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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ul 25. 2023

그녀와 여행 (4)

내 사랑 강남 싸가지 (2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07


“여긴 쫌 맘에 들어?”


“으응? 응”


환불을 받고 나오는 길.

다행히 가는 길에 괜찮은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모텔이나 민박집이었으면 바로 싫다고 했겠지.


보통 남자들은 어디서나 두 발 뻗고 편하게 자면 그만인데,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어지간히도 호텔을 좋아한다.


깨끗한 곳에서, 청소할 걱정도 없고,

식당부터 룸 서비스까지 편하게 맛있는 밥 먹을 수 있는 곳이니 누가 싫어하겠나? 설거지 할 필요도 없고.


다만, 그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해야 해서, 비싸서 문제지.


호캉스, 호캉스 하는데 보통 남자끼리 친구 자취방 가서 한잔 더 마시거나, 코로나 때 술집 영업 제한이 있으면 근처 모텔에 방 잡고 술 마시는 건 본 적이 있어도, 여자들처럼 친구들끼리 파자마 파티 한답시고 남자들끼리 호텔 잡아서 밤새 이야기하는 건 드문 일이다.


남자들끼리 그런 짓 하면 자칫 오해 받는다.

해외에선 특히.


해외 출장과 파견으로 가서 지겹게 호텔 생활을 해본 나로선, 호텔에서 자는 게 사실 별 감흥이 없지만,

여친이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가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나.


힐튼 honors club 같은 건 내가 어떻게 가입되었는지 귀신같이 알고 마일리지 써서 갈 수 없냐고 해서 같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보텔같은 아코르 클럽 마일리지까지 나의 여친님을 위해 날려 보냈다. 어차피 유효기간이 짧아서 써야 했기에 유용하게 잘 썼다.


보통 보면 그렇다.

남자도 영화 보고 새로운 곳 가는 곳 좋아하기도 하는데, 여자가 좋아해서 개 끌려가듯이 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진짜 좋아서 자기가 먼저 가자거나 좋아하니 얼씨구나 좋다 하며 다니는 소수를 제외하곤, 귀찮은데 가자고 하는 것에 대해 티를 내는지 그렇지 않은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처음엔 맞춰준다고 따라 다니다 나중엔 더이상 사람 많은 데 가서 줄 서고 몇 시간씩 앉아있는 것 싫다고 친구들과 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고, 시간이 가면 본성이 나온다.


그래서 영화든 뭐든 2030 여성을 타겟팅하라고 하지 않나. 친구들끼리 입소문도 일등으로 내주고, 남친까지 잡아다 같이 해주니 판매하는 입장에선 최소 일타쌍피 많으면 한 번에 여러 장을 팔 수 있으니 거의 법인 영업 급이라 하겠다.


호텔 좀 다녀본 나조차도,


“맨날 똑같은 데서 하면 재미 없잖아? 새로운 곳에 가장~ 오빠~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공, 응?”


이라는 말에, ‘헤~’ 하고 따라 나섰으니 그닥 할 말은 없다 ㅎㅎ


“방 있나요?”


“네, 잠시만요.

스탠다드 룸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지?”


“으응.”


괜찮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 난리치고 이제 다른 대안도 거의 없는데 ㅎ


다행히 방도 있었고, 돈도 전의 그 비싼 곳 대비 반값이었다.

휴우~ 살았다.

이런 걸 보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ㅋ


키를 받아서 방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 놓으니 이제야 마음도 내려진다.


휴우~


“근데, 오빠 여기 전에 와 봤어?”


엥? 갑자기 뭔 소리?


오랜만에 훅 들어 온 시비에 순간 당황했다.


그 숙소 아주머니와의 혈투에서 보여줬던 공격성이 아직 남아 있나?


닭 싸움에서 닭 벼슬을 올리면 경기가 끝나고도 흥분 상태가 지속되어 싸움을 걸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근데 나 여기 전에 와 봤나?


