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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Nov 05. 2023

건물주의 꿈

소설 사기꾼 1-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참고로, 이 글은 앞의 글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상상 속 100 프로 허구의 소설입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288


이번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 연재 브런치 북과 관련하여 공유 겸 기록할 것이 있어 남겨 둡니다.


‘I am 신뢰 예요’의 전과자 사기꾼 전청조와 그의 전 애인 펜싱 국대 금메달리스트 출신 남현희의 공범 여부로 많이 시끄럽습니다.


사기꾼 천국의 일면을 본 것인지, 때마침 나온 가쉽들이 정치의 계절이 온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다만, 한 유명한 프로파일러 출신 교수님이 한 방송에 나와 말씀하신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사기 사건이 900 건이고, 연간 사기 범죄 피해액이 160 조가 넘는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160억을 잘못 말씀하신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연간 예산인 600조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지요. 꽤 큰 재벌 그룹 정도 되어야 계열사 다 합쳐서 매출이 160 조 정도 될 겁니다. 제가 알고 있기론, LG 그룹이 그 정도 되고, 롯데나 한화 그룹도 그 정도는 안될 겁니다. 이 정도면 왜 사기 공화국, 사기 산업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됩니다. 소말리아의 해적 산업을 욕했는데, 남 욕 할 때가 아니었네요.


더 안타까운 것은 사기 피해자가 금전을 다시 돌려 받는 것은 5%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못 받는다고 볼 수 있지요. 전세 사기의 예를 봐도, 이해가 됩니다.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도 못 받는 경우들이 있으니까요.


전청조가 남자, 여자를 왔다 갔다 하며 사기를 친 것은 쉽게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라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서 말만 그럴싸하게 좋게 하는 것이지요. 뭐라도 있는 듯. 사실은 입만 열면 구라면서요.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거기에 대해서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욕망은 누구나 있습니다.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

분위기 좋은 곳에서 대접받으면서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

멋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부러움을 사고 싶은 욕망 등


원래는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즉, 공부 열심히 해서 능력을 쌓고, 성실히 노력을 해서 일을 하고 결과를 만들며 성과를 창출해서 가져야 하지요.


그렇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일해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번 돈으로,

3.8 억이라는 벤틀리 차를 타던, 1000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건 누가 뭐라고 하겠나요.

사회적 위화감 조성? 뭐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안 해주면 고맙겠지만, 솔직히 그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성실하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겠다는데 돈의 순환의 관점에서 있는 사람이 써 준다고 보면 그리 나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욕망은 있는데,

능력이 없고, 성실하게 노력도 못하겠으면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됩니다.

공부 못해서 학위나 자격증도 못 땄는데 월급 많이 주는 자리에 뽑아 주나요.


공부 못해도 성실히 노력하고 일해서 벌면 되는데 그런 노력 또한 기울이기 싫다면,

당연히 그 욕망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TV, 영화, 광고, 골프, 인스타 등으로,

능력과 노력은 그대로인데, 욕망은 부러움으로 인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접어야 하는데, 그 높아진 욕망을 충족하려 하다 보니,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기를 치거나, 물건을 훔치는 절도, 강도 등의 행동 말이죠.


쉽게 말해, 없으면 안 쓰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개인에게는 월 30만원 정도 쓰고, 구내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습니다. 인스타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대출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안되나 봅니다. 스스로 능력 대비 욕망이 너무 높거나, 주변으로부터 더 큰 욕망의 자극을 받거나 둘 다 거나 그러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겠지요.

그럼, 그렇게 범죄를 저질러서 2년 정도의 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와,

교화는 커녕, 더 큰 사고를 치고 다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전청조의 아버지 전창수도 사기 쳐서 공개 수배 중이라고 하더군요. 부녀 (맞지요?)가 동종업계에서, 그들 말로, 열심히도 ‘접시 돌리고‘ 있습니다.


욕망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를 저지르고,

처벌 받으며 죄를 뉘우쳐야 하는데, 더 큰 죄를 저지른다?

이번에도 한 5년 살다 나오면 정신 차리고 욕망을 줄이고, 성실하게 합법적으로 살까요?


이미 갱생의 기회는 한번 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에게는, 엄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격리시킨다는 목적도 달성하고, 본보기가 되겠지요.


이번에 사기 피해액이 19억이라고 하니, 19 X 2 해서 38년 정도는 살고 나와서, 60대가 되어도 정신 안 차리고 또 비슷한 짓 할지 우려가 되는데, 이번에 어떻게 처벌받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아마 많은 비슷한 사기꾼들도 지켜보지 않을까요?


