라 그런가 보다 하지만, 겉만 그럴싸하지, 대화를 해보면 쓰는 단어에서부터 물씬 싼 냄새가 풍기는 경우가 있다. 비싸지만 역한,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처럼. 나와 맞지 않다.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수수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온 것 뿐이었는데, 들어올 때부터 빛이 났다.

가게 안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일제히 쏠리고 있는 걸 느낄 정도였다.


보는 눈은 비슷하다. 연애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괜히 옥순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으로 표가 몰리는 게 아니다. 때로 예외도 있지만, 그건 옥순이 못 생겼거나, 다른 친구가 더 예쁘고 매력있기 때문.


강남 성형 미인이 많은 시대를 살다 보니,

나도 이제 그런 친구들을 보는 눈이 생길 정도였다.

뉴스에서 수술실이 거의 작업실 마냥 의사가 방을 넘나들며, 번갈아가며 시술을 하는 걸 보았는데,

공장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수술하는 기계. 그 기계가 만든 비슷한 제품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개성 있고 매력 있는 이성으로 보기 어려웠다.


외모지상주의에 힘입어 강남 다비드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든 성형외과의 활황으로 쌍꺼풀과 보톡스는 기본이 된 시대라, 점점 더 그런 경향은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성형 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성형외과의 실력이라고 광고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자연스럽고 착한 이미지의 여자 후배가 다들 성형하니까 본인도 예뻐 보이고 싶어서, 큰 돈 들여 성형하고 나타난 적이 있다.


‘아, 수술을 왜 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생긴 대로 살지.

수술 전이 훨씬 나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 딴엔 수술 받느라 고생하고, 큰 돈 들였는데,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심하겠나.


그 새로 온 친구는 달랐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는데,

다른 친구들과는 기분이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른 친구들과는 몇 시간을 수다를 떨어도, 편하기만 한데.


한마디로 이성적으로 불편했다.

본능적인 끌림과 호감 가는 예쁜 여자를 볼 때 느껴지는 그런 기분.

머릿 속은 혼란해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허둥지둥. 평소 안 하던 실수를 하고,

그렇게 말 잘하던 인간이 말을 더듬거나, 말을 못 하기도 한다.


“원래 말이 없으세요?”


말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기도 하거니와, 실수에 대한 걱정이 산만큼 쌓아 올려져 있어서 그렇다.


다른 친구들이야 ‘서로 아니면 말지 뭐’ 하고

더 자연스럽게 나가는데, 호감이 가고 놓치고 싶지 않으면 오버를 하거나, 반대로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더 역효과를 부른다. 이래서 인생은 묘하다.

잘해야 할 때, 부담감으로 평상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본연의 실력 발휘조차 못하다니.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

어떤 상황이라도 평상심이 중요하다.


이런 친구를 소개팅에서 만나면 보통 이렇게 좋지 않은 증상이 찾아온다.


‘I2C, 오늘따라 내가 왜 이러지?

더 잘 해야 하는 날에 하필.‘


그러면서 더 해저드 (hazard, 위험) 라는 늪에 빠져들어, 소개팅을 시원하게 말아먹어 버린다. 그래서 그런 날은 집에 가는 길에 막국수 집에 들러 국수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 말아먹은 김에 제대로 말아버리려고 ㅎㅎ


다행히 소개팅은 아니고, 여친의 친구와의 만남이니 사귀려고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잘 보이려는 정도에 그치는데도 이러고 있다.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재채기처럼 호감의 감정은 감추기 힘들다.

즉, 부지불식 간에 티가 났다.


유학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세련미가 넘쳤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마저 그랬다.


어떤 친구는 머리를 만지는 걸 보면,


‘뭘 저렇게 머리를 계속 만질까? 정신없게.

머릿결 좋아지라고 저러나? 두 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만지거나 묶는 게 여성미를 보여주는 거라고는 하던데.

하지만, 문제는 머리가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녀는 흘러내리는 머리칼마저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마터면 정리해 줄 뻔.


정신 좀 차리시고.


말 또한 시끄럽지 않게 조용 조용히 이야기 하는 데 귀가 자동으로 기울여졌다.


