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Oct 08. 2023

도박 선배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17


“J야, 잘 지내지?“


“아,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응, 뭐 그렇지.”


...


“혹시 너 돈 좀 있니?”


“예? 얼마나요?”


“한 50만 원? “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좀 급하게 쓸 때가 있어서.”


회사를 십 년 넘게 다녔는데 설마 현금 50만 원이 없겠냐만은 선배의 급전 요청을 거절했다. 시간 되실 때 회사 근처 오시면 식사 대접하겠다고 하고 말았다.


‘그 똑똑하고 잘 나가던 형이 돈 50만 원이 없어서 후배에게 손을 벌리다니.‘


원래, 주변 사람들과 돈 거래는 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 선배의 근황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서 더 거절했다.




대학에 들어가 원치 않은 전공을 공부하려니 힘들었다.


원하던 역사학과에는 집안 사정으로 못 가고 점수에 맞춰, 그냥 남들 좋다고 하는 과에 일단 들어갔다.


고시를 보든, 취직을 하든 좋은 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군대 가기 전엔 이래 저래 놀고 시험 때만 빠짝 하다 보니, 이 전공 공부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제대 후 돈 벌고 복학해서 공부하려니 이해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 외워야 할 분량도 정말 많았다.


단순히 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최대한 이해하고 정리하려 했지만, 20대 초반의 사회 생활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이 세상의 복잡 다단한 일에 대해 다루고 그에 대한 학설과 방대한 케이스들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안 그래도 원하지 않던 전공이었고, 선배들 따라 고시에 응시를 해보고 떨어진 후에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알았다. 남들 마냥 몇 년씩 고시촌에서 공부할 집안 형편도 아니었고, 복학하며 빡세게 돈 벌며 돈맛도 알아서 취직했다.


주위를 보면 고시 공부를 하다 안 되면 늦은 나이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난 일찌감치 고시의 길을 접고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땐 인턴을 했다. 4학년 2학기 때는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일단 정규직 계약을 해서 학교 다니면서 회사 다니라고, 배려해 주는 척 하며 잡아두려는 꼼수에 10월부턴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회사를 다니며 학교를 마쳤다.


글을 쓰다 보니 이런 경험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좋은 기회를 만나 석사 학위도 따고 그랬던 것 같다. 그 2년 동안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평일에 한 번씩 야간 수업 듣고, 토요일 수업도 들어야 하며 과제까지 있었으니. 그래서, 박사도 하라고 많이들 권해주시는데 몇 년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대학 때 안 한 공부를 회사를 다니며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졸업은 해야 했기에 시험은 그래도 일정 점수 이상은 받아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했지만, 잘 이해가 안 될 때는 주변에 많이 물어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괜찮은 대학에 들어온 조금 한다 하는 친구들과 선배들이었지만, 쉽게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설명이 주구장창 길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안되면,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여러 번 보고 외워.

다들 그렇게 공부해.”

라는 식이었다.


당연히 다 같은 대학생으로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인데, 무슨 대단한 설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 한 수업에서 그 선배를 만났는데, 키 작고 볼품 없는 외모의 범생이었다.


그 수업은 세미나 과정이어서 인원수가 적었기 때문에, 몇 학번인지 등을 알고 나름 친하게 지내서 그나마 누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조금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하셨다.


미리 책을 읽어와서 뭔가 알 것 같은데, 확실하게 짧게 대답하기가 어려운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다들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그때 그 선배가 대답을 했다.


개념부터 학설들 그리고 판례까지 줄줄이 읊는 것도 신기한데, 쉽게 설명을 하니 귀에 쏙쏙 들어왔다.


교수님도 놀랐다.


"히야~ 니가 여기서 설명하고 내가 앉아서 들어야겠다."


해당 세부 전공 박사 학위까지 따고 정교수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 강의도 하고 논문을 쓰셨던 분에게 들은 칭찬이었다.


즉, 학생들과 교수님의 인정을 동시에 받았다.


그 다음부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 형에게만 가져갔다.