‘어, 뭐야. 저 난리치고 걸려도 얼마 안 사네. 별 거 아니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받진 않겠지요?


설마 한 5년 살다 나와서,

“I am 문제 없어요.” 하며,

또 비슷한 짓 하게 할 정도로,

우리 경찰, 검찰, 법원이 바보는 아닐 거라 믿습니다.


이번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이 친구. 뉴욕에서 승마하고 사업했다더니, 경마축산고 출신이네요. 그마저도 중퇴했다고 뉴스에서 들은 것 같네요




부동산 중개 보조원 B는 지방 소도시 출신이었다.


공부는 일찍부터 담 쌓았고, 아버지는 일꾼이셨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은 나름 평온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시다가 학교 급식소로 가서 일을 하셨다.


안정적인 10급 공무원이 되었다고 좋아하시고, 학교에서 남은 반찬을 싸 오셔서 반찬 걱정도 없었고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급식소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곳이었다.


더운 데서 대량의 음식을 만들고 옮기고 치우는 일은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다.


"열기와 먼지 속에서 일을 하다가 머리가 핑 돌아서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나중엔 아이들이 밥 먹으러 우르르 뛰어 내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더라니까요."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거리로 나와서 데모를 하며 말씀하시는 걸 그 당시엔 잘 몰랐다.


가난한 집에서 일이 힘들다는 말은 서로 잘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라 말 할 필요가 없고, 그럴 힘도 없다. 집에 와서 씻고 나면 만사가 다 귀찮다. 신세 한탄하다가 자칫 싸우게 되면 내일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집에선 그랬다.


어머니는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서 그러신 지 무릎부터 안 좋아지셨다.

당뇨와 유방암 등 병이 줄줄이 잇따랐다. 힘든 일을 더러운 곳에서 계속 하니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조리 기구 등에 손가락이 잘리거나 죽는 사고 같은 걸 안 당하신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눈을 감으실 때도 눈물을 흘리면서 가셨다.


공부도 못하고, 잘 하는 것도 없는 못난 아들놈이 자기 앞가림하며 밥은 잘 챙겨 먹고 살지,

자신이 열악한 급식소에서 고생하며 병을 얻었듯, 공장에서 일하며 다치거나 병에 걸리지 않을지

돌아가실 때까지도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이셨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도 고된 일을 하고 들어오셔도 어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을 받고, 화목하진 않았지만 가끔 농담도 하고 웃으며 함께 밥을 먹었다.


한 번씩 일당을 많이 받거나 보너스 같은 걸 받으신 날엔 꼭 시장에서 통닭을 사 오셨다.

옛날 통닭.

그것도 아버지 딴엔 기분 좋을 때, 무리해서 기분 내는 것이었을 거다.


정작 본인이 사 오시고도 아버지 본인은 잘 드시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통닭을 소주와 함께 드셨다.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거다.

세상은 이 소주처럼 쓰지.

그래서, 사람들이 몸에도 좋지 않은 이걸 매일 자기 발로 가서 돈 주고 찾는 거다.

고된 세상사 잠시나마 잊어 버리려고.

이 쓴 소주가 달다고 하니, 세상이 얼마나 쓰겠냐.

너도 아이스크림 먹다가 과일 먹으면 하나도 안 달지?

그래도 몸에 안 좋다. 많이 마시지는 마라.“


사이다나 맥주와 드시지 뭘 소주에 드시냐고 물으니, 이런 알 듯 모를 듯 한 말씀을 하셨다.


‘자기는 마시면서, 나한테는 마시지 말라는 또 뭐야.‘


그땐 그런 일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중요한지 몰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날이 늘었다.

어쩌다 반주로 한두 잔 드시던 술이, 한 병이 되고, 두병이 되고 매일같이 드셨다.


식당에서 김치찌개 같은 걸 사 와서 드신 적도 있었지만, 컵라면을 끓여서 그렇게 드시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날 앉혀놓고 한심한 놈이라고 욕하며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길 반복하셨다.


첨엔 힘드셔서 그러시겠지 하고 말았지만, 계속 그러시니 짜증이 났다.


그래도, 참았다. 어딜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아버지를 저렇게 내버려 두면 혼자 돌아가실 것 같아서였다.


그저 내 방에서 게임하고 걸 그룹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낙이었다.


