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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y 21. 2023

내가 써 본, 타인은 지옥


어릴 적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는 말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세상을 밝게 보려 많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주위와 뉴스를 보면 와 닿는 말이 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어린 여성 장의사에게 혼자 밤에 사체를 만지고 있으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답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도 실제로 그랬다.


실체가 없는 귀신이 나에게 해코지 했던 적은 없었다. 막연한 공포심에 겁 먹은 적은 있었어도 귀신이 나타나서 덤벼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해코지 당했던 적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움직이고 뭐든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달려들고 괴롭히려 했다.


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하고, 때리고 욕하고 죽고 죽이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겠는가? 결국 사람이 제일 무섭다. 십 수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안 죽고 살아 있어서 이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이 글은 내가 봤던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사람과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써본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분명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언제가 부터 누군가가 쫓아오고, 마지막엔 떨어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걸 보고 가위 눌림이라고 하나?

말로만 듣고 평생 겪어보지 않다가, 직접 겪어보니 두렵다.

처음 겪을 땐 이대로 계속 움직일 수 없어서 죽는 건가 싶은 공포가 몰려왔다.


누가 날 좀 구해줘.


알람소리가 울렸다.

알람시계를 멈출 수조차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아~


“회사 안 가니?”


다행이다. 어머니였다.


구원의 목소리 마냥, 무생물인 알람시계는 나를 깨우지 못했지만,

생명체이자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는 날 움직이게 해주셨다.


휴우~


가위 눌림에서 빠져 나온 안도감과 함께,

이제 일어나야 하는 압박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한숨은 길었다.


긴 한숨의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몸도 피곤하지만, 요즘 회사에 정말 나가기가 싫다.

회사야 늘 나가기 싫지만, 요즘은 유독 그렇다.

일이야 하면 되지만, 그 일을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아~ 일어나기 싫다.’


쉼 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가 나를 재촉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 한참을 더 뒤척였다.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일어나는 게 몇 배는 힘들었다.


어젯밤, 같은 팀 A와 속 상해서 한잔한 것이 화근이었다.

2차 맥주까지만 하고 지하철 타고 들어왔어야 했는데.

좋다고 퍼 마시다 새벽에야 겨우 미친 택시비를 내고 겨우 들어와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18, X 같지 않냐?

그 XX는 완전히 지만 알아. 잘한 건 부풀려서 지가 다 해 쳐먹고, 문제 생기면 쏙 빠져서 나 몰라라.”


“어떡하냐? 그 XX가 우리 담당 임원인데.

까라면 까고, 평가 잘 받아서 연봉 높이고 성과급 받아 먹으려면 알아서 기어야지.”


“하아, 미치겠네.

우리도 그 형처럼 병신 돼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18, 생각할수록 X 같네.”


나약한 소시민인 직장인 A와 내가 거친 말을 하며 한 잔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쫓겨나듯 퇴사한 B 선배를 떠나 보내며, 우리는 많은 생각을 했다.

15년 넘게 회사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며, 윗사람들에게 잘하고, 후배들도 잘 챙겨줬던 그 선배.


이제 곧 팀장 달고, 시간이 지나면 임원이 될 사람이었다.

특진도 하고 승승장구하던 그 선배의 직상생활이 꼬인 건, Z가 나타나면서부터다.


Z는 동종 업계 경력이 없는데도, 나이가 많아서인지 부장으로 채용되었다.

아무도 납득하지 못했지만, 낙하산이니 그냥 저러고 있다 가겠지 했다.


그런데, 웬걸.

Z는 얼마 안가 자신이 부팀장이니 이제 팀장에게 보고 전에, 자신에게 먼저 보고하고, 충분히 자신이 이해되도록 자료를 만들어 와서 설명해달라고 했다.


물론, 아무도 그렇게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 부팀장이라는 것이 회사 직제에도 없었고, 당연히 인사발령이 공식적으로 나서 권한을 준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실한데다 착했던 B 선배는,


“저 분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새로 오신 분 도와드리는 게 기존에 있던 사람들 도리잖아.

연배도 위니까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고, 팀에 잘 적응하시도록 도와드리자.”


그렇게 선배가 하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르며 자료를 가져다 바쳤다.

특히, B 선배는 정말 성심성의껏 핵심 자료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그 정도면 거의 떠먹여주는 수준이라고들 주위에서 말했다.


하지만, Z가 ‘고마워요’라고 입은 웃으며 말하면서도, 눈은 화가 난 듯, 시기와 견제의 눈빛으로 B 선배의 등에 레이저를 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흠칫했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가면을 잠시 벗기도 한다.


모자를 계속 쓰고 있으면 답답할 테니까.




집에서 지금 나가야 겨우 회사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데, 하필 신호가 왔다.


도저히 회사까지 참고 갈 엄두를 낼 수 없어, 일을 보고 나왔다. 개운하지 않았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이 또 다시 후회되었다.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속도 안 좋은 상태로 뛰었다.

하필 눈 앞에서 지하철을 놓쳤다.


‘아, 저것만 탔어도 지각은 안 하는 건데.’


뒤늦게 온 지하철엔 사람들이 많았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지옥철. 오늘은 두 발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여유 있게 나왔으면 그냥 보내고 다음 차를 탔을 텐데, 지금도 늦어서 어쩔 수 없이 끼어서 타야 했다. 그나마 속을 비우고 와서 다행이었다. 나이 먹고 대형 사고가 날 뻔 했다.