어느 하나 막힘없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감탄했고,


'와~ 내가 변호사가 되어서도 무슨 일 생기면 이 형 쓰겠다.'

싶었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그냥 단순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있는지, 이 학설과 저 판례는 그런 사실관계에 어떤 법 조항을 어떻게 적용했는지와 문제점까지 잘 설명해 주셨다.


고시에 올인할 생각이었으면 이 형 옆에만 딱 붙어서 공부하면 되겠다 싶었다.


흙수저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서 내가 물을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야, 너 꽤 잘 이해한다. 몇 년 하면 시험 붙겠어."

라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쓴 것처럼, 난 이미 군대 제대 후 일하면서 돈 맛을 본 상태였고, 죽치고 앉아서 몇 년 공부할 사정도 아니었다.

졸업이 목적이었고, 학점이 목표였으니 거기서 멈췄다.


그 형은 졸업 전에 고시를 패스했다.

보통 졸업 후 몇 년 동안 공부하는 것이 기본이다. 서른 몇 살까지만 패스하면 괜찮다는 공식까지 있을 정도였다. 검찰총장을 거쳐 현재 대통령을 하시는 분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셨는데도 9수 끝에 고시 패스를 했으니 졸업 전에 고시 패스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분 때는 뽑는 인원이 적어서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인원이 늘어나도 지금처럼 로스쿨에서 막 배출하던 시기가 아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형을 보면서 남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멋지게 설명을 해줄 때도 달리 보였는데, 학부 때 고시 패스를 한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광'이 났다.

자신감도 넘쳐 보였다.


그렇게 연수원에 들어가서도 성적이 좋았지만, 흙수저 출신답게 돈을 택해서 대형 로펌으로 직행했다.


그때부터 그 형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았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고, 로펌에선 그런 형에게 회사 근처에 숙소를 얻어주고 차도 주었으며 고액 연봉을 안겨주며 맘껏 일하게 해 주고, 쉴 때 인생을 확실하게 즐기게 해 줬다.


대형 로펌에 다닌다고 해서 다들 엄청난 연봉을 받는 줄 아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거기서도 출신과 학벌 그리고 연줄, 부모님 배경 등등 main stream에 있어야 좋은 대우를 받는다.

일단, 뭔가 확실한 것이 없으면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어쏘 (associate)라고 불리는 변호사들부터 시작해서 밤새 구르며 자료 찾고 의견서 쓰며 굴러도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 나은 대우를 받는 변호사들도 많다.


예전에 사시 시절 200명 뽑을 때는 공급이 적어서 다들 좋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법률 시장 개방으로 해외 로펌들이 국내에 진출해서 특급 호텔에서 개소식을 하며 영업 활동을 가열차게 하고 있다. 여러 로스쿨도 자리 잡아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매년 쏟아지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친구들까지 한국 회사의 international business에 동참하기 위해 들어오니 공급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사시 시절 적은 인원을 뽑을 때 연수원 마치고 대기업에 들어온 변호사는 곧바로 과장, 높으면 차장이었다. 아시다시피 대기업에서 과장이 되려면 보통 1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보통 대리이고, 사원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연봉도 큰 차이가 없다. 시장은 역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차고 넘치는 변호사들이 줄 수 있는데, 예전만큼 그런 대우를 냉정한 회사에서 해줄 리 없다.


그런 현실에서도 성적 좋고, 능력 좋은 변호사들은 잘 나가고 고액 연봉을 받는다. 특히, 어려운 소송에서 승소를 이어나간다면 당연히 더 큰 대우를 받는다. 그 형은 공부만 잘하고, 성적만 좋은 게 아니었다. 일에도 미친 듯이 몰입해서 성과를 냈다. 하긴,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한다 하는 놈들이 모인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가르치고 교수님을 놀라게 할 정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하고 잘 나가던 그 형이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런가?

아님 변호사로서는 잘 나가고, 커리어도 쌓았으니 뭔가 다른 일에 도전해 보려 하나?


그러고 말았다.

