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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ug 14. 2023

수학을 사랑한 이유 (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72


시험 볼 때 첫 장에 문제 4개가 있다면, 친구들이 첫 번째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난 첫 장을 넘겼다.


쉬운 문제는 너무 많이 풀어 봐서 그냥 껌이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지만 시험은 정확성과 속도를 동시에 test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풀어본 인간이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풀게 되어 있다.


다들 첫 번째 문제로 낑낑대고 있을 때, 이미 4문제를 풀고 다음 장으로 가는 쾌감은 컸다.

조용한 교실에서 자신감 있게 크게 울리는 첫 장 넘기는 소리에, 몇몇 친구들은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아, 쟤는 벌써 첫 장 넘어가는데, 나는 1번도 다 못 풀고 이러고 있네.’


그 속도로 바로 풀 수 있는 것은 일단 풀고, 어려운 문제, 바로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넘겼다. 만일 전체 문제수가 30개라면, 그렇게 한 번에 풀어지지 않는 문제의 숫자도 점점 줄어갔다. 처음엔 5개, 나중엔 1-2개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문제를 푸는 쾌감도 컸지만, 어려운 문제를 고민에 고민 끝에 풀어내고, 틀린 답을 검산이나 역산을 통해 제대로 된 답을 결국 찾아서 맞췄을 때의 기쁨은 더 컸다.


그렇게 마지막 문항까지 일단 한번 다 풀고 나면, 시험 시간이 1시간이라면 30분 정도 지나 있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이미 푼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본다. 역산도 해보고, 다른 방식으로 계산해 봐서 확실한 답을 검증한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고민해 보고 다각도로 접근해 보고 풀어본다.


그리고 답안지 마킹도 한 번 더 check 한다. 생각보다 잘 풀어놓고 marking을 잘못하거나 아예 밀려 쓰는 실수를 많이 한다. 나도 그랬다. 막판에 몰려서 한꺼번에 마킹하다 보면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한다. 미리미리 다 풀고 시간을 가지면 침착하게 틀리지 않고 마킹이 가능하다.


여유 있게 하나하나 마지막까지 check 하고 다시 풀다 보면, 시험 막바지가 되어 시간이 부족한 친구들이 막판 스퍼트를 하며 하나라도 더 풀겠다고 용을 쓰고, 안 되겠으면 찍어서 답안지를 제출하기도 했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다 찍고 자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중엔 나도 시험이 쉬울 땐 다 풀고 그 녀석과 같이 자기도 했다. 자는 건 같아도, 그 친구는 빵점, 나는 백점이었다. 겉보기엔 같아도 내실은 완전히 다른 것이 이것이다. 그래도 시험 볼 때 같이 자고 운동을 좋아해서 친하게 지냈다. 자는 걸로 통했나. 이런 묘한 친근감.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은 내 자리로 몰려왔다. 몇 번 답이 뭐냐고. 헷갈린다고. 일부러 기억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몇 번 검산을 하며 문제를 풀다 보니 전체 문제의 풀이 과정까지 사실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수학은 거의 틀려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말하는 답에 따라 녀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리고, 시험 결과가 나와서 100점. 실수했을 때 95, 97 점이라는 내 성적에 그 녀석들은 와~ 하며 박수를 쳤다. 잘해야 80-90 점, 보통 70-80점 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바보가 아니고 우리와 똑같이 학창시철을 거쳐 대학 나와서 임용고시도 보고 오랫동안 시험도 출제하고 그 결과를 봐 와서 변별력을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Killer 문항도 본인이 연구도 하고 어디서 배워 와서 내기도 하시는 등 나름의 노력을 많이 하신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70-80 점 대에 사람이 많이 몰리고, 점수가 올라갈수록 사람이 줄어들며, 최상 100점이나 한두 개 틀리는 친구들은 적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1등을 하려면 2-3 등과 경쟁해야 하는데, 한두 문제 차이로 등수가 엇갈리게 된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다. 박수치는 사람보다 박수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고. 어쩌면 그 박수는 노력에 대한 대가일지 모르겠다.


나라고 똑같은 책을 10번을 보면서 지루하지 않았을까? 정말 쳐다도 보기 싫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잠시 내려놓고 뛰거나 운동을 하거나 다른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그보다 앞에서부터 푸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부터 풀기도 하고, 중간에서부터 풀기도 했다. 다만, 한 곳만 많이 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단원 별로 반복 횟수와 끝낸 날짜를 깨알같이 옆에 적어 두었다.