너무 자주 많이 봐서 그런지 꿈 속에도 나타나곤 했다.


그녀들과 데이트하는 꿈도 꿨다. 특이하게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데이트를 했다. 어떨 땐 몇 명이서 같이 놀기도 했다.


내가 노래를 못해도, 잘 부른다고 박수 쳐주고, 막춤을 춰도 귀엽다고 해줬다.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이런 천국이 없었다.


현실은 김밥 천국에서 김밥에 라면, 잘해야 싸구려 돈까스 였는데. 그마저도 너무 올라서, 이젠 컵라면에 삼각 김밥이다.


“여기 전망 좋지?”


“웅, 오빠, 여기 오빠 집이야?”


“아니”


“그럼, 전세야? 월세야?”


“아니, 다 내 건물이야.”


“우와, 오빠 진짜 짱이다.

완전 멋있엉~“


“자~ 이거 받아”


“뭔데?”


“보면 몰라? 니 선물이지.“


“우앙, 오빠 나 디올 빽 좋아하는 거 어뜨케 알아쏘, 잉. 딱 내가 갖고 싶었던 거넹. 쎈쓰쟁이~ 인스타 올려야징~ 고마워~ 쪽~“


“내가 니 맘 모르면 누가 알아?”


“아몰랑.“


그러다 아침에 깨면 너무 생생해서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허무해졌다. 걸 그룹은 커녕, 내 주위엔 여자라곤 없다.

어머니가 내가 대화를 하는 거의 유일한 여성이 이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론 여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일하는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면서 정도였다.


못 생기고 지저분한 날 보고 인상을 쓰긴 했지만, 그런 모습도 어떨 땐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미쳐가는 거지. 현타가 온다.


그런데, 여친? 당장 내 밥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선물은 커녕, 같이 밥 먹고 돌아다닐 돈이 어디 있나. 그

돈 있으면 먹고 싶은 거나 실컷 먹고 싶다.


출근시간에 맞춰 나가려면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다.


담배부터 한 대 피워 물었다.


하아~ 귀찮은데 머리 감지 말고 그냥 갈까.

그러자, 대충 모자 쓰고. 코딱지 같은 돈 얼마나 받는다고.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버스비도 200원 올랐다. 제길.




"야, 좀 씻고 다녀라.

손님들이 널 보면 기겁하는 거 안 보여.

손님들이 다시 오게 해야지, 이건 오던 손님도 내쫓고 있으니. 으이그.

니 가게 아니라 이거야? 엉?

사람 구하기 힘들고, 불쌍해서 써줬더니 시키가 진짜."


그날따라 사장 아저씨의 짜증이 많았다.


'매상이 떨어졌나. 마누라 하고 싸웠나.

왜 나한테 성질내고 지랄이야. 지랄이.

월급도 적게 주면서 그것도 제 때 주는 적은 한 번도 없고 늦게 주려고 난리 치면서,

푼돈 받으면서 내가 이런 짜증까지 받아줘야 하나,

18 빨리 때려 치워야지.'


그래도,

당장 때려 치울 건 아니어서,

예, 알겠습니다.

잘 씻고 다닐께요.

하고 말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에게 돈 달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돈이 없기도 했지만, 왠지 그런 말을 꺼내기 조차 싫었다. 어렸을 때도 용돈은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그래도 어머니가 편했다. 내 말도 다 받아주고.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때문에 처분하는,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한 끼 때우는 것도 좋았다. 빵까지 먹을 수 있는 날은 꿀이었다.


“어! 너 B 아니냐?”


“예?! 누구...”


자세히 보니 양아치 동네 형이었다.


오토바이 사고 내고 나서 도망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며 말 많던 그 형. 성이 김 씨였는데 오죽 말이 많아서 별명이 김씨 아줌마였다. 그런데, 누가 그 별명을 부르면 죽도록 싫어했다. 그것 때문에도 많이 싸우고. 확실히 ‘자기 객관화’ 라는 게 안 되는 인간이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찌질이였는데, 못 본 사이에 많이 깔끔해졌다.

옷도 좋아 보이고, 머리에 스프레이 좀 뿌린 것도 그렇고.


그런데, 뭔가 안 어울려 보인다고 할까.


'개 발에 주석 편자'

학교에서 배울 땐 그게 무슨 말 인가 했는데, 이렇게 보니 뭔지 알 것 같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야.


