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역사는 비이성적 판단과 생각을 '덜'하기 위한 학문이다.
에필로그
저에게는 큰 도전이기도 했던 편견의 역사 인물편을 마무리 지어습니다. 사실 완성은 그 이전부터 해놓았지만, 글을 다듬고 보충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애써 작성했으나 빠졌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선조와 고종, 나폴레옹과 박정희 편은 오랜 공을 들여 글을 썼으나 인물편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다루고자 해서 제외했습니다. 제외된 부분은 후에 나올 편견의 역사 시리즈에서 다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 1~2월에 있었던 건국전쟁 논란이후부터 극단적으로 치닫는 갈등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보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글쓰기였으나 의외로 저에게는 굉장히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제 자신과 역사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고, 현재 사회에 어떤 병폐가 있는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역사학과 오랜 시간동안 떨어져 수학을 공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에서 예를 들어 다시 설명하겠지만, 수학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정답이 정해져있고, 그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학문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은 정답이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정답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고, 내가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이 바뀔 수도 있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학문입니다.
어린 시절 치기 어린 감정적 민족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었고, 그러다보니 명색이 사학을 공부했던 사람이기도 하면서 유사역사학의 함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약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꾸준히 역사학을 공부했다면 저는 어땠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을 수도, 혹은 편협한 사고에 빠져서 역사를 바라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수학에 관련된 일을 하며 역사학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던 저에게는 그 시간이 제 역사관에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역사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다보니 조금은 객관적 상황 판단이 가능해졌고, 터무니 없이 허무맹랑한 말이라 하더라도 듣는 귀를 열어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면 폭넓은 관점, 나쁘게 말하자면 대중의 대세성을 따르지 않는 눈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으니 자료 분석 및 1차 사료 접근, 그 외의 선행 연구 서적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과거 대학교 시절 제가 썼던 논문 중 분실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것들을 보면, 이게 진짜 내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편견의 역사란 제목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너무나도 많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해서 인물편, 사건편 등의 시리즈물로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인물편 하나라도 제대로 끝냈으면 싶었는데 다행하게도 이렇게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글을 집필한 2024년 8월부터 지금까지, 제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부자연스러운 문장, 글의 제목과 맞지 않는 감정적 서술이 다수 발견이 됩니다. 글을 쓴 이후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나 참고문헌들도 있구요. 해서 편견의 역사 인물편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교정 및 개정 작업을 거치려고 합니다. 부자연스러운 문장 수정과 참고문헌의 기입, 또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세부 문단 나누기 등 부지런히 완성도 높은 작품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합니다. 오류나 사실 관계가 잘못된 부분들든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역사학은 세상 모든 것들의 뿌리가 되는 학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꼭 나라와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수학의 역사, 지도의 역사, 기술 발전의 역사 등, 세상 모든 분야에서 역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심지어 언어조차도 언어 발전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그 언어가 처음 언제 기원했는지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서 이르렀는지를 기록하고 공부하는 것도 모두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더더욱 가치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록과 유물을 통해 그 시대를 추론하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추론하고 추측된 것들을 우리는 ‘정설’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설은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 혹은 기록의 등장으로 뒤바뀝니다.
삼국사기 기록의 우수성과 함께, 삼국사기 불신론을 종식시키기도 했던 무령왕릉의 발굴은 기존의 역사적 정설을 한번에 뒤집는 계기가 되었고,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나리경은 비록 세계에서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라는 학술의 발전을 이룹니다. 또 정조와 심환지의 편지인 정조 어찰첩은 판을 치던 노론 음모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은 어찌보면 진정한 사실인 진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례처럼 역사적 진실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과 기록과 유물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학설은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사관과 사실이 절대적 진리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수많은 부분에 있어서 양보와 타협없이 강대강의 구도로 맞붙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습니다. 다른 면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나몰라라 하는 경우개 태반입니다. 책임을 물어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의 발뻄이 난무합니다. 이건 정치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은 단체나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한 모습들은 우리가 여지껏 지켜봤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삼각형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원이 될 수도, 원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잘 모른다면 무엇인지조차 추론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에필로그를 쓰는 지금,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1500만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쓴 문종과 세조 편에서 나온 정통성 없는 임금의 한계와 그가 미친 악영향에 대해 비판하였는데, 영화를 본 분들이 단종을 추모하고 세조에게 과도한 비난을 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잘못된 역사적 접근 방식입니다. 영화의 감정적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에 대한 감정적 동조보다는 내가 보는 면 말고 다른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지를 고민해봐야합니다. 감정은 결국 분노와 증오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 열풍이 언젠가는 사그라들겠지만, 그 분노의 감정은 머리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시선과 내 주장과 의견을 굽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듣는 귀는 열어두고, 왜 그런 주장과 생각을 했는지는 볼 수 있는 여유스러움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명제가 바로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보다도 비이성적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적 자아를 가진 동물이라면, 이 사회에 갈등과 싸움, 전쟁과 폭력, 그리고 실패는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은 비이성적 동물이고 완전하지 않기에 수많은 혼란과 실패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한다면, 선과 악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또 반대로 인간이 비이성적 동물이라면 지금과 같은 인류의 문명의 발전은 없어야 합니다. 모순이 발생하게되고, 이는 결국 인간은 때로는 이성적이기도, 비이성적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역사학은 인간의 비이성적인 선택을 완벽하게 안하는 것이 아닌, ‘덜’하기 위한 학문인 것입니다.
인문학이 홀대 받는 시기입니다. 특히나 역사학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편견의 역사 인물편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속적으로 보완 및 수정, 개정이 이루어질 예정이고, 추가로 출판까지도 노려보고 있습니다. 또 현재 다시금 집필하고 있는 편견의 역사 붕당편에도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편견의 역사에서 소개된 인물과 사건 이외에도 독자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다른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조금의 지적 호기심이 생긴 단 한분의 독자가 있으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2026년 3월 27일, 이재호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