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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Nov 12. 2023

점심 식판과 함께 한 시대상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177


점심 시간에 빨리 먹고 쉬고 싶은 어른들이 계시지요. 보통 10분, 빠르면 5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밥을 꼭꼭 씹어 먹으라는데, 씹기는 커녕 그냥 마셔 버리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지요.


위 이전 글에서 말씀 드렸듯,

산업화의 전사들답게 함께 우르르 몰려 가서 8282 먹는 게 미덕이고 몸에 배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8명이 중국집에 가서 주문하면 빨리 나온다고 짜장면 8개요. 군만두 서비스.

하던 시절도 점점 변하고 있지요.


요즘도 이러거나 탕수육이나 깐풍기도 안 시켜주는 곳은 없겠지요? 8명인데 소짜 하나 시켜줘서 한 명이 하나씩 맛만 보면 사주고 욕 먹습니다.


이럴 때만,

소식이 건강에 좋다

는 비겁한 변명은 이제 그만 ㅋ


점심 시간이라도 따로 편하게 먹고 쉬고 싶은데, 밥을 어떻게 혼자 먹냐며 밥 먹으러 같이 가자고 부르시지요. 하루 종일 같이 근무하면서 가족보다 더 얼굴 오래 보는 사이인데 정이 있지 않냐며.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 비슷한 걸 하십니다.

딴에는 챙겨주신다고 그리 말씀을 하시지요.


물론, 반대로 본인을 그렇게 챙기지 않으시면 삐지시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남성 호르몬은 적어지고, 여성 호르몬이 늘다 보니, 자꾸 눈물이 많아지고, 서운해하고, 말이 많아집니다.


주변에 아줌마 별명을 가진 아저씨들이 늘어나고, 어떤 분은 저녁 회식할 때 지갑에서 비아그라를 보여주실 때, 아직 파이팅이 남아 계시는구나. 남자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한 말씀 드립니다.


“부장님, 근데 이거 병원 가서 처방 받고 약국에서 탄 겁니까? 아니면 그냥 버리세요. 요즘 뉴스에서 이런 거 불법 제조해서 술집 같은 데서 싼 값이라고 풀고 있다네요. 괜히 하룻밤 즐겨보겠다고 평생을 걸지 마세요. 실명할 수도 있다니, 심봉사 꼴 나기 싫으시면 제 말 들으시길.“


나이가 들면 소화가 잘 안 되니 많이 먹지도 못하시지요. 치맥은 사실 젊은이들의 향유물입니다. 어른들은 그런 거 잘못 먹으면 탈 나지요. 돼지고기도 먹으면 소화 안된다고, 삼겹살 회식에 본인만 소고기 시키시는 분도 간혹 계십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랬던 분이 젊은 친구들이 식판에 밥을 많이 타 오면 이런 핀잔을, 대화 한답시고 던지시는 걸 보곤 합니다.


“뭘 이렇게 밥 많이 담아 왔냐?

마누라가 집에서 밥 안 주냐?“


예전엔 보통 이렇게 대답을 많이 했습니다.


“담다 보니 맛있어 보여서 그런지, 많이 담았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엔 조금 적게 먹을께요.


이번엔 빨리 먹겠습니다.“


조금 더 할 말 해도 이 정도였지요.


“저는 천천히 먹겠습니다.

다 드셨으면 먼저 가서 쉬세요.“


대안까지 마련하며 평생 볼 지 모르고, 결혼과 조사 뿐만 아니라, 집들이와 돌잔치까지 서로 다 챙기던 때 이야기지요.


그 많은 경조사와 행사에 안 가면,


“누구는 뭐 바쁜 일 있대?“

하며 눈치 주던 그런 시대였지요.


오래 봐야 할 직장 동료와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상사라면 눈치를 보며 이렇게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한 직장에서는 3 ~ 5년을 max 로 잡고 이직해서 연봉과 대우를 높이려는 어린 친구들은 이렇게 나오는 경우가 있지요.


“아니, 밥 사주시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주는 밥 제가 먹고 싶은 만큼 타다 먹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으세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취준생이 아니라, 취업 후 이준생 (이직 준비생)이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경조사는 대부분 챙기던 시대에서, 지금은 이직하면 어차피 안 볼 건대 하며, 이걸 챙겨야 하나 하는 고민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한테 지금 종교 강요하시는 거예요?”


“국 하고 반찬 해두면 식사 정도는 혼자 챙겨서 드실 정도는 되시잖아요.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 드려야 하면 제가 어떻게 살아요?“


요즘 괜히 한 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건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시어머니가 되신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밥이라도 해 놓으면 다행이지요.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경조사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예전엔 3만 원, 5만 원이 대세여서 그나마 부담이 덜했지요. 10만 원, 20만 원 이상은 정말 친하거나 특별한 관계에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물가도 오르고, 예식장 비용도 기본 천만 원 깔고 가고, 이것 저것 다 하면 5천만 원이 기본인 시대입니다. 옛날엔 호텔이 5천만 원, 1억 그랬었는데 많이 오른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루 식 올리면서 굳이 이 돈 써야 하냐며 다른 대안을 찾거나, 그냥 일단 같이 사는 사람도 늘고 있지요.


예식장 밥 계산도 1인당 6만 원인 곳이 많다고 하니, 5만 원 내려면 아예 안 오는 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서민들은 돈 때문에 이렇게 부담스러워서 못 가고, 결혼식 잔치에 가서 밥 먹는 것마저 이리 어려워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네요.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대출 이자 갚고, 세금 내고, 생활비 나갈 고정 지출 쓰다 보면 이런 말도 많이들 합니다.