나도 예상과 달리 회사에서 미친 듯이 공부를 시키고, 일을 던져줘서 그걸 해내느라 내 코가 석자였다.


'아이고, 회사에서 이렇게 공부시킬 줄 알았으면 그냥 대학 때 공부할껄 이게 뭔 짓이냐.'


초반에 일도 별로 없고, 구내식당 짬밥에, 회식 시켜줄 때 좋다고 다니다가,

몇 달이 지나자 확 바뀐 회사 생활에 정신이 없었다.




"J야, K 형 소식 들었어?"


"몰라. 뭐 한대? 전에 연락했는데 안 받던데, 바쁜가 보다 했지."


"아니, 그 형 로펌에서 짤리고 지금 아무하고도 연락도 안 된다는데."


"엥?

그 공부 잘하고 일 잘하는 형이 왜 짤려?

뭐 실수했대?"


"아니, 뭐 도박에 빠져서 일도 제대로 안 하고, 강원랜드하고 마카오 다니면서 사고도 치고 그랬나 봐.

참 나, 그렇게 똑똑하고 잘 나가던 형이 그게 뭐냐.

세상 일 알 수가 없다.

회사 다니면서 밥 잘 먹고 다니는 너하고 내가 장땡이다 장땡."


'장땡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식판에 눈칫밥 타먹으면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ㅎㅎㅎ

그나저나 이 형 걱정되네. 설마 무슨 일 난 건 아니겠지?'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번엔 아예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 그 형이 돈 50만 원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온 거였다.


도박하곤 담 쌓은 나고, 도박한다고 눈이 벌개져서 돈 빌리고 다니는 사람도 본 적이 있어서 큰 돈은 아니었지만 빌려주는 걸 거절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회사 근처에서 그 형을 만났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키 작고 못 생겨도 깔끔한 수트 입고 넥타이 매고 반짝반짝 명품 구두에 자신감에 차 있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그냥 쭈구리 아저씨가 면도도 제대로 안 하고 나타났다.


"잘 지냈지?"


"아이고, 형님, 나도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

형에 비하면 잘 지낸 것 같은데요.


얼른 가서 밥이나 먹읍시다."


"그래, 고맙다."


그날 그 형과 오랜만에 학생 때처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맥주에 노가리를 씹으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갑자기 다 시시해지더라고.


소송하는 건 돈은 많이 주는데, 이상한 짓거리 한 양아치 사장들이나 사고 친 그 아들내미들 변론이나 해주니 갑자기 현타가 오고 말야.

일식집에서 10 몇만 원짜리 코스를 먹어도 속이 막 답답한 거야. 울컥울컥 넘어올 것 같고.


아는 잘 나가는 변호사들이 재벌 아들내미한테 술집에서 뺨따구 맞고 쌍욕 먹은 다음에도,

우리가 맞을 짓을 했어요.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는 걸 보며 임계점을 넘어 버렸지.


하, 길바닥 양아치가 그랬으면 이 새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 깜빵에 쳐 넣어 버린다고 길길이 날 뛰었을 인간들이, 돈 앞에선,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큰 고객님 앞에선 개쪽을 당해도 지가 죄송하다고 하는 걸 보면서, 나도 결국 저러고 있었구나 싶더라고. 지금까진 그래도 대부분 승소해서 빰따구만 안 맞은 거지 뭐 다행히.


그렇게 의욕이 떨어지니까 세상 일이 다 시시해지는 거야.


우리 옛날에 대학 때 한일전 축구 보면 재미있었잖아. 그거 보면서 맥주 마시면서 우리 국가대표가 골 넣으면 박수 치고 환호하고 좋아하고 말야.


넓은 오피스텔 거실에서 큰 TV를 보면서 한일전 축구를 보는데, 저게 뭔 짓인가 싶더라.

손은 안 쓰고 발만 쓰면서 저 그물망에 물컹물컹 공 차 넣는 게 무슨 대수라고 다들 저렇게 죽자 살자 난리 치고, 그걸 보면서 뭘 그렇게 좋아하나 싶더라고.


