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Aug 14. 2023

수학을 사랑한 이유 (1)

어쩌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다.


어려워서 따라잡기 힘들어서, 그러다 보니 듣고 있으면 졸려서 수포자가 (수학 포기자)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게 좋다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하다니.


공부가 제일 쉬었다고 하는, 현 학원 강사인지 대표이신지 모르는 정도의 분의 성적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수학을 사랑했노라고.


연애수필 작가라서 수학까지 사랑하는 건 아니고, 정확히는 중 3 때부터였다.


어찌 보면, 이 글을 쓸 자격이 되는지부터 말씀을 드려야 맞을 것 같아서 여기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내 글을 오래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흙수저다. 학원도 제대로 못 다녀본 사람.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성공하신 분들이다. 사교육비를 거의 들이지 않았고, 내가 서울에 있는 괜찮다는 대학도 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등록금도 얼마 안 내고, 대학원은 회사 다니면서 정부 지원 과정을 통해 학위를 받았다. 한 학기에 사립의 경우 대학원 등록금이 700이 넘기도 하는데, 난 2년 동안 30만 원을 내고 땄으니 말이다. 그것도 내 돈으로.


요즘은 많이 사라졌는데, 난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나왔다.

중 2 때까진 반에서 5등 정도 했던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학교 다니다가 친구들과 농구나 하고 시험 때 빠짝 벼락치기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중 3에 들어가자 주위 아이들의 기류도 바뀌고,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는데, 내 경우엔 무슨 공부 신이 강림했는지, 좋은 고등학교 못 가면 내 인생 X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고졸로 공장에서 노무자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중 3이 되고 1학기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1등을 했다. 전교 5등이었다.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글에 그 시절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 이 글에선 skip.


수석을 노리며 노력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지라 대단한 성적을 낸 것은 아니지만 무난히 비평준화 최상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날 데리고 가서 자랑을 하려고 했지만, 학원비도 못 내주면서 공부할 시간 뺏지 마세요 한 마디로 뭉갰다. 집도 가난하고 부모님의 직업도 변변치 않았지만 부모님은 나에 대해 꽤 자부심을 가지셨던 것 같다.


고교에 들어가서는 한다는 놈들이 다 몰려와서 그런지, 다시 반에서 5등으로 내려 앉았다. 하긴, 다른 친구들은 방학 때 학원을 다니며 선행 학습을 철저히 했을 건데, 난 학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니 처질 수 밖에. 대학 진학이라는 더 높아진 목표를 위해, 더 심한 경쟁을 하게 된 것이 실감이 났다.


거기서 포기하거나 퍼졌으면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내 인생은 공장 노무자보다 조금 더 나은 중소기업 사무직 정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공부하라고 할 때 안한 내 친동생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 당시엔 시험 성적을 다 불러주고 등수까지 게시하던 시절이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현 위치가 눈에 보였고, 공부와 성적의 맛을 이미 본 터라 고 1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지 못하니 방법은 죽어라 반복 밖에 없었다. 오래 앉아서 읽고 또 읽고, 풀고 다시 푸는 것. 학교 도서관에서 제일 마지막에 불 끄고 나오는 것이 나였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그러다 병 나겠다고까지 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거지같이 살면 나중에 병 나게 되어 있다. 라고 생각하고 달렸다.


몸에 무리가 와서 허리를 못 펴거나 아플 때도 있었다. 50분 앉아 있으면 10분은 일어나서 몸을 푸는 것도 그때 선생님들이 알려주셨다. 지금도 회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나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날아갈 때도 꼭 그렇게 하고 있다. 스트레칭은 기본, 푸쉬업은 하루에 100개 이상은 꼭 한다. 코로나 전엔 회사에 요가, 필라테스 프로그램이 있어서 거의 매일 했다. 주말에 하루는 푹 쉬면서 사우나에서 때 밀고 한숨 자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다.


당시엔 ‘수학의 정석’ 이라는 책이 있었다. 워낙 steady seller 라 당시엔 모두 그 책이 기본서였다. 그 책을 10번 봤다.

(글을 쓰다 찾아보니 수천만권이 팔렸다고. 갑자기 부럽다.)


보통 처음 몇 장만 펼쳐 보다가 포기하고 마는데, 한번 다른 글에서 쓴 마라톤에 재능이 있는 내 인내심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보통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막혀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 옆에 공부 잘하는 친구나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쪽 팔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물어보지 않고 넘어가다 보니 잘 모르는 부분이 생긴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도 사실은 공부의 기본인 예습, 복습을 혼자 못하니 선생님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쉽게 가르쳐주고 때로 강제로 이끌어 주는 거다. 선행 학습을 해서 남보다 더 먼저 공부하게 하고, 접하기 어려운 문제 trend나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면서 비교 우위를 만든다.


난 학원을 다니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런 방법을 쓸 수 없었는데, 반복해서 보고 주변에 묻고 하면서 공부를 지속했다. 그때 한 유명한 사범대학을 나온 수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공부를 못 하는 이유는 생각이 산만해져서 여기저기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수첩에 적고 다니면서 틈 나는 대로 다시 풀어보고 고민의, 고민의 과정을 거쳐라. 그렇게 하면 결국 풀리게 되고, 그 고민하는 과정이 실력이 된다.

그렇게 몇 날 며칠, 길게는 몇 달, 몇 년을 한 문제로 고민할 수도 있다.

그리 하면 정 안 될 때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조금만 설명을 들어도 바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결국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끈기 있게 고민하라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게 하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대안이 없던 나는 선생님의 그 말에 감명을 받고 진짜 그렇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바로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나눠서 upload 합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73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살이는 순탄하지 않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