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다.
어려워서 따라잡기 힘들어서, 그러다 보니 듣고 있으면 졸려서 수포자가 (수학 포기자)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게 좋다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하다니.
공부가 제일 쉬었다고 하는, 현 학원 강사인지 대표이신지 모르는 정도의 분의 성적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수학을 사랑했노라고.
연애수필 작가라서 수학까지 사랑하는 건 아니고, 정확히는 중 3 때부터였다.
어찌 보면, 이 글을 쓸 자격이 되는지부터 말씀을 드려야 맞을 것 같아서 여기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내 글을 오래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흙수저다. 학원도 제대로 못 다녀본 사람.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성공하신 분들이다. 사교육비를 거의 들이지 않았고, 내가 서울에 있는 괜찮다는 대학도 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등록금도 얼마 안 내고, 대학원은 회사 다니면서 정부 지원 과정을 통해 학위를 받았다. 한 학기에 사립의 경우 대학원 등록금이 700이 넘기도 하는데, 난 2년 동안 30만 원을 내고 땄으니 말이다. 그것도 내 돈으로.
요즘은 많이 사라졌는데, 난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나왔다.
중 2 때까진 반에서 5등 정도 했던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학교 다니다가 친구들과 농구나 하고 시험 때 빠짝 벼락치기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중 3에 들어가자 주위 아이들의 기류도 바뀌고,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는데, 내 경우엔 무슨 공부 신이 강림했는지, 좋은 고등학교 못 가면 내 인생 X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고졸로 공장에서 노무자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중 3이 되고 1학기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1등을 했다. 전교 5등이었다.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글에 그 시절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 이 글에선 skip.
수석을 노리며 노력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지라 대단한 성적을 낸 것은 아니지만 무난히 비평준화 최상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날 데리고 가서 자랑을 하려고 했지만, 학원비도 못 내주면서 공부할 시간 뺏지 마세요 한 마디로 뭉갰다. 집도 가난하고 부모님의 직업도 변변치 않았지만 부모님은 나에 대해 꽤 자부심을 가지셨던 것 같다.
고교에 들어가서는 한다는 놈들이 다 몰려와서 그런지, 다시 반에서 5등으로 내려 앉았다. 하긴, 다른 친구들은 방학 때 학원을 다니며 선행 학습을 철저히 했을 건데, 난 학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니 처질 수 밖에. 대학 진학이라는 더 높아진 목표를 위해, 더 심한 경쟁을 하게 된 것이 실감이 났다.
거기서 포기하거나 퍼졌으면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내 인생은 공장 노무자보다 조금 더 나은 중소기업 사무직 정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공부하라고 할 때 안한 내 친동생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 당시엔 시험 성적을 다 불러주고 등수까지 게시하던 시절이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현 위치가 눈에 보였고, 공부와 성적의 맛을 이미 본 터라 고 1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지 못하니 방법은 죽어라 반복 밖에 없었다. 오래 앉아서 읽고 또 읽고, 풀고 다시 푸는 것. 학교 도서관에서 제일 마지막에 불 끄고 나오는 것이 나였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그러다 병 나겠다고까지 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거지같이 살면 나중에 병 나게 되어 있다. 라고 생각하고 달렸다.
몸에 무리가 와서 허리를 못 펴거나 아플 때도 있었다. 50분 앉아 있으면 10분은 일어나서 몸을 푸는 것도 그때 선생님들이 알려주셨다. 지금도 회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나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날아갈 때도 꼭 그렇게 하고 있다. 스트레칭은 기본, 푸쉬업은 하루에 100개 이상은 꼭 한다. 코로나 전엔 회사에 요가, 필라테스 프로그램이 있어서 거의 매일 했다. 주말에 하루는 푹 쉬면서 사우나에서 때 밀고 한숨 자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다.
당시엔 ‘수학의 정석’ 이라는 책이 있었다. 워낙 steady seller 라 당시엔 모두 그 책이 기본서였다. 그 책을 10번 봤다.
(글을 쓰다 찾아보니 수천만권이 팔렸다고. 갑자기 부럽다.)
보통 처음 몇 장만 펼쳐 보다가 포기하고 마는데, 한번 다른 글에서 쓴 마라톤에 재능이 있는 내 인내심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보통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막혀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 옆에 공부 잘하는 친구나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쪽 팔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물어보지 않고 넘어가다 보니 잘 모르는 부분이 생긴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도 사실은 공부의 기본인 예습, 복습을 혼자 못하니 선생님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쉽게 가르쳐주고 때로 강제로 이끌어 주는 거다. 선행 학습을 해서 남보다 더 먼저 공부하게 하고, 접하기 어려운 문제 trend나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면서 비교 우위를 만든다.
난 학원을 다니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런 방법을 쓸 수 없었는데, 반복해서 보고 주변에 묻고 하면서 공부를 지속했다. 그때 한 유명한 사범대학을 나온 수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공부를 못 하는 이유는 생각이 산만해져서 여기저기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수첩에 적고 다니면서 틈 나는 대로 다시 풀어보고 고민의, 고민의 과정을 거쳐라. 그렇게 하면 결국 풀리게 되고, 그 고민하는 과정이 실력이 된다.
그렇게 몇 날 며칠, 길게는 몇 달, 몇 년을 한 문제로 고민할 수도 있다.
그리 하면 정 안 될 때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조금만 설명을 들어도 바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결국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끈기 있게 고민하라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게 하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대안이 없던 나는 선생님의 그 말에 감명을 받고 진짜 그렇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바로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나눠서 upload 합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