야구도 플레이오프, 코리안 시리즈 보면 재미있었잖아. 9회 말 역전 홈런 쳐서 우리 팀이 이기면 그날 내내 흥분해서 좋아서 술 먹고 축하하고 말야.

근데, 그 공 던지고 방망이로 때리고 그렇게 해서 도대체 내가 좋아지는 게 뭔가 싶더라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지 않냐 하는데, 기분이 좋은 거지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선수들이야 고액 연봉에, 우승 상금과 포상에다가 몸값 올리고, 기업은 광고해서 물건 더 잘 팔고 뭐 그럴 텐데 말이지.


하루는 어떤 X새끼 변론해 주는데 그날따라 못 참겠더라고.

겨우 겨우 그 새끼 이기게 해 줬더니 좋다고 날뛰는 걸 보니까 또 사고 치겠더라고.

지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우리가 막아주겠지. 아니, 지 아버지 돈이 막아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


그러고, 월급도 많이 들어오고, 인센도 크게 들어왔는데 하나도 안 기쁜 거야.


같이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님에게 속 이야기를 하니까 잠깐 쉬면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하시더라고.

다들 그런 것 있고, 그런 시기 있다고.

그 깔딱 고개를 넘어야 최고의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야.


술 마시고 이 짓 저 짓 다 했는데도 점점 더 재미가 없었어.

근데, 카지노 가니까 내가 살아있는 것 같더라고.

막 미치겠는 거야. 흥분되고. 세상 다 내가 가질 수 있겠다 싶고 말야. 다 사버리고 쓰레기 같은 놈들 변호하는 짓 더 안 해도 되고 말이지.


재미도 있고 해서 계속 했어.

시간 나면 계속 해외 나가서 했지.

첨에 많이 땄을 땐 눈이 뒤집혔는데, 계속 하니까 점점 잃게 되더라고.

판돈이 줄어드니까 재미가 없는 거야. 시시해지고.

그래서 대출을 좀 땡겼지. 어차피 많이 버니까 금방 갚을 거고.


마지막 한방에 그때 촉이 왔을 때 올인으로 다 질렀거든.

그래서 다 털렸어, 18.

결국 이 꼴 됐다. 마시자."


짧게 이야기해서 이 정도지, 그날 저녁에 한 긴 이야기를 여기 남기면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와,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저런 식으로 도박에 빠져서 이 모양 이 꼴이 되는구나.

좋은 학벌에, 좋은 직업에, 대우에, 많은 돈에 다 가지고 그냥 그렇게 가기만 해도 인생 탄탄대로인데,

생각 조금 잘못해서 도박에 제대로 미치면 저렇게 되버리는구나.'


도박은 마약과 같이 중독된다는 말이,

인간의 기본적이고 강력한 욕구인 성욕보다도 더 강한 것이 도박이고,

거기에 미치면 식욕도 사라져서 배 고픈 것도 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점심 때 짜장면 한 그릇만 때려도 낮잠 한 숨 자야 뭐가 되는 인간이,

먹지도 않고, 수면욕도 이기고 밤새 카드를 치고 있는 모습.

사실 꽤 봤다.


술에 취해서 그랬는지 그 선배에게 50만 원을 현금 지급기에서 찾아서 주고 헤어졌다.


그 똑똑하고 잘 나가던 형이 비굴하게 후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한편으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 정도의 돈을 받으며, 주머니에 찔러 넣는 걸 보며,

내 모습을 보았다.


내가 저 꼴이 났으면 난 어땠을까?

자수성가해서 자존심 쎈 내가, 밥 사주면서 조언해 주고 형 노릇하다가,

그랬던 후배에게 밥 사달라, 돈 빌려달라 할 수 있을까?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채업자에게 개무시 당하면서 돈 빌려 달라고 하고,

못 갚아서 추심 당하면서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그날 이후 그 형을 다시 보지 못했다.

다 내려 놓고 건강하게 살아있기만 기도할 뿐이다.


도박을 절대 하지 않고,

도박에 빠지려는 후배들이 있으면 극구 말리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3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