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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y 23. 2023

쉽지 않은... 인생

내가 써 본, 타인은 지옥 (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3



업무 내용도 모르고, 인성도 별로인 Z가 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인가 사장님이 우리 팀과 회식을 하자며, 황송하게도 소고기를 사주셨다.


그날 본 Z는 과연 달랐다.


사무실에선 졸기도 하고 신문도 봤다가, 이상한 소리 하며 약간 멍해 보일 때가 많았는데, 회식 자리, 특히, 사장님과 하는 자리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일단 사장님 옆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마치 해바라기인 양 사장님을 존경의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선망하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드디어 가서, 사랑을 담아, 오빠 너무 잘 생겼어요 를 환호하고 너무 많이 들어서 저절로 외워 진 노래를 따라 부르는 덕후 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평소 회식 때는 자신은 술 잘 못 마신다며, 복분자 정도를 시켜서 한잔씩만 먹던 인간이, 사장님과는 러브샷으로 소주며, 소맥이며 마구 들이 부었다.


놀라울 정도였다. 접착제 마냥 사장님이 자리를 옮겨 다니며 다른 직원들에게 한잔씩 따라 줄 때도 찰싹 달라 붙어, 누구라며 소개도 해주며 사장님을 서포트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모두들 이 인간 오늘따라 왜 이래 하면서도, 사장님 앞이라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 없어, 그냥 위하여만 외치며 술만 마셨다.


“이제 저리 좀 가서 당신도 직원들하고 한잔씩 하고 좀 그래.”


“직원들하고야 제가 챙겨서 자주 마십니다.”


개뿔.


“이렇게 사장님 모시고 마실 날이 얼마나 자주 있겠습니까. 오늘이 저에겐 축복이고, 올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우웩


“허허, 사람 참”

재미있는 건 사장님도 그런 Z의 행동이 싫지 않아 보인다는 거였다.


자신에게 충성하겠다는 인간이 싫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말 잘 듣는 개 한 마리 더 키우는 거니까.


그렇게 회식 자리가 이어지고,

사장님이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셨다.


“자, 그럼 다들 천천히들 마시라고. 여긴 내가 계산하고 갈 테니까.”


“예,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요.”

직원들이 얼아 나서 사장님을 배웅하는데 Z가 보이지 않았다.


“어, 근데, 내 신발 어딨지?”

신발을 벗고 들어간 고깃집이었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Z였다.


삐까뻔쩍하게 잘 닦인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사장님이 나갈 때가 되니 어느새 나가서 구두를 찾아서 닦아 놓고 정돈해 둔 것이었다.


‘우와’

이건 진심 감탄이 나왔다.

명색이 큰 회사 임원이라는 인간이 고깃집에서 사장님 구두를 닦고 있었네.


“어이쿠, 뭐 하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닥 놀라지 않고,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반응하는 사장님이 더 재미있었다.


“그래, 고맙네.”

이런 대우가 익숙하고, 당연하다는 듯 배웅을 받으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나중에 사장님이 회사 일로 곤욕을 치르시고, 검찰 등에 불려 다닐 때, Z는 그날 꼭 검찰청 앞에서 사장님이 조사를 다 받고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응당 너 올 줄 알았다. 안 오면 섭섭했을 뻔 했어 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시장하실 텐데 식사 하시러 가시죠.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일식집 예약해 뒀습니다.”


“그래, 가지.”


그렇게 사장님을 비롯한, 일부 인원들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Z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갑자기 뭐하나?”


“사장님이 회사 일로 이렇게 고초를 겪으시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흑흑흑”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일동 손가락이 오그라 들었다고 한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도 그 방면으로는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나중에 밖에서 담배 피우며 이구동성


 ‘와, 이 자식은 못 당하겠다.

진짜 강적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란주점에 가서 사장님 기분 풀어드린다고 광란의 쇼로 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사장님이 가시고, 얼마 후 Z가,


“E 차장, 술 안 마셨지?”


“네네”


어느새 Z의 가방과 옷을 챙기고 있던 E가 대답했다.


Z는 술을 마시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지 않았다.


말 잘 듣는 직원 중 E가 Z와 집이 같은 방향이었는데, 그 사람에게 운전을 시키곤 했다.