그렇게 책을 들고 다니면서 앞뒤로 계속 보고 틈 나는 대로 찾아보니 내 책은 그야말로 걸레였다. 밑줄과 온갖 색칠 그리고 표시해 둔다고 뭘 붙여 놓고 접어 놓고. 보기엔 별로였지만 나에겐 공부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었고, 시험 직전에 확인할 부분을 손쉽게 볼 수 있는 나만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렇게 하나의 책을 여러 번 풀다 보면, 이해도 빨라지면서 동시에 깊어져서 어떤 이치나 책의 흐름,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같은 것이 보인다. 심하면 몇 페이지에 뭐가 있는지 기억할 정도가 된다. 그래서, 책을 촤르륵 넘겼는데 바로 자신이 찾는 페이지가 바로 몇 초만에 나오는 거다.


나중에 반쯤 미치게 되면, 나라면 이 문제는 이렇게 내볼 것 같은데 하면서 한번 더 꼬아본다. 실제 내신 시험이나 수능 모의 고사에서 그렇게 문제가 나온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사람 생각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구석이 있다. 물론, 이 문제 내는 기술은 나중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강의를 하는 기회를 갖게 될 때, 실습 문제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는데, 잘 써먹었다.


열심히 하면 하늘이 도와준다고, 정말 자기 말대로 하는 나를 예쁘게 본 선생님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으시면 나를 따로 불러 주시기도 했다. 집도 가난해서 학원도 안 다니는데, 저렇게 열심히 해서 수업도 잘 듣고 나와서 풀어보라고 하면 다른 친구들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선생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다양하게 풀어버리고 설명해 주니 대견스러웠나 보다.


먼저, 풀어보겠다고 나선 적은 없지만, 번호에 걸리거나 호명되었을 때,


‘I2C, 왜 나 불러.’

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서서 손 들고 잘난 척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늘 준비되어 있었고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선생님이 주신 책 (당시에 디딤돌인가 나름 괜찮아지고 있는 출판사 책이었던 것 같다.)이나 선배들이 물려주는 책. 그것도 안 되면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다른 수학 문제들도 풀고 고민했다. 좋은 기본서 한 권을 10번 보니, 다른 책의 문제들도 대부분 비슷한 것이 많았고, 문제 구조도 비슷했다.


다만, 새로운 문제들도 간간이 있어서 다른 경험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 몇 권의 책도 10번까지는 아니었고 3번 정도는 풀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번 본 책에 있지 않은 내용만 가져왔다. 시험 직전이나 전날에 그 내용만 보려고.


그런 걸 ‘단권화’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오답 노트와 함께 공부법으로 가장 권장되는 방법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 수업이 나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어차피 예습이 되어 있는 내용이어서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게 나았다. 내가 모르는 내용. 딱 그 부분만 골라서 들었다. 어떤 선생님은 학기 초에 나를 잘 모를 때, 내가 수업을 안 듣고 딴 짓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저런 질문을 갑작스레 날리곤 하셨다.


바로 문제 풀이 과정과 함께 지금 이 문제를 왜 풀고 있고 뒤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서 연결되는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 부분도 앞으로 다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애들 중 4가지가 없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역공으로 자신이 공부한 더 어려운 내용을 물어봐서 곤란하게 한다는데, 선생님 그림자도 함부로 밟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를 너무 물어 뜯고, 상대가 무시를 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하면 나중에 앙갚음을 할 수 있다는 걸 어려서부터 잘 알았던 지라 너무 나가진 않았다.


보통 그렇게 답을 드리고 나면,

“니 이름이 뭐냐? 아, 니가 J냐? 알았다.”

하며 넘어가고 다음부턴 귀찮게 굴지 않으셨다.





수학은 잘 봤지만, 다른 과목에서 망쳐서 원하던 대학엔 가지 못하고, 그 아래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일단 들어갔다. 당일 컨디션 난조가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겪어 보고 알았다. 3년 공부가 하루에 결정되니 잘 쉬고 건강 관리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반수를 하려고 했으나, 대학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선 오산이었다. 결국 대학을 다니며 실컷 놀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로 시험을 한번 더 보았는데 되려 처음 본 시험보다 성적이 낮았다. 바보지.


반수를 하려고 해도, 2학기는 휴학하던지 노는 걸 끊고 죽어라 공부해서, 변화된 trend도 익히고, 예전의 나처럼 죽어라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고3 녀석들과 경쟁한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린 날에 방심한 탓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모교를 그대로 졸업했다.


그래도 전국 1% 안에는 들었고, 학교 이름도 괜찮은 편이고, 전공이 최상위 과 여서 돈도 없는 김에 과외를 많이 했다. 개인 과외 뿐만 아니라 그룹 과외도 해서 200명 넘게 과외를 했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고 나서나 아니면 친구들이 몰라서 나에게 가져왔을 때 설명해 주던 것이 남아 있어서 과외 선생으로도 꽤 잘 나갔다. 애들이 친구의 친구까지 데려오고 그래서 잘 벌 때는 대기업에서 직장생활 15년 넘게 한 지금보다 net으로 더 많이 벌었다.