시끄럽게 이 물건 좋으니 사라는 외침의 홈쇼핑은 채 5분도 보지 못하는 나였다. 텐션 끌어올려라는 말은, 늘어지지 말고 긴장을 유지해서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이 주목하게 하라는 이야기일 텐데.

보통 난 그런 말이 나오면 그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보던 채널도 돌린다.


그 분들도 주목을 받고, 끌어 들여서 보는 사람이 지갑을 열고 물건을 사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시니 그런가 보다 한다. 하지만, 내 입장과 취향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서로 아니면 속 편하게 보지 않는 걸로 ^^;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서로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여유 있는 대화를 추구하는 게 내 이상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이 웃으며 깔깔거려도 가끔이고, 정도가 있다.


이런 남녀관계의 예측 불가를 직간접으로 알고,

심지어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친구들은,

이런 예쁜 친구들을 남친에게 잘 소개시켜 주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댓글에 보니 여성 분들끼리도 예쁜 친구는 남친에게 소개시켜주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여친 놔두고 예쁜 여자에 혹하는 놈이 당연히 나쁜 놈이지만,

본능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당연히 그걸 조절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을 아는 인간이 해야 할 도리인데, 솔직히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은 사건 사고가 그것을 증명한다.


‘견물생심’ 이라고 한낱 물건을 봐도 마음이 생기는데,

자신의 이상형을 본다면 사실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마음이 동한다는 말이 와 닿기도 한다.


(필명을 ‘이상’으로 쓰니 오늘도 이상 이라는 단어가 많이 튀어 나온다 ㅎ)


아예 안 보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원천 봉쇄 내지는 차단!


그래서,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라는 말이 막장 드라마에서 중요한 대사로 나올 정도 아니겠나.


여친의 다른 친구들은 그냥 처음 봐서 어색했고,

한 잔 들어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금방 편해졌다.

약간 남자 친구 녀석들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늬만 여자라고나 할까. 원래 그게 보통의 여친의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이 예쁜 친구에게는 계속 긴장되고 불편했다.


위험 신호가 와서, 빨리 여길 떠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김건모 아저씨의 ’잘못된 만남‘ 을 현실에서 내가 찍을 순 없었다.


여친이 뭐라고 하는데, 머릿 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웅웅“


대답 봇이 되어서 끄덕이며 건성건성 대답만 하니,


“오빤 내가 말도 다 안 끝났는데, 대답부터 해?

로봇이야? 내 말 잘 듣고 있긴 한거야? “


띠리리리, 네, 주인님

대답을 해도 뭐라고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출까요, 띠리리리


라는 AI 드립 칠 분위기는 아니어서,


“아, 아니야, 듣고 있어.”

하고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여자의 촉은 무섭긴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자기 친구에게 이성적으로 끌리고 있다는 것까진 정확히 알 순 없었을 거다.


하지만, 바로 방금 전까지 다른 친구들과는 금방 친해져서 이 얘기 저 얘기 잘하고 듣던 인간이,

갑자기 우물쭈물하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걸 보면서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비극이지만,

그녀의 마지막 친구는 그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인생은 얄궂게도, 집에 가려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 이제 그만 들어갈게.

친구들하고 편하게 재밌게 놀아~”


“오빠~ 어디 가요. 같이 더 놀아요. 이제 초저녁인뎅.“


‘밤 11시다.

초저녁은 해 떨어지기 전후로 한 6-7 시 정도 아니니? ㅋㅋ 걍 더 놀고 싶으면 밤새 놀자고 해라 흐‘


날 잡은 친구는 내 전 여친도,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 온 그녀의 마지막 친구도 아니었다.

소개팅 시켜달라는 이야기를 잘 들어준 “영식이”었다.


자꾸 보니 이름만큼이나 정이 가는 푸근한 느낌의 영식이.


‘영식아, 말 잘 들어주고 편하게 해 줘서 아쉬워하는 마음 알겠는데,

지금 난 이 자리를 떠야 해. 좀 더 놀겠다고 여기 더 앉아 있다가 자칫 사고가 날 수 있단 말야.