대리운전 기사는 어떤 인간이 올지 모르고, 편하게 갈 수 없어 불편하다나. 연예인들이 술 마시고 진상 짓 나올까 봐 굳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지 않고, 음주 운전하다 사회면에 나오는 걸 보며 비슷한 것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그 차로 자신을 출근할 때 데리러 오라고 했다. Z 입장에선 편하게 다니니 나쁠 것이 없었다. 상대방만 받아들인다면 만사 ok.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그런 인간이었다.




E를 처음 봤을 때 무척 진중한 사람으로 보였다.


반듯한 자세, 신중한 언변 그리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까지.


그래서 협업을 제안해 오면 기꺼이 응했고, 본인이 잘 모르고, 내가 잘 아는 부분은 성심 성의껏 알려줬다.


그때 그 친구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 E와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성실하게 자기 할 것 하고, 헛소리 안 하고 바른 사나이 같은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난 사실 다른 사람이 하는 평가를 참조만 하지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나만의 기준이 있고, 사람은 서로 맞고, 맞지 않고 가 성향이나 성격 심지어 체질상으로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나와는 잘 맞는데, 나와 친한 친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에게 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첫인상은 3초 만에 결정된다고?

맞다. 그 사람이 어떨지, 나와 맞을지, 잘 생겼는지, 예쁜지, 내 스타일인지 바로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선입견일 수 있다. 즉, 외모만, 겉만 보고 넘겨짚는 것.


갖가지 사기 행태를 보라. 사기꾼들이 처음 봤을 때 덩치 크고 험상궂은 깡패처럼 보이나? 난 널 때리고, 돈 뺏고, 사기 칠 거야 하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나?


아니다. 사기꾼의 급이 높을수록 되려 그럴싸하고 잘 생겼다. 화장도 잘하고 옷도 잘 입는다. 웃는 얼굴로 세련되게 사람을 잘 대한다. 물론, 자세히 보면 옷은 짜가이고, 입은 웃는데 눈은 욕망으로 이글거린다.


영화 수리남에서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목사는, 허구가 아니다. 남미에 살아봐서 안다. 그런 사람들이 분명 있다. 선한 얼굴로 ‘여기 처음 오셨어요?’ 라고 도와줄 것처럼 말하지만, 속으로 ‘호구 하나 잡았네.’ 하고 적극적으로 속이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


그래서, 주재원 선배들은 한국인을 조심하라고까지 했다. 물론, 선량하고 좋은 교민 분도 많다. 보통 미꾸라지 한두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일부 때문에 다수가 욕 먹는다.


물론 자기 관리를 잘해서 외모에서 빛이 나고 깨끗한 옷을 깔끔하게 잘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그럴싸하게 보여서 상대방을 현혹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세상이다.


사기 쳐서 감옥에 간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전공 덕분에 갖가지 형사 케이스를 많이 보고, 사회생활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보다 보니 정말이지 차고 넘친다.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멀쩡하게 생겨서.”


뒤통수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래서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을 오랜 시간 두고 겪어보고 알아보라고 한다. 급하게 결혼해서 급하게 이혼한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사람은 잘 나갈 때와 동시에 바닥을 칠 때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어쩌면 오랫동안 겪어보고 판단하라는 말은, 이런 저런 일을 같이 겪다 보면 잘 나갈 때 주변을 잘 챙기는지 아니면 자신만 생각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기만 살려고 주변을 내팽개치는지 어떻게 하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가 Z에게 비빈 덕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건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축하 인사를 할 때 그 찰나의 눈빛.

오만과 독선이 스쳤다. 잘못 보았나 싶었지만, 겸손과 진중을 가장한 그 의기양양까진 좋은데 거만한, 못된 모습이 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변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허허, 그 손톱만 한, 남들이 시켜준 권력. 아무 때나 뺏을 수 있는 그걸 갖고 어쩌면 다들 저렇게 변할까?

아니, 원래 인간이 그랬는데 이제 본성이 발현된 것일지도.


그렇게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예전 나에게 E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조언이 떠올라 가만히 그 동안 저 친구와 같이 일했던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인간관계의 손익을 따져본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알려주고, 해준 것에 비해 알려준 것도 없고, 해준 것도 미미했다. 그냥 그럴싸하게 말로 때우고 넘어간 것이 많았다.


