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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n 13. 2023

그녀와 여행 (2)

내 사랑 강남 싸가지 (21)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352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숙소 예약을 끝내고,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그래도, 이건 손 쉬웠다.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만 정하면 되었으니까.


연 1회 동반 1인까지 무료인 제주도 왕복 항공권 서비스가 포함된 카드를 잘 써먹었다.


그렇게 숙소 예약과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나니,


'생각보단 순탄하네.


이제 여행만 가면 되겠당~


맛집이나 검색해 봐야지.'


여친 님께 칭찬 받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멍멍


그녀의 '아들' 녀석은 잘 있나 ㅎ

(내 사랑 강남 싸가지 11편 참조)


몇 번 봤다가 정 들어서 또 보고 싶다.


같은 처지는 역시 공감이 된다.


그것이 진짜 강아지든, 반 강아지가 된 사람이든.




"여기 제주도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맛집이래~"


나름대로 틈 나는 대로 검색에, 검색을 해서 가장 나아 보이는 곳을 보여줬다.


리뷰와 평도 많고 꽤 괜찮았다.


'여기 별로라고 하면 보여줄 곳이 2타, 3타까지 준비되어 있다구요 ㅎㅎㅎ'


그녀를 만나면서 나도 많이 변했다.

예전엔 그냥 지나가다 그럴싸 해 보이고 사람 적은 가게에 가서 밥을 먹었다.


줄 서서 밥 먹는 것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맛집을 검색해서 미리 예약하고 먼 길을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쓰면, 나에겐 미친 짓이었다.


'뭐가 그렇게 차이가 있다고 저 난리야.

어차피 한 끼 먹는 거고.

일부러 저렇게 줄 세워서 마케팅 효과 노리는 거 모르나.

막상 들어가 보면 자리 빈 곳도 많고,

맛도 조금 더 나은거지 큰 차이도 없던데 뭘

좋은 재료, 위생적인 환경에서 조리된 음식 먹고 속 편하면 그만이지.‘


줄 서서 밥 먹으면서 이런 소리를 실제로 그녀에게 했다가,

욕 먹고 한바탕 한 이후로는 이런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오빤, 그러고 보면 참 뭘 몰라.

밥을 끼니 때우려고 먹니?

식사는 맛이고 문화고 여유야.

맛집 탐방도 다니면서 추억도 쌓고 말야.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제발 말 좀 하지 말아라 쫌.


'그 입 다물라'

는 명언이 생각났지만,

그런 말 내뱉었다간, 내 입이 자크로 '찌익' 잠길 수 있어,

내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가짜 리뷰도 가려낼 줄 알고,

'테이블링'도 할 줄 아는 나를 보며,

길들여진 '그녀의 아들'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은 브런치에 맛집 소개글을 연거푸 연재하며,

미슐랭 집에도 가보고, 급기야 매거진까지 만들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소개한 맛집 list를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따로 메모까지 해두셨단다 ㅎㅎ


이래서, 살면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짜잔"


"이게 뭐야?"


제주도 지도를 여러 장 출력해서,

지도에 줄을 쳐 놓고, 뭔가 막 써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시간과 가게 이름, 메뉴 등등이 빼곡히 써 있었다.


맞다.

2박 3일 여행 계획을 짜겠다고, 제주도 지도를 5장 출력해서,

깨알같이 동선과 소요 시간 등을 메모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그리고,

여행 예산을 정리하겠다고 엑셀에 정리를 해서 그걸 출력해 왔다.


"잘 봐,

오빠 내가 설명해 줄게.


공항에 내려서 우린 바로 차 렌트를 할 거야.

차는 어디에 있고, 차를 타고 나서..."


한 시간 넘게 신나게 이어지는 그녀의 여행 계획 presentation을 들었다.


"오빠,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빠진 것 있나 한번 봐봐.

오빠 회사에서도 사업 계획 같은 것 잘 짤 거 아니야.

그리고 뭐 틀린 거나 그런 것 있는지도 좀 보고."


'여행 가서 쉬려는 거지.

여기가 회사냐? 이게 일이야?'


내 정신은 오랜만에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이런 게 안 맞는다는 건가.'


