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0. 뒤통수 (1)
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던 찰나 공장에서 회의를 하자는 연락이 와서 현지 비행기를 타고 공장으로 날아갔다.
여전히 매캐한 연기. 오랜만에 만난 박 부장님은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업무 특성상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셔야 하니 저 연기와 먼지 등에 노출되니 힘드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건강 잘 챙기시라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내 카운터 파트인 ㄱ 씨를 만났다. 얼굴은 오랜만에 보지만 계속 이메일로 교신해왔고 필요하면 whats app (미주 쪽에서 많이 쓰는 sns. 카톡과 비슷)을 통해 소통해서 낯설지는 않았다.
그간 자료를 요청하고 일 좀 해달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si (yes)만 하고 답이 없거나, 해달라는 게 아니라 엉뚱한 걸 보내서 힘들었는데, 너는 해달라는 것 바로바로 해달라니까 좋다고 하며 윙크를 날린다. 그런 건 제발 하지 말아줘.
우리 사무실에 가서 현지 책임자 분께 인사를 드렸다. 그러더니 공문을 꺼내서 보여준다.
“어제 상대 쪽 책임자가 ㄱ과 같이 와서 이 편지를 보내겠다고 하며 미리 보여주더군.”
내용은 우리가 잘못한 내용과 그에 따라 자신들이 입은 피해 그리고 배상액 내용이었다.
흐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럼 아까 좋은 말 하며 윙크까지 한 건 머야, 자식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제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내용은 일단 우리 잘못이 크게 없는 것으로 보이고, 피해와 배상액도 터무니없이 과장되고 높아 보입니다.
5일 내에 회신해야 하니 공문이 날아오면 미리 준비해뒀다가 2-3일 차에 바로 회신하시죠. “
경험상 우리는 벼락치기가 많아서 혹은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 기한 내 답변을 하지 않아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빨리 처리하고, 혹시 보완할 내용이 있으면 그다음에 추가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리 말씀을 드렸다.
예상대로 며칠 후 상대방은 해당 공문을 근거까지 추가하여 우리에게 정식으로 보냈다.
ㄱ 씨는 공문을 안 보내고 협의해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너희 쪽 친구들이 불성실하게 임하고, 이 공문을 안 보내면 우리도 나중에 감사에 걸려라고 하며, 욕해놓고 기분 풀어주려고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음, 양아치가 맞군.
그래 너희 입장도 이해한다. 적의 회신하겠다고 좋게 말하고 돌려보냈다.
3일 차에 회신 공문이 완성되어 보내겠다고 하자 현장 책임자 분이 시간도 남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냐며 하루 더 보고 보완해서 내일 보내자고 했다.
기한 내에 보내는 것이어서 문제는 없었지만 그때부터 약간 불안해졌다.
다음 날 공문을 보내려고 하니 이 분이 오늘 바빠서 제대로 못 봤으니 좀 더 보고 내일 보내자고 한다. 마지막 날이어서 좀 그렇다. 일단 오늘 보내고 보완사항이 있으면 추가로 공문을 보내자고 해도 안하무인이었다.
”안 되겠다. “
어차피 이 분의 결재를 받지 못하면 공문 발송이 어려우니, 사내 메일로 본사 임원까지 참조로 넣어서 회신 기한이 내일까지니 오늘 공문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하고 메일을 보냈다. 그래도 불안해서 같은 내용을 문자까지 남겨두었다.
이제 마지막 날 공문을 보내려고 하니 내용 다 작성이 되어 있어 끝까지 보고 보냈으면 좋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상대방 퇴근 시간 거의 직전에야 사인을 해서 공문을 보냈다.
다음 날 오전 상대편 공문이 왔다.
자기들이 보낸 공문이 기한 내 회신이 되지 않아, 우리가 공문에 적시된 배상액을 언제까지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을 받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바로 ㄱ씨에게
뛰어갔더니,
“공문에 recibido가 없어.”
라는 말이 돌아왔다.
즉, 공문을 받았다는 상대방 측의 확인 서명인데 어제 급박하게 보내다 보니 우리 측 공문 관리자가 실수한 모양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는 중요한 공문은 내가 보내고 recibido를 받아야 속이 시원한 습관이 그때 생겼다.
‘이래서 미리 보내야 하는 건데.
그냥 미친 척하고 내가 미리 보내버릴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동안 관계도 있는데, 담당자 실수인 것 같으니 이번만 좀 봐주고 시간 내 접수한 걸로 해달라고 하니, 이전의 우호적인 모습은 어디 가고 쳐다보지 않은 채,
“No"
라는 한마디로 선을 그었다.
양아치. 세 글자만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고 현지 책임자와 논의에 들어갔다.
“왜 공문을 제대로 발송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있게 해.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지. “
미리 보내자고 했을 때 먼저 보냈으면 이렇게 문제가 있어도 수습이 되었을 텐데 내가 미안하네라는 말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본인은 책임이 없고 다른 사람 탓만 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누구 말대로 코까지 막혔다.
안 되겠다 싶어, 남겨둔 문자와 메일을 보여드리며 면피는 그만하시고 같이 해결 방안을 찾으시죠 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그럴까?” 한다.
그래, 우리는 다 같은 직장인. 문제 책임지고 그만두면 누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나.
두 자녀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현지 책임자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어서, 어떻게 해결할지 이전 자료를 다시 전수 검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