좋게 볼 때는 그냥 넘어갔던 것이 냉철하게 쳐다보니 눈에 보였다.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말만 하고, 자신이 아는 것도, 준비된 것도 없어 불필요한 질문만 하는 모습.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물어본다고 좋게 보려고 했던 모습이 각도를 달리해서 냉정하게 보니 그냥 잘 모르는, 공부도 안 하는 바보로 보였다.


회의를 할 때도 보면, 일을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고 취합만 해서 본인이 다한 것처럼 하려는 게 보였다. 그때부터 선을 긋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E의 갑질이 고조될 때 50대 팀원 아저씨들이 타깃이 되었다.


존중은 커녕, 무리하게 일을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의도적인 업무 배제와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


아, 이래서 나이 든 분들이 자발적으로 퇴사하도록, 구조 조정을 하려는 회사들이 저런 젊은 팀장을 선임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당하는 50대 팀원들은 매일 저녁이 술이다. X 같아서 못 해 먹겠다. 어린 놈의 XX가. 그런데, 낮 업무시간에 지시 불이행이나 갖가지 덫이 있어 반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게 되면 퇴사의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에 장사 없다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결국 그만둔다. 덕분에 E의 팀은 근속연수가 가장 짧은 팀이 되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이었다.

경마도 처음엔 시작의 ‘와’ 였다가, 마지막에 다들 일어나서 환호하지 않나.


그만둔 직원들은 그냥 그만두지 않았다. 팀장의 만행을 HR에 퇴사 면담 시 이야기 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E에게 위기가 닥쳤다.

회사는 여러 루트와 방식을 통해 직원들에 대해 생각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결국 인사철이 되었을 때, 2년만 하고 팀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분위기가 보이자 (눈치는 빠르다)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F를 타 팀으로 보내버리려고 소위 작업을 했다. F와 상의도 없이.


F가 모르게 모든 것이 잘 진행되어 타 팀으로 발령을 내고, 본인이 팀장을 계속할 거라 생각했나. 마치 새가 흙 속에 머리를 숨기고 ‘나 안 보이겠지’ 하는 모양으로 보였다.


F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자신을 타 팀으로 보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반발하고 E에게 따져 물었고 둘은 사무실에서 크게 싸웠다.


문제가 불거지자 Z가 둘을 불렀고, E에게 왜 갑자기 F를 본인과 상의도 없이, 타 팀으로 보내려고 했느냐고 묻자,


“본인이 팀 이동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예전의 진중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이제는 그냥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


결국 E는 Z에게서 버림 받아 팀장에서 내려왔다. 말 잘 듣고 회사를 오래 다녀서 사내 소통이 잘 된다는 장점으로, 하자 있는 인간을 팀장 시켜준 것이었는데, 역시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Z는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아 보이자, 바로 돌아다니며 E를 욕했다. 잘못된 인선과 아래 팀장 관리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미리 피하기 위함이었다.


F도 사내 분란을 일으킨 것이 문제가 되어, 다른 친구가 팀장이 되었다. 인사철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상한 사람과 엮이면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E와 거리를 둔 것이 새삼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사람은 떠날 때를 알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고 하는데, 현실은 떠나라고 해도 끝까지 버티려고 아등바등한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보기 추해진다.


E는 팀장에서 내려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자신이 팀장에서 내려온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운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리 말하고 다닌다.


겉은 참 반듯하게 생겨서 말도 진중하게 잘 하는데, 역량은 없고 인성은 바닥이라는 점이 보면 볼수록 신기할 뿐이다. 저런 친구를 팀장 선임한 회사의 HR 역량을 탓해야 하나.


지금도 다시 팀장을 달기 위해 위에 잘 보이려고 이상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위의 임원도, 주위 동료도 다시는 팀장이 되기 힘든 역량과 과거를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인성이 드러나서 가면 뒤 진면목이 드러나 다들 피하는데, 본인만 저렇게 정신 승리하며 내달리고 있고 친한 척하며 도와달라 하는 것도 더 신기해 보인다.


결국 못 버티고, 어떻게 사기를 쳤는지 다른 회사로 가 있다. 물론, 그곳에서도 얼마 못 가 바닥이 드러나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본인은 야심차게 원대한 꿈을 꾸고 있을테지만.



(아래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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