지하철에 내려서도 바로 뛰어야 했는데, 인산인해의 사람 숲은 내가 뛸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뛰기는커녕, 인파에 떠밀려 가는 지경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뛰는데 오늘따라 회사까지 거리가 왜 이렇게 멀까. 이렇게 힘들게 출근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숨 차게 허겁지겁 뛰었지만,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나마 휴가내지 않을 정도의 지각이라 눈치를 보며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어제 술 많이 마셨나 봐?”


C 부장은 오늘도 밉상이다.

굳이 꼬집지 않아도 늦은 것 아는데,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한마디 한다.


칵. 더러운 가래를 뱉으며, 하루에도 코를 몇 번을 푸는지.

그러면서도 담배는 절대 끊지 않는다.


“코를 매일 그렇게 풀면 코가 헐지 않으세요?”

한번은 내가 핀잔을 주면서 그렇게 물으니,


“아이고, 우리 J가 내 생각해주는 거야?

우리 어머니도 그 얘기하면서 내 걱정해주던데.

걱정해줘서 고마워.”


‘뭐, 이런 똘아이 같은 인간이 있나.

더러워서 코 좀 그만 풀라는 말을, 자기 걱정으로 받아들이나.

저런 정신 승리로 민폐 끼치면서 저렇게 주구장창 다니는 거겠지.’


하필 이렇게 속 안 좋은 날, C 부장은 코를 더 풀어 제낀다.

가래에 재채기까지 온갖 더러운 짓은 사무실에서 다 한다. 손톱깎기는 화룡정점이다.


속이 더 안 좋아진다.


따뜻한 아카시아 꿀 음료를 사다가 마시며 겨우겨우 이메일을 확인하고 회신하고,

PPT 보고 자료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 쪽에서 웅성웅성거렸다.


메신저를 통해, 나와 마찬가지로 술이 덜 깨서 괴로워하고 있던 A에게 물었다.


“어제 잘 들어갔냐?”


“몰라, 죽을 것 같다.”


“이제 술 그만 마시자.”


“그래, 내가 술 마시면 이제 개다.”


“근데, 왜 저러는 거야? 무슨 일 있냐?”


“D 부장 자살했대.”


“뭐?!”


충격적인 소식에 가상의 메신저를 벗어나, 현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D 부장은 착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매 맞는 남편이라면 저런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히 아는 것이 많고 일도 잘하는 편인데도 자신 없는 태도.

어쩔 수 없이 매어 있어 회사에 나와야 하고, 집에 가는 뒷모습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후배에게조차 큰 소리도 한번 못 내지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시키는 일을 문제없이 잘하고, 주위와 다투는 일이 없으니, 위에서 자꾸 일을 맡겼다.


회의는 말만, 모여서 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귀찮은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취합해서 내가 한 것인 양 포장해서 실속은 자신이 챙기는 게임 같은 경우가 많았다.


그 게임에서도 D 부장은 항상 패자였다. 일이 쌓여갔다.

싫은 소리 못하고,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 눈에 보였는지, Z는 D 부장을 계속 시켰다.


저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D 부장의 야근이 잦아졌다. 주말에도 계속 나와서 일을 해도 정리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니,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말을 해요.

다 떠맡아서는 결국 시간도 못 지켜서 사장님 앞에서 사람을 바보 만들면 어떻게 해!”


결국 성질 급한 Z가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다.


웃기는 일이지.

일을 미루고 하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있으면서 욕을 먹지 않고,

일을 잘해서 도맡아 한 사람에게는 타이트하게 시간을 줘서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하면 욕 하고.


그러니, 누가 나서서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겠나.

바보같이 착한 D 부장 같은 사람들이나 저렇게 일을 하고, 욕 먹는 일이 반복되었다.

모두 나에게만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적극적인 방어태세만 취할 뿐이었다.


며칠 전 본인에게 제때 보고를 하지 않아서, 본인이 사장님에게 욕을 먹었다고,

Z가 D 부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심하게 깼다.


그때 D 부장의 눈빛은 예의 그 약한 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뭔가 폭발할 것 같은, 분노의 눈빛이 잠깐이나마 보였다.


하지만, D 부장은 그 자리에서 Z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다.

평소보다 깊은 한숨만 쉴 뿐.

으레 그렇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괜찮으세요?”


차 한잔 하면서 바람 좀 쐬자고 D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응, 괜찮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힘드시죠? 시원하게 이것 드시고 힘 내세요.”


편의점 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내서 위로와 함께 건넸다.


그날따라 말수가 적은 D 부장이 집안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이야기,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

오죽하면 나에게까지 이런 말까지 다 말하나 싶었다.

내가 듣기엔 살면서 좋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낙으로 살까 싶었다.


결국 Z로 인해 발생한 분노와 여러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D 부장 자신을 향해 버렸다.


그렇게 A와 난 그날 저녁 또 술자리에 앉았다.


술을 안 마시다 보면 안 먹게 되는데,

먹다 보면 술 마실 일이 계속 생기고, 아침엔 내가 앞으로 술 먹으면 개다 라고 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술 권하는 사회인지, 한심한 두 직장인 인생인지, 아님 둘 다 일지 몰라도 소맥부터 한잔 말아 넣었다. 하아~ 속이 시원하다. 빈 속에 찌릿.


아침, 점심 때 속을 풀고 쉬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술이 땡기는 것이 아이러니다.


하지만, 한잔 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아래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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