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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y 25. 2023

사필귀정?

내가 써 본, 타인은 지옥 - 마지막 회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6


E를 대신해 새롭게 팀장이 된 P 부장은 Z 임원의 수족 같은 사람이었다.


Z와 마찬가지로 이 업계의 경력이 없었다. 성질머리 때문에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동료들과 불화로 문제가 있었고, 그 일이 크고 오랫동안 벌어져서 그 업계에서도 꽤나 유명했던 모양이었다.


“너네 본부에 들어온 P 부장 있잖아? 어때, 괜찮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내 친구가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엄청 유명했다던데.

똘아이에다 빡치면 완전히 미쳐서 길길이 날뛰는데 정말 무서웠대.”


“그 정도야?”


“우리 업계 경력도 없고, 성격도 그 모양인데, 우리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대?”


“그러게.”


‘이번에도 낙하산인가? 휴우’


P는 한마디로 웃상이었다. (웃는 인상)

웃는 얼굴에 침 뱉겠냐 만은, 너무 웃고 다니니 가끔 조금 무섭기도 했다.


뭔가 미친 사람 같은 느낌도 들고, 저러다 이야기 들은 대로 미쳐서 날뛰면 극과 극을 달릴 것이기 때문에 겁이 나기도 했다. 사실 자주 울다가 웃는, 감정이 극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다.


운 좋게 입사해서 기분이 좋은지 P는 열심히 일했다. 지난 회사에서 과오를 의식했는지, 새로운 곳에서는 동료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책을 선물한다던지,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사서 나눠주곤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진리라고 여기는 나이기에, 사실 그런 선물도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책이야 내가 관심 있는 책을 사서 보면 되는 거고,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은 사실 잘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래도 주는데 어쩌겠나. 아이스크림은 같이 조금 먹는 시늉만 했고, 초콜릿은 먹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주곤 했다.  


그렇게 웃던 P의 인상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굳어져갔다.


웃으려고 노력을 해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P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회사에 Z 덕분에 운 좋게 입사할 수 있었고, 업계 경력이 없으니 물어가며 배워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P는 Z에게 고양이 앞의 쥐였다.


Z는 그런 상황을 적극 활용했다.


저렇게까지 시켜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을 몰아줬다. 일단 본인이 임원회의에서 하겠다고 일단 들고 온 일을, 애매하고 다들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P를 쳐다 보았다.


착한 척, 좋은 사람인 척 해야 하고, Z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서 P는 그 일들을 자신이 하겠다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일을 떠넘길 수도 없었다.


그 동안 다들 Z에게 이래 저래 당해서 방어기제가 있었고, 좋지 않은 일들을 눈으로 보았다. P에 대한 소문도 다들 어느새 들어서 멀리 했기 때문에 그렇게 떠넘기는 것이 더 쉽지 않았다.


그렇게 P의 야근이 잦아지고, 한숨이 늘어났다. 어느 날은 아파서 며칠 동안 회사에 나오지 못했다.


다시 출근한 날 웃상이던 P의 표정은 사납게 돌변해 있었다.

직원들에게 더 이상 상냥한 웃음은 없었다.


이전 회사에서 했던 본성이 이제 튀어나오나 싶었다.

가까이 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가까이했던 다른 직원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왜 이렇게 해요!”


“이렇게 전문성이 없어서 회사 일을 제대로 하겠어요?”


“이걸 의견이라고 내는 거예요!”


사무실에 칼이라도 몰래 숨겨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로 살벌한 얼굴이었다.


두 얼굴의 헐크라고나 할까. 흉흉한 뉴스를 접하다 보니, 그런 일이 내가 있는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에게는 기관총을 돌려가며 난사했지만, Z에게는 여전히 웃상으로 친절했다.


“오늘 멋있으세요.

넥타이가 참 잘 어울리시네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힘들게 몰아붙여도, 자신을 뽑아줘서 일자리를 준 사람에게.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윗사람이 되어 평가를 통해 연봉에 영향을 미치고, 자리를 줬다 뺏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고, P가 Z를 향해 총을 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소리 나는 기관총은 직원들에게 대놓고 쏘고, Z에게는 뒤에서 소음 총을 여러 방 날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P는 무척이나 용의주도한 사람이었다.


앞에서는 Z에게 여전히 친절하고, 말을 잘 듣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뒤에선 Z에게 빅엿을 선사할 노력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나중에 P와 Z가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날 알게 되었다.

그 동안 P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P는 먼저, 사업 부문 내 직장 내 괴롭힘 담당자를 컨택했다. 고충을 이야기하고, 조치할 수 있도록 위로 올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미온적이었던 담당자. P는 근거 확보를 위해, Z가 본인을 부려먹은 사실관계와 함께, 담당자와 면담 내용을 정기적으로 e-mail로 남겼다.


