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포기를 포기한다

흰쌀밥과 된장찌개

by 우로보로스

2018

기록을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으로, 우리의 첫여름으로.


그해 여름, 우리는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괜찮겠지?”


하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괜찮지. 우리니까.”


그 한마디가, 내 모든 불안을 덮어줬다. 그녀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무언가를 잡으면, 그 손끝에서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전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삶을 그렇게 대했다 — 거창한 다짐 없이, 묵묵히 사랑으로. 퇴근 후 우리는 함께 장을 봤다. 아직 이름도 모를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골랐다. 나는 기저귀의 두께를 고민했고, 그녀는 그걸 보며 웃었다.


“당신은 왜 늘 그렇게 진지해?”


“잘하고 싶은 거지.”

“나도 그래.”


그녀는 그때 말했다.


“일은, 조금 쉬어도 되겠지? 지금은 아이가 먼저인 것 같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일했던 곳에서 얼마나 사랑받던 사람인지 알기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결정을 마친 사람의 것이었다.


“그래. 당신이 원한다면.”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우리 잘 살자.”


그 밤,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다. 규칙적인 울림이었고, 그 박동이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 소리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품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사랑이란 때론, 식탁 위에 올려놓은 라면 냄비처럼 오래 들고 있으면 손가락 끝이 아파오는 것이었다.



2020

그녀가 웃음을 잃은 건 아이가 세 살이던 무렵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아이와 놀 때도 — 그녀의 눈빛은 자꾸 멀어졌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럴 거라며, 나는 위로 대신 침묵을 건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말수는 더 줄었다.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집안을 맴돌았다. 어느 날, 서랍 속에서 얇은 노트를 발견했다. ‘하지 말아야 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걸 열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이름 없이 하루를 버텼다.
사랑받고 있는데, 왜 이렇게 외로울까.
나도 다시, 나를 불러보고 싶다.”


나는 노트를 덮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녀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날 밤 식탁 위에 작은 꽃을 한 송이 올려두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 꽃을 바라보더니, 오랜만에 내게 미소를 보였다. 아주 작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남았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싸움의 끝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퇴근이 빨라졌다. 그녀가 요리를 하던 부엌 옆에 서서,


“오늘은 뭐 만들어?”


하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있는 거.”


그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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