나에게 여행이란 휴식으로,

여유 있게 돌아다니다 맛집 보이면 가보고, 경치 좋은 곳 있으면 머물러서 걷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 무리하게 계획하지 않고, 맛있는 것 먹고 낮잠도 자고 푹 쉬는 그런.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도착부터 다시 출발하는 시간까지,

동선과 소요 시간을 잣대로 선을 그어가며,

네비게이션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한 시간을 적어두었다.


낮잠 시간도 중간에 있긴 있었다.

호텔에서 밥 먹고 15분.

헐, 님 장난치세요?


누가 보면 대통령 선거 나가는 사람 일정인 줄 알겠다.

분 단위까지 고려해서 아주 그냥.


그래서, 이런 걸 보고,

유세를 떤다고 하나.


여친 얼굴을 보니, 유세차에 오른 비장한 여성 정치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게 지금 이렇게 할 일이니? 진짜?'


식당도 메뉴와 가격 그리고 세세한 평까지 적어두었다.


"오빠, 우리 이 식당 가서 뭘 먹을까?


코스도 좋아 보이긴 하는데,


A 코스하고 B 코스 중에 고르면 되겠던데 헷갈리더라구요.


아님, 점심 때 이것 저것 많이 먹을 것 같으니까,

여기선 그냥 단품으로 먹을까?

그럼 좀 아쉽겠지?"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학교에서 일은 이렇게 하니?'

라고 물을 뻔 했다.


"A 코스가 좋을 것 같은데."


"왜에?"


아, 미치겠네. 진짜.


그냥 맛있어 보이니까 그런 거지.


여기서 확연히 사람의 성향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여행 가서 편하게,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과,

간 김에 이것 저것 다 보고, 맛집도 다 가보고 계획을 필요하면 촘촘히 잘 짜서 부지런히 다니려는 사람.


내가 전자고 여친님이 후자였다.


휴양지 호텔에서도 all inclusive로 해서, 그냥 주는 대로 편하게 먹고 싶을 때 막 먹는 나와,

맛집 찾아다니며 예약하고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조금씩만 먹는 그녀.


사실 이 정도로 극단이었으면 같이 여행을 가지 않는 게 맞다.

보통 싸우거나 이후론 같이 여행을 같이 가지 않게 된다.


대학 때 방학 시절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기차에서 맥주 한잔 하며 기분 낼 때까진 좋았다.

하지만, 한 녀석이 여행 본색을 드러내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한 녀석이 하루 종일 걷고 여기저기 가보자고 나와 다른 친구들을 개 끌듯이 끌고 다녔다.


‘이 녀석 이렇게 부지런한 놈이었나.

역시 친구들과 며칠 여행을 가봐야 진면목을 알고,

남녀는 같이 살아 봐야 안다더니.‘


그렇게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퍼져 버린 우리.


다른 두 명은,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린 숙소에서 쉬고 있던가, 사우나 가 있을 테니까 갔다 와.“


라고 일찌감치 손절했다.


‘그럼 같이 여행 와서 혼자 가라는 말이냐’

라고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럴 땐 마음 약한 나.

같이 하루 종일 걷다가 진심 죽는 줄 알았다.


그 녀석과는 다음부턴 여행은 절대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친구고, 지금 이 분은 부잣집 외동따님, 내 사랑 강남 싸가지 아닌가.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자는 대로 했다.


해외 주재원 생활할 때에도, 해외 여행을 온 한국인 관광객 분들이,

시간 단위로 마치 전투하듯이 관광하는 걸 보며, 누구 말마따나,


'이 사람들은 관광하고 쉬러 여행 온 것이 아니라,

옷만 관광객 복장이지, 사실 일하러 온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또 다시 개 끌려 다니다 시피 돌아다니게 생겼다.


또, 여친님은 여행 계획 또한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이었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같이 이야기하며 재미를 느끼는 그런 사람.


여행 계획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더군다나 이렇게 빡빡한 계획은 더 싫어하는 내가,

여기에 대해서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녀이기에,

좋아 보여서, 내가 사랑해서 맞춰주며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줬지만,

쉽지 않았다.


"와~ 완벽하지!"


'그래, 완벽하게 날 죽일 것 같다.'


회사에서 출장 계획도 이렇게까진 짤 것 같지 않은,

색색의 형광펜과 빨간 줄과 파란 글씨가 담긴 여행 계획서를,


서류 파일에 고이 넣고 여행을 준비했다.


마치 사약을 받을 날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07



아래 매거진에서 1화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사진 출처 : 네이버 걀이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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