“가뜩이나 월급은 안 올라서 쓸 수 있는 돈이 (유식한 말로 가처분 소득) 얼마 안 되는데, 이번에 또 경조사 터졌다.”


이렇다 보니 경조사 등 돈이 많이 드는 일에, 동료나 지인들이 도와준다는 부조마저 쉽지 않아 지고 있지요.


정부는 물가 관리를 하고, 상승폭이 둔화되었다 라고 좋은 말을 외치지만, 정작 서민들은 이미 올라버린 물가에 장 보기도 힘들고, 회사에서 점심 때 외식하면 부담스러워서 구내식당 식판을 찾는 시대입니다.


식판에 밥 타 먹는 게 뭐라고, 회사에 구내 식당이 있는 걸 부러워하는 직장인들이 있을 정도이니, 씁쓸합니다.




그래도 사람은 잘 안 변하지요.


습관이 무섭습니다.


밥을 왜 이렇게 많이 푸냐, 집에서 마누라가 밥 안 차려주냐는 거의 고유대사를 부장님이 오늘도 굴하지 않고 한 친구에게 날립니다.


저 결혼 안 했는데요.”


머쓱해집니다.


“그래, 많이 먹어.“


이혼률이 높아지고, 출산률이 저하되는 건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연장선상에 함께 있습니다.


사실 이 세 가지의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요약되는, 높은 집값, 높은 물가, 높은 이자 속 변함없이 꿋꿋이 그대로인 월급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예전처럼 단칸방에서 시작하고 애 키우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 단칸방마저 전세 1-2 억이 되어서 전세대출을 받아야 하고, 그마저 전세 사기로 떼일까 봐 노심초사 해야 하는 현실에 요즘 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도 요즘은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기도 하지요.


“아니, 돈 있으면 배달 시켜서 다 챙겨먹고, 나이 들어서 아프면 돈 있으면 실버 타운, 없으면 요양원 들어가면 되는데 결혼 왜 해요? 골치 아프게. 시월드에, 남편 딴짓 하는 꼴 보고, 내 맘대로 안 되는 자식 걱정 하느니 그냥 혼자 살래요. 사교육비 때문에 돈은 돈 대로 들고, 나중에 부양해 달라 말도 못할 바에야. 그 돈 내가 그냥 쓰면서 편하게 살지요. 뭐. 친구야, 애인이야 필요하면 사귀면 되는거구요.”


노 키드, 비혼주의는 도처에서 많이 접할 수 있고, (남자도 많습니다.) 공부 많이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여성 분들 (대표적으로 공무원 분들) 중 4-50 대 미혼 여성 분들이 많은 걸 보고 듣습니다. 물론, 돌아온 분들, 돌싱에 이어, 돌돌싱까지도 종종 봅니다.


거기까지도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요.


똑같은 질문에 한 친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혼했는데요.”


“아, 그랬어? 미안“


순간 숙연해졌습니다.


명절 때도,


취업했어?

결혼했어?

임신했어?


라는 콤보 때문에, 명절 때 차라리 일을 하겠다고,

아니면 단기 알바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요.


잘 되고 있으면 당당하게 자랑하고 싶어서라도 말할 겁니다. 아니면 그냥 그런 말을 꺼내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괜히 기분 상하고, 명절에 싸우고 얼굴 안 보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심하면 명절 후 이혼해서 건수가 증가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은 이혼하고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로 불편해지기도 해서 굳이 말 안 하는 거지요.

뭐 좋은 일이라고 입에 담고 싶겠습니까.


어설프게 요즘 다 하는데 새 출발 하면 되지

라는 말도 어색해진 분위기 탈출용이지만,

그렇게 쉽게 탈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그런지,

혼자 먹는 게 편할 때도 있고,

어떨 땐 차라리 별 말 없이, 해도 날씨 이야기 정도나 하면서 후딱 밥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지요.


즐겁게 웃으며 점심 식판을 마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편하게 밥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라고들 하는데,

그게 왜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다들 열심히 사는데,

왜 그게 문제고, 고민해야 할까요?


밥을 먹고 편하게 두 다리 쫙 뻗고 잘 수 있는 집은 삶의 기본인데, 어째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심하게는 죄 짓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지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남자는 군대도 다녀오고 그랬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되려 불행한 사람들이 많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기본인 헌법엔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는데 말이지요.


우리나라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민들은 낸 세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평범하게만 먹고 살 걱정 없이 살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공짜가 아니지요. 1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600조 원에 달하고, 국민들을 위한 공공의 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100만 명이나 되는데, 대한민국 행복지수가 그렇게 낮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걸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없는 한 직장인인 저는, 이런 문제 의식이라도 가져 보고, 제 삶에선 가장 기본적인 옛 격언을 생각해 보며 살아 보려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자상함과 다정함이 기업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고 있는 시대입니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일하고, 종업원들을 쥐어 짜던 시대의 행동을 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있고, 기업 이미지는 개판이 되어 매출 급감이나 급기야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시대가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부하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상사는 오래 가지 못한다

라는 말까지 나오고,


팀장이나 임원과 같은 관리직이 되려면,

해당 팀의 열명 이상의 긍정 평가가 필수 요소가 되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윗사람들에게만 아부하고 잘 보여서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했던 시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배려와 경청이 항상 communication 에서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낯 간지러운 말 못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래도 한 마디하고 싶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되려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에게 오래 된 격언을 말씀 드리며,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침묵은 금이다.”


의도치 않게,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할 수 있고,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줄이라고들 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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