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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ug 23. 2023

친한 선배의 여자친구 (5)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D (마지막 회)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63


“안녕하세요, J 씨.

저 S 예요.“


사내 메신저를 받으면 ‘누구지?’ 정도의 느낌이지, 뭐가 엄청 긴장되고 그러진 않는다.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무던해지듯이.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를 받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치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낯선 여자가 큰 소리로,


"오빠! 잘 지냈어? 나 기억 안 나?"

하는 때와 비슷하게.


"아, 네, 안녕하세요."


메신저는 때로 이래서 좋다.

당황한 내 모습이 표정과 말로 드러나지 않아서.


"메신저에서 찾아봤는데 계셔서 말 걸어봤어요 헤헤"


"네, 그러셨군요."


이럴 땐 단답형이 최선.


"오빠하고는 친하게 지내신 지 오래 되신 것 같더라구요."


"네, 맞아요."


"앞으로 우리 같이 자주 봐요."


왜 그래야 할까?


선배의 여친이자 미래의 형수님이고 같은 그룹사 내에 있으면서,

이렇게 먼저 말까지 걸어줬는데 이상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서일까?

사실 친한 동기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지 내가 직접 겪어 본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잠깐 만남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리' 라고 묶는 것 자체부터 내키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형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요."


"형제님,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요."


라는 말을 들으면 분명 좋은 말인데, 밑에 깔린 의도가 있진 않을까 싶기도 해서 조금 꺼려진다.


그래서, "차차 친해지면 말 놓던지 할께요."

하고 만다.


"네,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관계는 천천히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오래 보아야 쌓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네, 시간 될 때 형하고 같이 봐요.

저 회의 들어가 봐야 해서 이만 나가볼께요.

수고하세요."


"네네~

아, 그리고 우리 사무실도 가까운데 언제 커피 한잔 해요."


그랬나?

언제 우리 회사 위치까지 알아봤지?


"넵"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라고 길게 말하진 않고,

짧게 대답하고 나왔다.


사실 회의는 없었다.

말이 길어지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불안해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직접 얼굴 보고 만난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통해서라도.




그녀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룹에 오래 다닌 내가 그 계열사에 지인이 있어서 자신에 대해 알아볼까봐 두려워서 선수를 쳤던 것일까?


형에게 자신에 대해 잘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님, 자기 편이 되어 주면 3000 갚게 되면, 따로

1000을 챙겨주고,

나중에 3억을 해 먹으면 3000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을까?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대가 치곤 나쁘지 않잖아요?"


비가 오니까 갑자기 서스펜스 소설이 떠오른다.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암튼,

결국 형은 그녀와 헤어졌다.


남자의 경제력과 여자의 어린 미모라는 기본 공식이 있더라도,

너무 대놓고 돈 내놓으라고 하니 싫어졌을 것이다.

더욱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과거를 알게 되어 버렸으니 찝찝함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순진한 남자였지만, 똑똑한 사람이라 그런지,

하자 있는 사람과 백년가약을 맺으면 평생 고생할 수 있다

차라리 조금 늦어져도 최대한 하자 없는 괜찮은 사람을 만나자

라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뜨거운 감정은 아직 식지 않았는지,

이별 후 마주해서 형은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이런 저런 푸념을 하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내가 왜 결혼 포기했는지 아니?"


대충 알 것 같았지만, 그날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야 할 것 같아 되물었다.


"왜요?"


"너한테 말은 안 했는데, 나 예전에 술집에서 만난 여자하고 동거한 적이 있었어."


어이쿠, 쎈 얘기 이제 제발 그만.


내 속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형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무 예쁘더라고. 잘 맞춰주고.

원래 음대 다녔는데, 아버지가 병 걸리셔서 돌아가시고, 보험도 없어서 돈도 다 날리고,

그러고 나서 어머니까지 아프셔서 이 일 할 수 밖에 없다고 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


그래서 어머니 밀린 병원비 내드렸어.

그리고 처음엔 한 달에 200씩 줬어.

술집에서 안 만나고 밖에서 만나서 데이트하는데 너무 좋더라.


같이 손 잡고 걷고, 식당이든 어딜 가든 내 여친이 제일 예쁜 거야.

식당 아주머니도 다들 예쁜 사람 어쩌고 하면서 한 마디씩 하고 말야.

어깨가 이렇게 올라갔지 ㅎㅎㅎ


고기쌈 싸줘서 서로 먹여주면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친해져서 걔가 혼자 사는 원룸에도 몇 번 갔는데 좁고 지저분해서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하나 얻었어.

같이 살려고.


그날 그 친구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밥을 해주는데,

나 조선시대 왕 된 줄 알았잖아.

상다리 뿌러지게 차려주더라고.

잠자리도 완전히 정신 못 차리게 달려들고.


그렇게 퇴근하고 그 집에 가는데 매일매일이 너무 설레는 거야.

야근하고 회사 근처에서 혼밥하고 집에 가다 보면 나 뭐 하고 사나 싶었는데 말이지.

너무 달랐어. 진짜 사는 맛이 나더라.


그냥 일상 하나하나가 정말 좋았어.

마트 가서 모자란 그릇을 사거나, 거기 담아 먹을 음식하고 과일 같은 것 사는 순간들마저 말이야.


한번은 걔가 집에서 빵 만들어 먹자고 해서 재료 사다가 만들었는데,

정말 더럽게 힘들더라. 몇 천 원 주고 사 먹는 빵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들고 번거롭고 손 가는 줄 몰랐어.

그래서 겨우겨우 만들어서 먹었는데, 분명히 빵집 빵보다 별로인데,

진짜 맛있는 거야.

