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역사 - 이승만과 김구 (4)

4. 김구는 국부인가 테러리스트인가

by 철가면

4. 김구는 국부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이승만에 대한 학살자 프레임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루기로 하고, 김구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위대한 인물, 혹은 존경받을 위인 중 한 사람으로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언급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백범 김구입니다. 김구의 저서로 알려져 있는 백범일지는 한국인의 필독서가 되어버렸고, 거기서 나온 그의 영웅적 미담과 구국을 위한 결단 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김구가 독립 운동을 위해 그 한몸을 다 바쳤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가 있을까요? 일부 극단적 시각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의도적 폄훼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숫자는 매우 적습니다. 이승만과는 반대로 말이죠.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상하리만치 김구는 고평가 받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승만은 이상하리만치 저평가 됩니다. 김구와 이승만 두 사람을 선과 악의 양극단 프레임으로 걸어버리고 말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김구는 국부이고 통일정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위대한 인물이며, 이승만은 단독정부를 주장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김구의 남북 통일정권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떤 한계가 있고 김일성에게 이용당했다는 부분들은 알지 못하고, 이승만이 왜 단독정부수립이라는 목소리를 높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하지 않고 말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못해 넘쳐 흐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이 문제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구의 행적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김구가 우리 민족을 위해, 우리 민족의 광복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왔는지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구가 독립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과오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과 역시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김구는 공적인 부분만을, 이승만은 과적인 부분만이 유독 부각되어 왔습니다.


왜일까요.


김구라는 독립운동가가 해왔던 활동들을 우리 민족의 독립 투사라는 주관적 관점을 모두 벗어던지고, 오로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김구의 활동은 테러, 그리고 그의 활동은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몇몇 극단적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김구가 무조건적인 테러 활동을 벌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의 자서 백범일지에서조차 자기 자신 스스로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것 역시 감내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계속 반복해서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역사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보는 순간, 감정과 증오만 남게 됩니다. 감정과 증오만 남게되니 어떤 사건과 사안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삐뚫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며, 냉정하고 객관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비난과 욕설만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나 이승만과 김구에게서 이 선악의 프레임은 강하게 발동합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다양한 방식의 테러와 테러리스트들이 있습니다. 한때 이슬람 극단주의의 IS가 발동했으며,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도 이런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는 사상 초유의 테러가 발생하여 수만명의 미국인들이 피해를 보았고, 그로인해 10년 가까운 시간동안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가깝게도 북한은 휴전이후 끊임없이 대남도발을 일삼아 왔고, 아웅산 테러,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판문점 사건, 김신조 일당 청와대 급습, 더 나아가 연평도 폭격과 천안함 침몰까지 다양한 대남 강경투쟁을 벌였습니다.


테러는 분명 사람의 인명을 살상하는 끔찍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왜 그들이 그런 테러라는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가. 왜 그들이 테러를 벌였는가에 대한 부분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 그들의 동기와 이유를 알 필요도,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일의 인과를 따지는 것은 어렵지만, 그들을 욕하거나 비난하는건 쉽습니다.


그런데 그 스스로가 테러리스트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김구,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벌였던 수많은 테러 활동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면죄부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이기에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반대로 우리 민족이 누군가를 침략하고 지배했을 때, 그것에 대항하여 반발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잣대를 들이댈까요? 그리고 이는 과거 고대사를 바라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한(恨)의 역사라 하며 무수한 외침을 받은 국가라 이야기 합니다. 또 국사 교과서에서도 영양왕이 1만의 병력으로 요서를 침공한 것을 한국사 최초의 선제공격이라 가르치고, 발해 무왕이 산둥반도로 공격한 것을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합니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살펴보았을 때, 김구가 우리 민족의 독립 투사이며, 끝까지 임시정부를 놓지 않고 유지하면서 어려운 독립운동의 길을 겪었던 독립 투사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김구가 벌인 일들은 일본의 입장에서 살펴보았을 때는 명백하게 테러였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역사를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독립운동이 되기도, 테러활동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사건으로 불리는 사라예보의 사건,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의 암살 사건도 제 3자의 입장에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김구의 한계는 바로 이 테러활동에 있습니다. 김구는 해방 이후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국내 정치의 갈등을 암살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구는 독립운동 내내 테러활동을 벌입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자금난과 활동의 어려움은 인정하고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독립운동의 의지와 활동을 이어간 김구는 찬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가 해방 이후에도 독립운동가들과 국내 정치인들에도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암살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김구 암살의 배후에는 이승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송진우와 장덕수 등의 암살 배후에 김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합니다. 명백한 편향적 역사 인식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김구가 처음부터 통일정부를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틀린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역사 강사나 유튜버들이 말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김구는 최초에 이승만의 단독정부 구성에 찬성했던 인물입니다. 물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 북한에도 평화적 총선거가 실시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것은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 수립 이후의 세계에 호소하여 통일정부를 이룬다와 그 맥락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 그리고 수많은 역사 강사들은 이러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승만과 김구는 장덕수 암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갈라섭니다. 이승만과 김구는 독립운동시에도,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서로의 신분을 과시했고, 김구 역시도 이승만이야말로 진정한 국부라 하며 치켜세워주지만, 김구가 지금까지 해왔던 테러 활동에 발목이 잡힙니다. 송진우, 장덕수 암살사건에 김구가 배후설이 지배적이었고, 이후 김구는 우익 진영, 즉 남한의 정치세력에서 고립됩니다. 그리고 김구는 이런 정치세력의 고립과 지지율 확보를 위해 선택한 최후의 수가 바로 남북협상을 위한 평양행이었습니다.


