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국현대정치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그렇기 때문에 한국현대정치사는 새로운 프레임의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이미 시작부터 모든 정치적 권리를 얻고 시작한 나라, 자본가와 권력자에 저항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사회주의 사상이 아닌, 독립의 과정에서 얻은 사회주의가 해방정국을 맞아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이루어진 나라, 또 하필이면 냉전 최전선에서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강제분할된 나라라는 다양한 시선과 시각으로의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이미 모든 것을 권리를 얻고 시작했기 때문에, 민중이 가지고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교육을 통해 깨닫게 되고, 그렇게 깨달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기 위한 활동은 필연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또다시 필연적으로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민주적 투쟁이 뒤섞이고 일부 과격한 이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냉전의 최전방에서 이념으로 인한 전쟁을 겪고, 반공을 최우선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 역시 고려되야 합니다. 반공을 기치로 여러 활동을 탄압했던 것은 비판받을 일이지만, 수많은 북한의 간접적 침투와 선전, 선동 활동은 실제로 존재했으며 국가는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에도 반대로 이런 상황이 적용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봐야만 합니다. 무조건적인 선과 무조건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선과 악이 혼재해있으며 상황에 따라 선이 나타나기도, 때로는 악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당시 시대 상황과 역사적 배경, 흐름을 폭넓게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잘했기 때문에 모든 독재적 요소가 허용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독재를 했기 때문에 경제개발의 공은 과소평가되고, 그 누가 와도 경제개발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응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각각을 별개로 생각해야하는데, 선과 악의 프레임에 빠져서 내편이기 때문에 모든게 용서되거나 내편이 아니기 때문에 잘한것도 비판하당시의 시대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는 일은 지양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갈등은 서로가 결과에만 주목하는 까닭입니다. 어떤 역사적 배경과 흐름에 따라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흐름이 밑바탕이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진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주 사소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감정에 호소하고 선동하며 과격 시위로 이끌었던 좌익 세력, 일명 빨치산들과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누가 아군이고 적군이고를 모르는 혼란을 겪었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무리하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한 우익을 위시한 공권력, 그리고 그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더욱 과격한 행위를 반복한 좌익 세력, 그리고 또다시 자행되는 복수들이 반복되어 만들어진 비극이 제주 4.3사건이며 수많은 해방정국과 단독정부 수립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의 전말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끔찍한 역사의 비극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오직 4.3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법만이 존재합니다. 옹호하는 쪽은 좌익 세력의 난동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 갈등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최초 사고의 시작이 다르니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만 반복됩니다.
이후에 대한 독재권력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 역시도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지만, 반공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는 냉전시대의 최전선에 있던 국가 대한민국. 반공은 전쟁을 겪은 이들과 공산주의자의 대한 공포, 그리고 그들을 솎아내기 위한 정권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태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도하고 무리한 수사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반공이라는 이유로 보장하지 않는 정권의 무도함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정권의 무도함을 규탄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나 이승만의 말로가 좋은 형태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주도하에서 새롭게 건설한 국가에서 영원히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위치로까지 떨어졌습니다. 결코 이승만의 독재와 파행적 정국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만은 해방정국의 복잡한 상황속에서 확고한 중심을 잡고 국가의 탄생에 큰 공을 세웠으며, 국제 정세를 읽는 탁월한 눈으로 한국전쟁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냈으나, 휴전 이후에는 각가지 정치 공세로 반대파를 제압하고 파행적인 개헌을 통해 종신 통령제를 획득한 독재자였습니다. 이는 결코 옹호할 수 없는 이승만의 과입니다.
그 중간중간에 그의 탁월한 정치적 안목과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지만, 자신과 자신을 지지했던 정권의 파행적 정치모략과 부패를 묵인했습니다. 혹자는 이승만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이는 이승만의 국정 장악력과 리더십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이라는 지도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는 했을지언정,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제대로 된 경제개발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혼란은 가중되고, 먹고살기는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은 그만큼 이승만의 말년은 그의 국정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의미하며 마침내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교육의 성과로 성장한 이들에 의해 하야하고 비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또 더 나아가 이승만의 안배가 키운 인재들은 성장하여 이승만을 비판하는 최선봉에 서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7. 마치며
한국현대사에서 이승만처럼 과소평가된 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처럼 공과 과가 뚜렷한 인물 역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입체적인 사람입니다. 이승만은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국민의무교육을 도입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문맹에서 탈피하고 최소한의 인지 능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또한 김구 역시도 그 공과 과가 매우 뚜렷한 인물입니다. 논란이 되는 김창암 시절의 치하포 사건이나, 독립운동 시기에 벌어졌엇던 독립운동가들과의 갈등, 그리고 독립운동 자금문제로 발생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암살과 실종 사건, 해방 이후의 송진우, 장덕수로 대표되는 김구 암살 배후설, 어떤 명확한 관점으로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던 것은 김구의 대표적 과입니다. 그러나 그의 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냈고, 어떤 형식으로든 국내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 되서는 안되는 김구의 공입니다.