같이 만들어서 같이 먹는 게 그렇게 큰 행복인 줄 몰랐어. 그 뒤로 틈만 나면 빵을 만들어 먹었지. 때로 실패해도 마냥 좋더라고.


그러고 나선, 월급은 거의 다 걔한테 줬어 ㅎㅎㅎ


그래도 그게 하나도 안 아까운 거야.

이런 게 정말 사랑인가 싶더라.

같이 살고 여행도 다니고 정말 좋았어.

그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날 기다려주고 밥 해주고 밤새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어. 어떤 날은 걔하고 떨어지기가 싫어서 출근이 너무 하기 싫을 정도였지?


“그냥 출근이 하기 싫으신 건 아니시고?


그렇게 좋으셨으면 살림 차린 김에 데리고 살지 왜 헤어지셔서 지금도 이리 궁상을 떨고 계신거예요?“


“ㅎㅎ 들어봐.


하루는 조금 일찍 끝나서 왔는데, 다른 남자 신발이 있더라.

들어가 보니 둘이서 다 벗고 우리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고.


눈이 뒤집어 지더라고.

화내고 난리 쳤는데 그러면 뭐 하겠어.

결혼한 것도 아니고 혼인신고한 사이도 아닌데 뭐.

울고 불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어. 그 길로 헤어졌지.


못 생긴 나한테는 집하고 생활비 받아서 같이 지내고,

잘 생긴 남자 하고는 따로 재미본 거였나 ㅎㅎㅎ

굳이 한명만 고를 필요 없이, 원하는 남자 다 있었으니 걔는 좋았겠지?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여자애는 나한테 어머니 병원비 내달라,

200 달란 말도,

집 얻어달란 말도 한 적이 없었어.

월급 달라는 말도 말이야.


그냥 내가 알아서 다 그렇게 했어.

작업 당한 거 아니야.


(형님, 그게 당한 거예요. 자발적으로다가)


아, 집 얻을 때 걔가 나한테 자기 이름으로 계약하면 안 되냐고 하긴 했다. 자기 불안하다고. 내가 자기 버리고 도망갈까 봐.


근데, 몇 억 걸려 있어서 그렇게는 안 해줬지. 우리 대학 전공이 열일한 거지 ㅎ 니가 날 떠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해줬어. 우습게도 걔 마음이 떠나서 그 꼴이 되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헤어진 후에 다시 한번 봤는데, 뭐 할 거냐고 물어보니까 다시 그 술집 나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것 이제 하지 말고 너 음식 잘하고 빵 만드는 것도 좋아하니까,

제빵 학원 다니라고 6개월치 학원비까지 내줬어.

그 꼴을 당하고도 나 바보 같지?“


‘원래 사랑하면 바보가 된다고 했어요.

아예 빵집을 차려주시지 그랬어요.‘


차마 말은 못했다.


“근데, 나 그때 정말 행복했다.


걔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같이 안고 있으면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

너무 편안하고 좋더라고. 마지막까지 내가 진정 사랑했던 여자 미래까지 챙겨준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근데, 도저히 다른 놈하고 내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꼴을 보고는 같이 못 살겠어서 헤어졌는데,

그러고 나서도 너무 힘들더라. 보고 싶고 생각나고.


손발 차가운 걔 예쁜 발을 내 따뜻한 손으로 마사지해주고, 걔가 내 어깨 주물러 주던 것마저 생각나더라.


다시 혼밥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더라고.


마사지 샵에 가서 돈 내고 마사지 받아도,

사랑하는 여자가 정성을 다해서 구석구석 주물러 주는 것하곤 너무 다르더라.


하아~

근데 걔하고 S가 정말 많이 닮았었거든.


처음 만나고 깜짝 놀랐어.

생긴 것도 비슷한데, 하는 짓도 너무 비슷한 거야.

조곤조곤 말투 하며. 손발 예쁜 것에다 가슴 작은 것까지.


병신같이.

그렇게 직접적으로다가,

결혼하려면 3천 갚아달라고 말하면 어떡하냐.

술집 여자 아니고 일반인이라 스킬이 부족했나.


내가 알아서 뭐 해줄 것 없어?

이렇게 해서 내 손으로 그 돈 갚아줬으면 좋았잖아, 안 그래?


전에 그 술집 여자애가 다른 놈하고 뒹구는 꼴 보고 헤어졌는데,

아무리 전 남친이라도 여러 놈하고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


알고는 같이 못 살겠더라.


하아~ 18, 인생 X 같다. 술이나 마시자."


그날 저녁 그렇게 한참이나 더 술을 마셨다.

그런 속사정을 들으니 이해가 되고, 형이 더 측은해 보였다.


이 형은 행복한 사람일까? 아닐까?


형은 평범한 외모의 학교 선생님을 선으로 만나 그냥 저냥 살고 있다.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녀와 함께 있을 때처럼 방실방실 들 뜬 얼굴은 아니었다.


연신 웃음이 나오고 광대가 내려오지 않아,


요즘 말로 하면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던 그때완 달랐다.


정말 좋아하는 여자와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거고.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내 선배와 결혼했으면 내 친구처럼 오순도순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까?


내가 형의 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 가면 음식 솜씨를 발휘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


그녀도 빵을 잘 구웠을지도.

그 모락모락 군침도는 빵 냄새를 맡으며 형과 나는 차마 말은 못하고 눈빛 교환하며 빵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가 좋은 사람 만나서 아름답게 살고 있기를 바래보며,


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모를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전에 여기서 접으려 한다.


때로 이것 저것 많이 듣고 본 작가의 상상력은 엉뚱한 소설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이 글 봐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본 편에서 다시 찾아뵐께요.


이상 드림



아래는 본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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