“아니, 검색도 안 해보고 바로 찾고, 로비부터 여기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오잖아.

엘베에서 카드 대는 것부터 출입문 들어와서 카드

꽂는 것까지.”


헐헐, 그럼 버벅대며 짐 들고 삽질하면, 또


“오빤 이런 것도 잘 못해?

이런 데 안 와 봤어?”


이렇게 타박할 거면서 ㅎㅎ


그 놈의 촉 타령 또 나왔구만 싶었다.

반은 그냥 넘겨 짚는 ㅎㅎㅎ


그러면서 어쩌다 한번 맞으면,


“거 봐, 내 말 맞지?

내가 다 알고 있고, 다 보고 있다규.”


하는 것 맞춰주느라 참 힘들다.

나도 고생이 많다.

왜 여자 만나는 것이 힘든지, 그냥 혼자가 편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마구마구 되어 버리는 대목이다.


그럴 땐 그냥 대꾸하지 않고 흘려 보내는 게 좋다.

자기가 고른 이전 숙소에서 난리를 친 전작이 있으니까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진 않겠지.


“아이고, 난 모르겠다.

근데, 여기 좋긴 좋다. 역시 호텔이 편하긴 하넹~

자기 좋아하는 저 편한 의자도 있으니

기대고 다리 쭉 뻗고 좀 앉으시지요, 공주님

마사지 해드리겠습니다~“


치~


그러면서 해외에서 마사지 많이 받아봐서 그만큼 배운 내 마사지는 마다하지 않는 그녀였다.


전작 때문인지, 자기도 열 내서 피곤했는지, 공주님 소리와 마사지에 풀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편한 의자에 앉더니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래, 너도 사람인데 피곤하지.

아침부터 씻고 화장하고 옷 챙겨 입고 저 이민가방 급으로 짐 싸들고 나와서,

겨우 숙소 도착해서 이제 짐 정리하고 좀 쉴려고 했는데,

되려 빌런 아줌마와 한바탕 하고.

너도 고생이 많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데, 그래도 이런 게 추억이 되겠지.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ㅎㅎ’


역시 오래 만난 여친은 잠자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쁜 것 같다.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씻고 짐을 정리하다 바라보니,


‘잠잘 땐 저렇게 예쁜데, 가끔 성질머리를 부리면 왜 그렇게 사나워 지는 걸까? ㅎㅎㅎ’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면서 추운지 몸을 웅크리길래 이불을 찾아서 덮어주었다.


“오빠~ 몇 시야?”


“피곤하신 것 같은데, 일단 그냥 좀 더 주무세요~”


“으응”


잠결에도 자신이 세워둔 계획표가 생각나나 보다.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서 별 의미 없는 계획표가 된 5장의 제주도 지도.


나도 씻고 나니 피곤이 몰려와서 잠시 눈을 감았다.

졸음이 밀려왔다.




선 잠에 꿈을 더 많이 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사귀었던 다른 여친과 다른 호텔에 갔던 일이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꿈 속에서도 당황했지만, 좋은 기억이라 밀어내고 깨어나기 싫었다.


그녀를 데리러 가고 차에 태워서 출발할 때의 설렘.


“왠 썬글라스?”


“이 정도는 해줘야 놀러가는 기분이 나징?

신나는 걸로 노래 한번 틀어봐방~ 오빠얌~


그리고 자 이거~“


그 친구가 자기도 여행 경비 보태고 싶다며 봉투에

20만원을 담아 나에게 건넸을 때의 묘한 고마움.


그렇게 여행지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노래를 켜고 맘껏 부르며 놀던 기억.


차가 그렇게 막혔는데도 지치거나 짜증 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의지가 되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웃으며 이겨낼 수 있지만,


편하고 깨끗한 곳에서도 불편한 사람과 있으면 마치 지옥과 같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그 친구와는 그렇게 비싼 숙소를 잡지도 않았던 것 같다.