겉보기엔 어수룩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본능이 있는 남자거든.‘


이런 내 마음을 진지하게 확실히, 모두에게 말하고 빠져 나올 수도 없고,

살다 보면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져 이도 저도 못하며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그렇게 잡혀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해도 자꾸 눈이 그 마지막으로 온 친구에게로 갔다.


솔직히 외모도 전 여친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다소 괄괄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 전 여친과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다소곳한 여성미를 장착한 친구였다.


이렇게 비교가 되며,

여친과 함께 보낸 시간과 정으로 쌓인 기간이,

이제 적응되며 슬슬 지겨워지는 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찰나였다.


그러면서, 그녀와 내가 잘 맞지 않는 면들과 생각의 차이. 그런 것들이 머릿 속에 마구 떠올랐다.


이것은 마치,


‘맞아, 난 이제 진정한 내 이상형을 만난 거야.

나에게 정말 맞는 여자는 이 여자야.

원래부터 여친과는 안 맞는 사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시작한 거라서,

헤어지고, 내가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자.’


라는 위험한 합리화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다.


다행히, 난 꽤나 이성적인 인간이었고, 본능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여친을 바라 보니 그 동안 쌓인 정과,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함께 하며 좋았던 시간들이 내 정신줄을 겨우 잡게 했다.


“나 이제 먼저 들어갈게.

시간도 늦었고 지하철도 끊겨.

갈 길도 멀고.”


“그럴래?”


“아쉬워요, 오빠. 내 소개팅 잊지 말고, 우리 또 봐요~”

으이그, 이 화상아, 영식아 제발 쫌!

분위기 파악 좀 하자.

너도 좋은 친구인 것 알겠는데, 이 자리는 여기서 끝내야 해.

암튼 bye for now~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와인 바를 나와서 한참을 걷다 택시를 탔다.


혼란스러운 감정.

여친에겐 미안하고, 마지막에 온 친구 얼굴은 막 생각이 나고.

아무리 냉수를 벌컥벌컥 마셔도 속이 차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와서도 뒤척이며 긴 밤을 보냈다.




인연이란 묘하게도, 마지막 친구의 직장도 우리 회사 근처였다.


‘나중에 같이 회사 근처에서 밥 한번 먹어요.’

라는 말이 씨가 될지 그땐 정말 몰랐다.

역시 자나 깨나 말조심.


그날의 모임이 있고, 다행히 꽤 시간이 흘렀다.

여친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 친구도 기억에서 흐릿해지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회사 근처에서 광합성을 위한 산책을 평소보다 좀 더 오래하고 있었는데,

여친의 마지막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약간 과장하면, 100 미터 멀리서 보았는데도, 그 친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바로 옆을 지나가도 아예 모르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 쓰이고,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은 멀리서도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너무나도 쉽게 알아본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나?

다른 길로 갈까?

지금 이대로 걸어가면 마주치고, 날 알아볼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위험을 피하고 싶은 마음보다,

우연이지만 그녀를 다시 봐서 반갑다는 마음이 앞섰다.


날 알아보지 말고 그냥 지나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운명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빠!”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의, 다소 수줍은 인사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엉거주춤 손을 흔들고,

긴장을 털며 웃음을 보여주려 애썼다.


“어, 진짜 우리 회사 근처에 사무실이 있나 보네?”


“넹, 산책하고 있었어요?”


“웅웅”


좋아, 지금까지 자연스러웠어.

이대로 자연스럽게 빠이빠이하자.


“엉, 산책 잘하고, 담에 애들하고 같이 보자.”


“네, 그래요.

근데, 목 마른데 시간 되면 커피 한잔 사줄 수 있어요?”


오잉!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시나리오가 이, 이게 아닌데.


갑자기 속이 타고, 나의 목이 시원한 커피를 원하고 있었다. 심지어, 난 커피도 몸에 안 맞아서 평소에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그녀와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좋아한다던, 달콤한 케잌 한 조각도 함께.



아래 매거진에서 첫 화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대문 사진 : 네이버 하울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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