그래도 징계절차가 진행이 되지 않자, 근무 기록과 이메일을 근거로 하고, 이번엔 전사 인사 담당자를 컨택했다. 동시에, 이 친구가 이전 사업 부문 담당자처럼 미온적인 것을 대비해 사내 고충처리 프로세스를 시작하며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


끈질기게 두 담당자를 괴롭히고, 회사 공식 프로세스에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겨도 징계 위원회가 소집되지 않자, P는 지주회사 담당자까지 컨택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또한, 감사팀까지 동시에 컨택했다.


나중에 인사 담당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회사에 이렇게 신고하고 조치를 요청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루트가 많은지 몰랐다.”


그만큼 일이 번지고 커지자 이제 회사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만 놔뒀다간 청와대 신문고와 고용노동부에까지 찔러 들어가서 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언론에 오르내리면 회사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좌시할 수 없었다.


최대한 본인이 다치지 않게 몰래 조치가 취해지도록, 기록도 남지 않게 진행하려 했을 거다.하지만, 이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아 네트워크도 부족했던 그는, 자신을 드러내고 나서지 않으면 해결은 커녕, 문제화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이판사판 미친 본능을 드러내며 분노의 질주를 했던 거다.


하지만, 여기서 더 소름 끼치는 건, 이 모든 일을 진행하는 수개월 동안, Z 앞에서는 한결같이 웃상으로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일을 했다는 거다.


“오늘은 셔츠 색깔이 참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앞에선 칭찬을 가장한 웃음을 보이며, 뒤에서는 칼을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 찌르고 있었던 거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사장님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Z는 사장님에게 불려가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깨지면서 모든 것을 그제서야 알고, 사무실로 와서 P를 불러 좋게 말하려다가 본인도 감정이 올라와서 큰 소리를 치게 되었다. 이제는 가릴 것이 없게 된 P도 물러서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줬다.


방 문을 닫고 싸우는데도 멀리까지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주먹다짐까지 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내부 단도리에 들어가야 했던 Z는 직원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여론전을 시작했다.


나에게까지 물었다. P 부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건 무슨 답정너도 아니고.’ (답이 정해진 너)


결국 그 사람이 나쁘고, 자신이 피해자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주위에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라는 걸 확인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옛다 먹어라 하고 원하는 답을 해줬다.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을 보니 불쌍해 보였다.


‘왜 그러고 사나.’


그리고 마침 여름 휴가 시즌이라, Z는 일주일을 통째로 비우고 열흘 정도 휴가를 다녀왔다.


한달 넘게 조사 받고, 사유서도 제출하느라 많이 시달리기도 해서 힘들었을거다.


사장님이 사표를 제출하라고 했고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계약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바로 수리하겠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어서 힘들어서 그랬는지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그렇지 않아도 욕망으로 들끓어 마치 만화영화의 악당이나 사이비 교주와 같이 변한 검은 눈과 겹쳐져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P 부장과의 마지막 인사는 이 드라마의 극적인 마침표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P 부장은 마지막 퇴사일 인사팀에도 들릴 일이 있어서 왔다며 Z에게 찾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 유종의 미라도 거두러 왔나 다들 신기해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P의 어색한 인사를 받은 Z.

불편한 인사를 서로 나누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둘이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니?”


“엉엉엉, 죄송해요.”


이걸 극적인 화해라고 해야 하나.


개콘이 망하게 한 쌩 라이브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 보는 맛에 회사 다닌다. 그 덕에 이렇게 글도 쓰고.


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느 월요일 출근을 했는데, Z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회의 갔나 보네 했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았다.

휴가 끝난 것 아닌가? 무슨 일이 있나, 쉬는 김에 조금 더 쉬는 건가.

이 참에 그냥 푹 쉬는 게 사실 회사를 위해 모두를 도와주는 거긴 한데.


그리고 이메일을 열고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또 저 쪽에 친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일인데?”

하고 들으니, Z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회사 경조사 게시판에서 Z의 본인상 공지를 확인했다.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휴가 기간에 여행을 갔는데,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거였다.


“이럴수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 표독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거지.

원래 없던 사람처럼.”


안타깝긴 했지만, 회사 사람들은 거의 Z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자기 자리 유지에 안간힘을 쓰더니, 결국 그렇게 허망하게 가나 싶었다.


그리고, Z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그날 저녁 A와 나는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였다.


고인을 두고 축배를 들 순 없었다. 헛된 욕망과 집착이 이렇게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별 말 없이 한잔씩 술을 들이켰다.


이 어른들의 잔혹동화가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고, 결국 권선징악으로 끝난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어디선가 제2의 잔혹동화가 또 쓰여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끝.


아래가 1화입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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