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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l 05. 2023

그녀와 여행 (3)

내 사랑 강남 싸가지 (2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05



"오빠~"


공항에서 만난 그녀.


큰 모자와 원피스.

예쁜 여행객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랑스런 우리 싸가지.

이럴 땐 정말 예뻐 죽겠다니까.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지기도 했다.


"웅~ 쟈기야"


"오빵~ 이것 좀 옮겨줘잉~"


그녀의 뒤엔 2개의 큰 캐리어와,

손으로 들어야 하는 큰 가방 2개가 있었다.


'어디 이민 가니?'


물으려다 말았다.


아니, 2박 3일 여행을 가는 거지,

이건 뭐 제주도 한 달, 아니 두 달 살기도 아니고 ㅎㅎㅎ


옆으로 매는 가방 하나에,

옷 두 벌과 속옷과 양말 그리고 칫솔만 들고 온 나와 무척 대조적이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거기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지 뭐

근데, 뭘 살 게 있으려나?'

정도의 생각이었다.


"오빤 왜 이렇게 짐이 없어?

잘됐다. 내 거 잘 챙겨줘.


오빠가 잘 안 챙길 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챙긴 거야."


'니가 이상한 거야. ㅎㅎ


그리고, 내 핑계대기는.

꼴 보니까 갈아입을 옷 한 무더기에다, 각종 화장품에,

무슨 안마 괄사 등등 집에서 쓰는 건 몽땅 쓸어 담아왔겠지 ㅎㅎㅎ'


무진장 무거운 그녀의 캐리어를 끌고,

나는 그녀의 남친인가,

머슴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주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나왔더니 무척 피곤했다.


해외 갈 때 10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때가 있는데,

제주도까지 한 시간은 졸다 보니 그야말로 "순삭" 이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그 한 시간이 그날의 마지막 휴식이 될 줄은.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이고 지고 끌고 갔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봐도 우리 짐이 가장 많았다.


신나서 제일 작은 캐리어 하나만 끌고 가는 그녀가 얄미웠다.


헛.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우리와 비슷한 커플이 있었다.


큰 모자와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몇 개의 캐리어를 이고 지고 따라 가는 남자.


원피스 색깔과 무늬만 다를 뿐 거의 판박이었다.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동병상련.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서로 눈짓을 하며 인사를 했다.


'고생하세요.'


그것은 마치 같은 버스 회사에 다니시면서 같은 번호 버스를 모는 기사님들이,

서로 반대편에서 지나칠 때 손 인사를 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하루 종일 큰 차를 몰면서 위험한 도로에서, 화장실도 제 때 못 가는 서로를 위한 격려.


굳이 바로 옆에서 구구절절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가 있다.


"봐봐, 오빠, 다들 저렇게 다니는 거야."


이 많은 사람 중에 저 놈하고 나하고만 이러고 있다.

으이그.


동상이몽.


어떻게 처음 보는 남자 녀석과 동병상련을,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는 동상이몽을,

하고 있을까?


반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우습게도 이론과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론을 맹신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고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피곤해서 바로 짐을 실으려고 하는데, 여친이 말렸다.


"잠깐"


"어,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잘 봐야 하잖아.

나중에 또 덮어 씌우면 어떻게 해?"


너나 나한테 덮어 씌우지 마라

이 짐 마냥 흐


그녀는 이런 면에선 정말 미친 듯이 치밀한 성격이었다.


역시 한 번씩 만나서 밥이나 먹고 차나 마시며 이야기해서 연애 상대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여행도 가보고, 살아봐야 안다.


실제로 차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포스는 무슨 정비소 베테랑 아저씨마냥,

한참을 구석구석 살피던 그녀.


시동을 걸었을 때도,


"오빠 이상한 소리 나는 것 같지 않아?"


"안 나요.

니가 지금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요."


"치

알았어. 그럼 가자.

문제 생기면 오빠 책임이야."


우와, 지가 예약부터 검사까지 다 하고 마지막에 책임은 탁 넘기는 센스.

우리 회사 면피로 특허 낸 X아치 임원 뺨 치는 스킬이었다.


그래도, 제주도 드라이브는 참 좋았다.


탁 트인 풍경.

서울처럼 차가 많아서 막히는 것도 아니고.


숙소를 외곽 쪽에 잡아서 그런지 더 그랬다.


절로 노래를 크게 부르고 따라 하고 싶어졌다.


“롤린 롤린 롤린~ 예~

하루가 멀다 하고 롤린 인 더 딥“

Rollin in the deep!


갑자기 마음이 풀어져서 그랬는지 여친이 예뻐 보여서,

횡단보도에 멈췄을 때, 키스를 날렸다.


"아이, 뭐 해. 운전해~"


"아몰랑~

저기 잠깐 차 세울까?"


"미쳤어?"


"아니, 잠깐 화장실 갈려고"


"뭐?"


이 새끼 뭐야 하는 듯 진심 화난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더 타올랐다.


짧은 원피스 때문에 드러난 각선미가 낯선 여행지라 그런지 더 섹시해 보였다.


그렇게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손과 중요한 부분만 씻고 바로 덮칠 생각에 속도를 높였다.


"위험해."


"오빠만 믿어"


"뭘 믿어?

오빠가 젤 못 미더워 ㅎㅎㅎ“


"몰랑 ㅋㅋㅋ"


"치"


숙소에 도착해서 키를 받았다.

호텔이 아니라 풀빌라 비슷한 곳이었다. 조경도 좀 있고 마당 같은 곳도 있는 그런.


그런데, 키를 주는 아주머니의 인상이 조금 고약했다.


주인 얼굴을 보고 숙소 예약을 하는 건 아니었기에 몰랐지만,

조금 찝찝했다.


