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눈사태

by 이영관

대학교 2학년 때, 전자회로라는 과목을 들었다.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개념이 있었다.

‘눈사태 효과(Avalanche Effect).’

반도체 내부에서 강한 전기장이 전자나 정공을 가속시켜

다른 원자들과 부딪히며 새로운 전하 캐리어를 생성하는 현상이다.

그 작은 충돌 하나가 수많은 전하를 만들어내고,

그 수많은 전하가 다시 다른 충돌을 일으키고,

그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을 ‘눈사태’에 비유한다.


어쩌면, 생각도 같다.

어느 날, 조용히 머릿속을 스친 작은 한 조각의 기억.

그 기억 하나가 다른 기억을 부르고,

감정이 반응하고, 그 감정이 또 다른 장면을 데려오고,

그렇게 나의 세계는 순식간에 이야기를 품는다.


두 번째 전자책이 그랬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나날들.

그저 하나의 감정, 하나의 기억에 손을 뻗었을 뿐인데

50여 개의 에피소드가 마구 터져 나왔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이야기가

한꺼번에 깨어난 것처럼.


그런 경험은 자주 오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처음의 충돌'만 찾아내는 법을 익히기만 해도

더 창조적이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삶은 어쩌면,

생각의 눈사태를 기다리는 긴 침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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