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갈라파고스 (1)
협상이 끝나고 나에겐 짧은 휴가가 주어졌다.
일하고 협상하고 준비하고 보고하느라 주말에도 계속 일을 했더니, 대체휴가가 발생했다며 현지에서 다 쓰라는 지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남미 고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지대 휴가라는 것이 있어서 휴가비까지 지원해주니 계획을 세워서 잘 놀러 갔다 오라고 한다.
‘히야,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주말에도 일하고, 높은 데서 산소도 부족한데 머리 띵 해가며 일했더니 이런 휴가까지 챙겨주네.‘
어디를 가볼까 몇 군데 후보지 중에서 휴가비로 패키지 여행비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갈라파고스로 정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관련된 그곳.
한국에서 미국을 경유해 여기까지 와서 호텔비에 뭐에 인당 천만 원은 잡아야 하는데, 나는 여기 있으면서 휴가비까지 지원받으니 백만 원으로 여행이 가능했다.
이런 게 주재원 생활의 묘미라면 묘미지.
터키에서 열기구 풍선이 날아다니는 카파도키아도 가본 것을 비롯, 해외 출장 파견을 다니면서 유명한 곳을 많이 가본 것 같다.
이래서 내가 회사 욕을 잘 안 한다.
다른 사람들과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가는 거고 많이 돌아다닐 생각에 숙소는 다소 저렴한 곳이 포함된 패키지로, 현채 친구 도움을 받아 예약을 했다.
확실히 한국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느껴졌다. 현지 물가가 낮은 것도 한몫했고, 중간 업체의 수수료와 마진 등이 빠지니 그런 것 같았다.
며칠 후 ’summer vacation' (여름휴가)라는 로고가 달린 모자와 휴대가 편한 작은 크기의 백팩과 여행 용품이 지사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여행 가는 기분이 비로소 나기 시작했다.
“잘 어울리냐?”
싱글벙글 여행 용품을 가져다준 현채 친구에게 모자를 쓰고 백팩을 메고 말하니,
엄지 척하며,
“muy guapo"
“완전 멋있다.”라고 해준다.
내가 솔직히 뭐가 멋있겠나? 동료들과 여행 기분 같이 내면서 덕담 건널 때가 재밌을 뿐이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보다.
“Gracias, amigo."
고마워, 친구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나.
갈라파고스는 현지 국내 항공이라도 직행이 아니라 해안 상업 도시를 (Guayaqill) 한번 경유해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 당초 대기 시간보다 한참을 대기했고 기체 결함으로 긴급 정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고 이거 몇 시간을 여기서 뭐하나?’
이 도시는 지난번 출장으로 한번 온 적이 있는데 다른 도시보다 위험하다는 설명을 들어서 좀 더 조심스러웠다.
할 일 없이 시설이 좋지 않은 공항에 있기 그래서 바람이나 쐴 겸 공항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타고 중심가 쪽으로 갔다.
‘대낮이고 도심지 위험한 곳인데 무슨 일 있겠어?’
오산이었다.
도시를 걸으며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리저리 걷고 있는데, 어린아이 몇 명이 다가와서 껌을 사달라고 했다.
불쌍해 보여서 10 달러 정도 줄까? 하다가 괜히 지갑을 꺼내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현금이 없다고 휴대폰 케이스에서 카드를 보여줬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냥 못 알아먹는 척하고 지나가 버리는 게 최선이었는데, 괜히 휴대폰을 보여줬더니 계속 따라오며 나를 둘러싸고 껌을 사달라고 칭얼거렸다.
좋게 말하고 나 지금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한다고 벗어나서 휴우 한숨 돌리고 주머니를 보니 휴대폰이 없었다.
헛
직감적으로 이 녀석들이 훔쳤구나 싶어서 그 녀석들을 보니 불안한 눈빛으로 뛰고 있었다.
빨리 달려가서 내 휴대폰 내놓으라고 큰 소리를 치니, 처음엔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저 멀리 교통정리하는 경찰이 보이길래 가리키며 잡혀 갈래 하고 다그치며 녀석들 옷을 자세히 살폈다.
한 녀석 호주머니가 볼록 튀어나온 걸 보고 손을 짚어넣었더니 내 휴대폰이 있었다.
휴우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하고 돌려보내고, 돌아다닐 맛이 떨어져 공항으로 다시 돌아갔다.
왠지 앞으로 고생 꽤나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왔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갈라파고스 공항에 내리니 일단 허름했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는데 깨끗하게 잘 좀 만들지 싶었다.
그리고 seguridad (security check 보안검색) 줄을 서 있는데 앞이 시끄러웠다. 가뜩이나 라인이 몇 줄 안 되어서 줄이 긴데 저러고 있으면 이게 오늘 내로 숙소에는 도착하겠나 싶었다.
공항에서도 주도 중심지까지는 꽤 이동하고 배도 타야 했다. 고생 고생해서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어, 이거 뭐야. 그냥 큰 섬이잖아.‘
거북이만 엄청 많네.
헛, 도마뱀이 엄청 크네.
(후에 알고보니 이구아나였다. 파충류는 무섭다. 포유류인 나로서는)
전에 숙소에서 보든 도마뱀과는 크기 차이가 많이 났다.
‘저거 잡아다가 공장 숙소 관리하는 친구에게 선물할까? ㅋㅋㅋ’
선물해서 놀리기 전에 내가 잡혀갈 거다.
자연보호가 최우선인 갈라파고스에서, 다른 지역의 식물이나 곤충도 가져오는 것을 강력히 검열하는데 여기 동물을 잡아서 기념으로 가져가려고 이상한 생각까지는 ok.
하지만, 실행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장난이나 추억으로 했을 수 있지만 집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가이드가 안내해준 우리 패키지 여행단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열악한 시설에,
‘아 여기서 5일 밤을 잘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덥고 습하고 좁고. 뭔가 지저분한 것 같은.
(결국 마지막 밤은 못 참고 시내의 깨끗한 호텔에서 잤다.)
all inclusive (잠자는 것 외에, 조식뿐만 아니라 세끼 모두 그리고 간식과 음료까지 모두 포함)이라는 광고에 속은 내 잘못이었다.
한마디로 동남아나 유명 휴양지의 ‘모두 포함’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 싼 게 비지떡이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인데 숙식 모두 제공하는 것 치고는 어쩐지 싸다 했다.
처음 오는 곳에 경비 아끼면 고생인데, 그래도 중간 정도 가격으로 했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쩝‘
시골에서 몇 세대가 같이 살 수 있는 조금 큰 집 형태인 숙소에서 짐을 풀고 밥을 먹었다.
별 것 없었지만, 배 고프니 잘 들어갔다.
‘그래, 시장이 반찬이구나.
숙소가 맘에 안 들면 돈 써서 바꾸고,
음식이 맘에 안 들면 밖에 식당 가서 사 먹으면 되지.
놀러 와서 기분 좋게 있다 가자.‘
어느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운데 작은 풀장에서 물장구치며 신나 하는 패키지 여행단에 같이 있어 보이는 현지 친구들을 보며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사진 출처 : 임씨의 시선님 블로그와 두산 백과 두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