뭔가 이기적이어서, 돈만 챙길 줄 알지, 숙소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뭘 해달라고 하면 최대한 안 해주려고 하는 못된 심보의 그런.


하지만, 이미 눈이 뒤집혀서 머리에 그것 밖에 생각이 없던 나는,

갑자기 헐크가 되어 짐들을 미친 듯이 옮겼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헛,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즐겁게 웃으면서,


"아잉, 이러지 마앙~

샤워하고 해잉~

이따 밤에 해잉~“


뭐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표정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왜 그래?"


"오빠, 무슨 냄새 안 나?"


"무슨 냄새? 내 가슴 타들어가는 냄새?"


"아니, 여기 청소가 잘 안되서 좀 안 좋은 냄새가 나는데."


내 되지도 않는 농담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런가? 뭐 어때? 여기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일루 와 방"


"아니야, 나 여기서 못 잘 것 같아."


잉? 그럼 어쩌자는 거임?


"환불해 달라고 하자."


헐헐헐


이미 불타올랐던 가슴은 소화기로 쫘악 뿌린 듯 진정이 되어 있었다.


쎈 언니들 환불원정대도 쉽게 상대하지 못할 그 험상 궂은 주인 아줌마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며,

숙소는 또 어떻게 다시 구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날 뒤로하고,

그녀는 지체 없이 아주머니에게 쫓아갔다.


"저기, 여기 냄새가 너무 많이 나요.

환불해 주세요."


"아가씨, 너무 예민하시네."


"예?! 뭐라구욧!

여기가 진짜 이렇게 비싼 방 맞아요?“


(비싼 건 너도 알고 있었구나 흐)


"아니, 다른 사람들 아무 말 없이 잘 있다 가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지저분한 냄새에, 왁스 냄새까지 저런 데서 어떻게 자라는 거예욧! “


흐흐 여기서 왁스가 왜 나와?

진짜 그런 냄새가 났나?

한동안 저 주인 아주머니와 배틀을 뜨고 있는 우리 여친을 보며,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를 떠올리며 멍 때리고 있었다.


원래 여자들의 화난 랩 배틀을 곧이 곧대로 다 들으려면 힘들기 때문에, 딴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때가 있다.


그럼 막 난리치다가 감 잡고 한마디 한다.


“내 말 듣고 있는거야?“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딱 한마디만 한다.


“ㅇㅇ“


일명 힘 빠지게 하게 스킬.

할 말은 원없이 다 하게 해드리고, 나도 정신 건강에 해롭지 않고, 그런 원만한 해결 방법 흐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넌 잘못 없어?

난 할 말 없어서 그런 줄 알아?“


이러면서 붙으면 길어지고, 감정만 상한다.

박수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난다고 하지 않나.


별 일 아닌, 감정 싸움, 사랑 싸움이면,

그냥 여친 손만 허공을 휘젓다가 제풀에 지치게 내버려 두는 게 좋다.


하지만, 이 두분은 돈도 걸려있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 답게,

아주머니도 물러설 기세가 전혀 아니었다.

우리 여친도 마찬가지였다. 건곤일척!

역시 여자들의 싸움은 남자 이상일 때가 있다.


어렸을 때 나이트 클럽에 놀러 갔다가 멀쩡하게 예쁜 여자 둘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혈투였다.

술에 취해서 머리 뜯고 할퀴고 이년 저년 오만 욕은 다 튀어나오는 걸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죽하면 웨이터들도 당분간은 말리지 못했다.

자기들도 말리다 얼굴 할퀴어 본 경험이 있는 듯 했다.


다행히 나이도 있고 격식 있는 분들이라 큰 소리만 계속 치고 있었는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여친이 갑자기 확 날 째려 봤다.


'넌 뭐 해?

내 편 안 들고.'


그런 표정이었다.


하이고, 머리야.

놀러 와서 이게 뭔 꼴이람.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숙소부터 이리 꼬여서야 원.


하지만, 일단 이 아주머니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적이었지만, 나까지 큰 소리 친다고 이 험상 궂은 아주머니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점잖게 말했다.


"아주머니, 방금 소리치고 난리치신 거 다 녹음해 뒀거든요.

이것 가지고 예약 사이트에 컴플레인 올리고, 숙소 검색 커뮤니티 같은데 하고, 소비자 보호원 같은 데 다 올릴까요? 언론사에 친구들 있는데 거기에도 제보하고요."


다음 상대가 내가 될 줄 알고,

또 거칠게 2 라운드를 준비하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순간 상냥해졌다.


"아, 그러셨어요.

아니에요. 환불해 드려야죠."


급변하는 아주머니의 태도를 보고, 나도 놀랐지만 여친도 놀랐다.


짐을 빼고 차에 올라타서 여친을 놀렸다.


"와아, 너 장난 아니더라.

싸움닭이 따로 없던걸 ㅋㅋㅋ

고상하신 선생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ㅎㅎㅎ"


"아이, 몰랑"


뒤늦게 바닥까지 보여준 걸 깨달았는지 무척 민망해하는 그녀였다.


"아줌마 어! 이렇게 하시면 되요! 네?"

그녀의 흉내를 내니,


"아잉, 그만해에~"


자기도 빡쳐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뒤늦게 창피한지는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를 놀리며 한참을 웃었다.


"근데, 우리 이제 어디서 자?"


"아몰랑~ 계획 다 틀어졌잖아~ 어떡해!"


내 계획도 다 틀어졌지만,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이 맛에 여친하고 여행가나?


글을 쓰며 옛날 생각하니 웃기다.


이 맛에 연애 수필 쓰나?


오랫만에 쓰니 재밌다 ㅎ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28



아래가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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