이승만은 전쟁와중에서도 배움을 멈추면 안된다는 신념하에 대학생들을 군면제 시키고 공부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만약 이런 교육적 노력이 없었다면, 4.19 혁명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승만의 비난 세력이 기를 쓰고 눈을 감고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의무교육입니다.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짓고 사람들에게 과도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했던 이유는 무지한 민중만큼 통제하기 쉬운 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신의 장기적 통치를 위한 손쉬운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가 수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독재자였다면, 왜 그렇게 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요. 그럼에도 그의 행보는 독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또 하야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몇몇 과도한 이승만 옹호론자들의 이승만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기붕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행한 일이다라고 하기에는 신빙성도 떨어지고,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승만이 더 이상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2025년 3월, 외부 강연에서 이승만의 교육정책에 대해 강의하자 어떤 노신사분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승만의 교육 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했더니 이승만의 교육 정책은 이미 미군정 시기에 계획되어 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해서 이승만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으나, 지금에서 다시 그 질문을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어떤 좋은 계획조차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군정에서 교육 정책을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다듬고 공표하고 실행한 것이 이승만 정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승만 정부 당시 만들어졌던 경제개발 3개년 계획, 그리고 이를 다듬었던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있었으나 이를 시행한 것은 박정희였습니다. 그럼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도 결국은 이승만의 공이 되는 것일까요?
또한 이승만은 탁월한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을 갖춘 이였습니다. 또한 그 어떤 역대 대통령들보다 장기적 안목을 갖춘 리더였습니다. 그는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볼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유시민의 언급처럼 경제개발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당시 한국사회는 미국의 원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최빈국이었습니다. 미국이 농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원조를 끊어버리겠다는 으름장에도, 국가의 장기적 경제 개발을 위해 비료 공장, 유리공업, 시멘트 공장 등의 경제개발의 초석을 닦을 수 있는 공업국가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경제개발 실패와 혼란은 아무리 장기적 관점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승만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당연합니다.
다만, 이것이 이승만이 했던 노력의 폄훼까지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이승만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박정희 시대의 고공 경제성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에너지를 위해 과감히 원자력 발전소를 투자했습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 불과하던 나라에서 1인당 교육비용이 6천달러나 드는 교육 과정에 150명을 4년간 파견하였습니다. 한국 전력의 든든한 축을 담당하는 원자력은 이 당시 이승만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거나 더 늦어졌을 것입니다. 이승만은 단기간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제정책을 펼친게 아닙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수십 년 뒤의 미래를 보고 국가경영을 했던 이입니다. 이승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국가 원수를 맡아 나라를 통치했다고 해도 이런 경영을 하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글에서 계속 강조하듯 우리나라는 시작부터 다른 여타 나라와 다르게 남녀평등한 투표권과 각종 자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승만과 제헌헌법을 만들었던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위한 더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적화통일을 막고 공산화 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야하고 결코 폄훼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그가 아무리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를 운영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공산화를 막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가 밀어붙인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박헌영이 이야기한 것처럼 전 남한땅에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가 전복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켜야할 자신의 땅이 있었기에, 수많은 농민들이 북한군으로 전향하지 않고 스스로의 땅과 가족, 그리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또한 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전쟁 억지력을 발휘시켜 북한의 침공을 막아냈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승만 한 사람만의 공은 아닙니다. 그와 함꼐 정책에 참여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으며 전쟁시 목숨바쳐 나라를 지켜낸 이름 모를 수많은 애국열사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공에 못지않게 수많은 과도 함께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독재는 분명 잘못된 방법이고 아무리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당시에 벌어졌던 수많은 학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확실하고도 명백한 이승만의 과입니다. 당시 시대 상황이라는 변명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독재와 민간인 학살은 결코 면피할 수 없는 확실한 이승만의 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부 유튜버들과 학자들이 이야기하듯 이승만이 한국사 최악의 인물이었다는 평가는 분명 그 정도가 심한 것입니다.
이 글은 결코 이승만의 대한 과도한 올려치기도, 김구에 대한 과도한 내려치기도 절대 아닙니다. 김구의 행적이 해방이후 확실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그가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 것까지 싸잡아 비난할 수 없듯이, 이승만 역시도 휴전 이후의 독재 행보와 좌익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학살로 그의 공마저도 가려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이승만 국부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이승만의 한계만을 집중 부각합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받을 부분은 확실하게 비판받아야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잘한 일마저 존재하지 않는양 치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엄청난 비난과 비판을 각오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과도한 비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책을 읽다가 이건 아니다라고 하실 수도 있고, 또는 분노하실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필자는 이승만을 옹호하고 김구를 비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편견의 역사를 저술하게 된 원인 중 하나도 바로 이승만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막아보고자 하는 동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제목은 이승만과 김구였으나 그 행적자체에 대한 부분 때문에 이승만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사실, 더 다양한 이승만의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지면의 한계로 여기서 줄여야 하겠습니다. 다만, 많은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고서 조금이라도 이승만의 다른 행적에 대해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