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by 우로보로스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람이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때로는 그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도... 그래도 어느 순간은 내리는 눈이나 바람이나, 담 밑에 피는 꽃이나... 그런게 더 위로가 된다는 거. 그게 사랑보다 더 천국처럼 보일때가 있다는거. 나, 그거 느끼거든요?
당신하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슬프고 쓸쓸하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지나가는 봄볕인거고.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라고한다면... 그건 너무 힘든 고통이니까 난 사절하고 싶어요.

책표지의 시, 그리고 접지부분에 적힌 이 말, 따뜻한데 먹먹한 이상한 느낌. 이런말은 어떤 사랑에서 나오는 말일지 궁금해져서는 오랜만에 문학책의 페이지를 넘겼어요.


아날로그 시대배경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작되는 작가 공진솔과 PD 이건의 사랑이야기. 따뜻하고 서정적인 문체와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의 말투가 포근하게 다가와서 좋았어요. 잔잔한 티키타카부터 마냥 순탄치만은 않은 두 사람의 관계와 톡톡 튀다가도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마도로스 할아버지, 또 복잡하게 얽혀 불편하지만 결국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인물들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잔잔하게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건드는 표현과 갈등이 몰입감을 높여주고요. 시대는 다르지만 결이 같은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에서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생각해 봐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지금 당신 마음은 아까와는 또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 말 했을때만큼은, 거짓말이 아니었을거예요. 당신 진심이었지. 그렇죠?


알았어요. 댁이야말로 함부로 고백했고, 경솔했어. 전부를 걸 마음도 없었으면서, 내 마음 한자락 열어주게 했어. 이제 다 거둬가요. 알았으니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사들이에요. 슬프다면 슬프고, 화난다면 화나는 장면이었는데. 가장 감정이 격해진 부분이었거든요. 이 부분에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건 비밀.


저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그래도 꽤 쪽수가 되었는데, 즐겁게 읽다 보니 어느새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수에 아쉬워하며 말이에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시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기억 속의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사랑 시 같은 책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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