20만 원 정도 선에서 자고,

근처 산책도 하고, 강을 보며 고기도 구워 먹고,


평화와 여유 그 자체였다.


그날엔 숙소에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잠시 누웠는데, 갑자기 그녀의 모든 것이 예뻐 보여서 그녀를 안고 말았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더니.


좋아하는 여자와 손 잡고, 안고 있다,

입 맞추고 키스하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버렸다. 마치 자연스러운 음악의 선율처럼.


“안돼~ 지금 말고 밤에 해~

왜케 급해~“


하던 그녀가 잠시 후엔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내가 올라갈까?”


“으응”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촉감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하~아~


마치 공기 좋은 곳에서 개운하게 운동하고 나서 나오는 편안한 숨.


그리고 만족감 속에 그녀와 잠시 안고 있었다.


처음 와 본 낯선 곳이지만, 그녀와 함께 안고 있으니 마치 내 집 같았다.


그리고, 야외에서 고기를 구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굽는 고기엔 정성이 들어간다. 신경 써서 굽느라 잘 태우지 않는다. 야들야들하게 먹을 수 있게 원하는 만큼 알맞게 굽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불도 뜨겁고, 연기에 눈도 맵지만,

하나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묘하다.


어떨 땐,


‘이 한 여름에 왜 고깃집을 회식 장소로 잡은 거야?

날도 더운데, 불에다 구워서 쩝

그냥 중국집 같은 데서 에어컨 밑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음식 편하게 먹지 참나.

근데, 그래도 고기는 맛있네. 쩝쩝‘


이런 불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있을 땐,


“오빠, 이거 먹어봐.”


하며 건네는 쌈에 얼굴에 미소만 번진다.

이마에 연신 쏟아지는 땀을 훔치면서도.


한번은 회사 녀석들이 여친과 손 잡고 걷는 내 모습을 우연히 보고,


“우와, 평소에 회사에서 보던 표정 하곤 너무 다르신데요. 딴 사람인 줄 ㅋ

세상 제일 행복해 보이시던데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좋으면 남도 신경 안 쓰고,

찐으로 좋은 표정이 나오나 보다.


그렇게 고기를 구워 먹고,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그녀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와 마음에 담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개운하게 씻고,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녀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안 더워? 좀 떨어져 있자.”


이런 말이 왜 안 나올까?


분명 같은 바디 워시와 샴푸를 썼는데, 그녀에겐 특별한 향기가 있었다.


좋은 공기 마시고 고기를 먹었더니 힘이 나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몸이 되었다.


신혼 때는 시도 때도 없다더니.


“오빠 좋아.”

라는 소리에 더 흥분해서,

그녀가 좋다고 외친 그대로 더 열심히 했다.


점점 더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아~ 참을 수 없는~


“오빠 안돼. 좀만 더.”


미친 절제력으로 조절하며 사랑스러운 그녀를 보았다.



전 여친은 어디 가고, 현 여친 강남 싸가지 그녀였다.


어, 넌 자고 있었는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근데,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있지?


놀라면 깨어 나야 하는데,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


으으으 하며 현실의 내가 내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때 현실에서 강남 싸가지 그녀가 날 불렀다.


“오빠 뭐 해?

어디 아파?“


그 목소리에 깼다.


아아아~


잠결에도 놀란 채 깼다.


생생한 과거에서,

현재로 그렇게 넘어 와 있었다.


꿈이 얼마나 현실 같았는지 아랫도리는 여전히 딱딱해져 있었다. 뒤늦게 나이 먹고 몽정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피곤하면 심장에 피가 많이 몰리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더 발기가 잘 된다고 하던데, 그런 건가.


여친의 아리송해 하는 모습을 보며,

시계를 보았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꿈을 꾼 건가.


이건 꿈자리가 좋지 않은 건가. 좋은 건가.


에라 모르겠다. 이 참에.


그대로 그녀에게 돌진했다.

흥분은 닭싸움한 닭벼슬의 그녀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아래가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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