"시골에 쳐박혀서, 편의점에서 이게 뭐냐, 남자가. 쪼다 같은 새끼.

서울에 놀러 올 일 있으면 연락해라. 술 사줄께. 잘 지내고."


하며 명함을 한 장 남기고 갔다.


엣지 리얼 이스태이트 컨설팅?


'이게 뭔 말이야.

공고 나와서 영어는 X도 못하면서 영어 쓰는 건 더럽게 좋아하네. 외국 나가선 한마디도 못할 거면서.

'태'는 이게 맞는 거야? '테' 같은데. 18 나도 모르겠다.'


쓰레기 통에 넣으려다,

혹시 모르지.

서울 놀러 갈 일 있으면 가서 밥이나 한 끼 얻어먹자

하고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 때우기,

일 하는 척 하며 사장 눈치 보기 알바 시간을 겨우 채우고 집으로 갔다.


“어이구, 집에는 빨리 가고 싶은가 보지.

퇴근 시간 30분 전부터 퇴근 준비하시고.

가라 가. 엉. 그리고 앞으로 나오지 마라. 엉“


‘I2C 꼭 퇴근할 때 기분 더럽게 저렇게 해야 하나.

자기도 귀찮은 일 하기 싫어서 알바 필요하니까 쓰면서.‘


그렇게 우울하게 집에 들어갔는데,

그날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컵라면에 소주를 드시고 계셨다.


“B야, 이리 와 봐라.”


아버지도 적적 하셨겠지.


그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날 부르는 것 자체가 그냥 싫었다.

특히, 이런 날은 더.


방에서 편의점에서 싸 온 빵과 과자 먹으면서 캔맨주 때리면서 게임하고 걸 그룹 뮤비 보는 게 제일로 좋았다.


맞고를 치면 난 50억을 가진 왕이었고, 총 쏘는 게임을 하면 난 최고의 명사수였다.


그러다 게임이 안 풀리거나 재미 없어지면, 유튜브만 틀면 예쁜 걸그룹들이 날 보며 웃어줬다.


헤에~


낮에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 카드 잔액이 없는 걸 갖고 나에게 짜증 내던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가 인상 쓰는 것 하곤 너무 달랐다.


그런데, 아버지가 붙잡고 있으니,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하기 싫은 걸 하고 있는 게 완전 고역이었다.


밤이 깊도록 계속 그러시다,


"너 돈 있지, 가서 소주하고 안주거리 좀 더 사와라."


'18, 자기가 번 것도 아니면서.'


순간 빡쳐서 이제 그만 드시라고 했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며 내 뺨을 때리셨다.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하며 대들었고, 아버지와 몸 싸움을 벌였다.


“18, 이런 X 같은 집구석에서 안 살아. 나 갈 테니까 잘 사세요!”


하고 집을 뛰쳐 나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처음엔 자유로웠다.


꼴 보기 싫은 걸 안 보니 시원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니 추웠다.


갈 곳이 없었다.


찜질방이라도 가야 하나.


거지 같은 집이라도,

역시 돌아갈 집이 있고, 두 발 뻗고 편히 잠 잘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얼굴을 다시 보기가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서 오라고 다독여 주셨을 텐데. 그러면서 못 이긴 척 들어가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기차역을 지나고 있었다.


추워서 일단 들어갔다.


신문지라도 덮고 여기서 자야 하나.

내가 이렇게 노숙을 하는구나.


문득 열차 시간표를 보니,

조금 기다리면 서울행 기차 시간이었다.


뭐에 홀렸는지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를 타고 밖을 바라보니 갑자기 오기가 치솟았다.


"이 더러운 세상.

인스타 보면 다들 해외 여행 다니고, 골프치고, 호캉스 하면서 잘 살던데.

명품 옷에, 구두에, 빽 들고 맛집 다니면서 잘 사는데 왜 나만 이 모양 이 꼴이야.


난 우리 부모처럼 안 살꺼야.


돈도 왕창 벌고 떵떵거리면서 살꺼야.


씨, 씨그니엘에서 살꺼야. 한강 보면서 걸그룹 같은 여자애들하고 같이 살꺼야.


건물 사서 건물주 되어서 월세 받으면서 편하게 살꺼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꺼야. 재벌되서 왕처럼 살꺼야~~~!!!“


그렇게 B는 서울행 무궁화 호 열차에 올랐다.

수중엔 알바비 모아뒀던 몇십만원 남짓하는 돈이 있었다.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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