사교육비의 효과를 20대 초반에 이미 경험했다. 학원 선생을 했으면 더 많이 벌었을 건데, 대학 졸업할 때 이미 수학과 영어 강의 등을 통해 돈을 꽤 번 상태였고, 어디 가서 학원 선생이라고 하는 것보다 대기업 직원이라고 하며 명함 내미는 것이 결혼하기에도 유리할 것 같아 취직을 했다.


과외해서 번 돈으로 주식도 이미 대학 때부터 시작해서 사실 회사 생활하면서 투자해서 돈이나 벌자 하는 생각으로 취직했다. 신입으로 들어오면서, ‘아,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었지만, 나름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해외에도 원 없이 다녀보고, 수당도 많이 받아 일찌감치 고연봉도 되어 보았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잘 되어 먹고 사는 데에 지장도 없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주식을 할 때도 수학은 큰 도움이 되었다. 논리와 분석, 무엇보다 숫자에 대한 감이란 것은 주식을 포함한 자본시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그렇다. 다른 정책 흐름과 시장 흐름을 보고, 주가조작, 부동산 장난질 등을 (시세 조작, 전세 사기 포함) 잘 살펴보고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도 함께 필요하다. 다음에 다른 글에서 한번 다루겠다.


정말 공부 못하는 녀석들도 죽기 살기로 가르쳐서 인 서울을 시키기도 했고, 정말 잘하는 친구는 의대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한 녀석은 지금은 의사가 되어, 강남삼성병원에서 만난 의사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으셨을 때 도움을 받았다.


집안에 검사 아들, 의사 사위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법은 내가 조금 알고 그쪽 친구들도 많고, 과외하면서 의사 제자를 키워 놓아서 사는 데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사고 치고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건강도 잘 챙기려고 노력하다 보니 잘 아프지도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카드가 뒤에 있다는 건 마음의 안정과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의사가 된 녀석은 같이 공부를 할 때 이미 수준이 달랐던 걸 알았고, 그래서 영어의 경우 고교 과정을 다 마치고는 같이 토익 공부를 했다. 학교 전체에서 1, 2등 하던 녀석이었다. 한 단계 위의 공부마저 잘 소화하니 고등학교에서의 공부는 아마 식은 죽 먹기였을 거다.


그때 그렇게 과외를 했던 경험 덕에 회사에서도 신입사원 교육강사를 비롯한 사내 강사로 인정받았고, 2015년부터는 공공기관 등으로 외부 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전문 분야 강사도 하고 영어 강의 등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해외 사업만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일하고 해외 생활까지 했던 경험이 있으니 더 넓게 강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도 꾸준히 잘 쓰고, 책도 제대로 내고 best seller가 된다면 글쓰기 등에 대한 강의도 추가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나보다 더 공부 많이 하시고, 잘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거다. 그저 내 삶의 기록이자, 전국의 수포자들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본다.

특히, 나처럼 사교육의 혜택을 받기 힘든 평범한 머리의 흙수저 친구들에게.

분명한 건 노력하면 최상위는 되기 힘들어도, 어느 정도 상위권 수준까지는 갈 수 있다.

나와 내가 가르쳤던 공부 못하고 머리도 평범했던 친구들의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


머리 좋고, 열심히 하면서, 사교육비까지 쏟아 붓는 친구에게는 이기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노력으로 사교육비 없이도 상당 부분 cover가 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쉽게 말하면, 학원 죽어라 다니지만 죽지 못해 다니며 공부 대충 하는 친구들보단 스스로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백 번 나을 수 있다. 그래서, 강남 8 학군 학교를 다녀도 나보다 수능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많았던 거라 생각한다.


최상위가 되려면 모든 걸 다 갖춘 친구들이 하는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4당 5락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말이다.

다른 공부도 사실 기본은 비슷하다. 결이 조금씩 달라 그에 맞춰서 가는 것이지.


지금도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학위를 준비하며 공부하고 강의도 하면서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나이 먹어서 체력이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져서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공부는 어렸을 때 해야 하고, 배가 고파야 더 열심히 하는 건가 ㅎㅎ


그래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은 이렇게 남아 있고, 인생을 개척하는 데에 유용하다. 전공과 상관없는 AI, UI, UX, DX, ESG 등에 대해서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일부는 강의까지 하기도 하니까.


우연히 수포자에 관한 글을 보고 옛날 일이 떠올라 써 보았는데 길어졌다.


어떤가?


이 정도면 수학을 사랑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필요충분조건인 것까진 모르겠지만 ㅎㅎ


출처 : 귀팜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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