김구의 평양행은 북한에 의해 철저히 프로파간다로 이용당합니다. 그가 평양행 이전부터도 통일정부를 주장하긴 했으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라도 북한의 선거를 진행해야한다는 기존의 주장이 아닌, 처음부터 남북한 총선거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상 북한과 소련이 받아들일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구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 격입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정계에서 반 타의적으로 은퇴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김구는 자신이 벌여왔던 행태 그대로 안두희의 암살로 의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김구 사후, 그를 철저히 탄압합니다. 백범일지를 금서로 지정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보다 추켜세우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김구 암살의 배후로 이승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사게 됩니다. 명백한 이승만의 실책입니다. 오히려 그의 평양행과 통일정부에 대한 그의 목표를 인정하고 이용했다면, 이승만의 평가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김구의 이런 한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못하는건지, 하지 않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안중근 역시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국사교과서와 우리의 역사교육이 받아야할 비판입니다. 또한,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다루지 않는 일부 편향적 대중 역사 강사들 역시도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반일이라는 일본이 악인이라는 감정적인 부분으로만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 반일이라는 기치는 해방 후 8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먹히는 선동기법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 ‘일본을 혼쭐내주겠다’는 발언과 문재인 정부 당시의 No Japan운동으로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일본 불패 운동 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이용과도 같이 감정적 논리로 정치에 이용 당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로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일면 이외에, 다른 관점으로 김구나 안중근, 그리고 독립운동 내내 벌어졌던 요인 암살, 기관 폭파가 일본이나 그외 다른 사람들에게는 테러 활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펼쳐서라도 국가와 민족을 되찾기 위한 구국의 활동에 그들의 인생을 다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악적 일본을 처단해서만 그것이 구국의 행동이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필자가 편견의 역사 내내 강조했던 다영한 역사적 관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편협한 시선이 아닌, 보다 넓은 관점에서에서 역사를 바라볼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숱한 비판과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여러 인물들에 대해 짚어보면서 필자가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했던 자세는 다름아닌 어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역지사지의 마음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또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아닌, 객관적 자세로의 독립운동가들의 명과 암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김구가 우리 민족에게는 더 없는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준 영웅이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혹은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김구의 행적은 그저 테러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어떤 역사적 과정이나 긍지, 역사적 관점을 모조리 제외한, 말 그대로 사건의 그 자체의 팩트만을 따져봤을 때, 김구의 활동은 테러로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그 역사적 팩트에 당시의 시대상황, 그리고 당시의 독립운동 과정과 정당성 등이 부여되면서 위대한 독립 운동가 김구가 탄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빈 라덴을 추종하는 무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때 빈 라덴의 뒤를 이은 무장 단체 IS가 소수지만 많은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이 스스로의 사명과 운동의 정당성을 홍보하였고, 그런 잘못되고 왜곡된 정보에 매료된 일부 젊은이들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런 민족적 정신과 민족사관은 우리가 이런 사실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김구는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하고, 이승만은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하며, 이승만의 대한 재평가 조차도 뉴라이트 세력으로 몰아 비난을 가하는 행태는 매우 부적절합니다.


잘한 부분은 모른 척하고, 못한 부분만을 부각한 채 하는 평가몰이는 냉정하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어떤 사건과 인물을 평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최근 한 방송에서 유시민 전 장관이 이승만을 평가하는데 이승만의 최대 잘못은 경제개발을 하지 못했다며 일갈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승만은 제대로 된 경제 개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그 사건의 내면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그 경제의 절반 가까이를 대미원조에 기대고 있습니다. 미국의 원조가 끊기는 순간, 우리나라의 경제도 파탄이 납니다. 이승만이 미국과 대립하여 더 많은 원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이승만은 현재의 경제개발보다 미래 가치에 더 투자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을 주장한 것이 바로 이승만이며, 없는 살림에 미국에 인재들을 유학시키고, 모두가 반대한 원자력 발전에 투자하여 지금의 원전 강국 대한민국을 있게 했던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승만이 경제개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국가 비전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한 대미원조를 줄이려고 하는 미국을 상대로 이승만이 얼마나 고도의 정치술을 이용하여 원조를 받아낼 궁리를 했는지에 대한 노력은 잊혀집니다. 그리고 대미원조로 협박하고 통제되지 않는 이승만 길들이기에 실패한 미국의 정책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편향된 사고방식입니다.


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김구는 독립 운동을 하고, 해방 이후의 상황에서도 테러를 지속적으로 자행합니다. 더 넓은 안목과 국제적 정세를 파악하는 눈이 부족했던 탓에, 본인이 지금껏 해왔던 방법 그대로 해방 정국에서도 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김구는 해방 이후 송진우와 여운형, 장덕수 등을 암살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남북협상 과정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본인이 평생을 해왔던 방식으로 안두희에게 암살당합니다.


무엇보다 해방 이후의 김구의 행적은 한 나라를 통치할 뚝심, 즉 정치력이 부족했습니다. 김구의 해방이후 행보는 오락가락의 결정체였습니다. 이승만에게 협력할 것이었으면 철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독자적 행보를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이끌고, 각종 테러에 치중해왔던 그의 행보는 당시의 복잡한 국내외 상황을 명확하게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단순한 적이 있었을때야 정치력의 한계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만이 아닌 냉전이라는 복잡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그의 한계는 스스로의 정치적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테러적 성향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김구 암살의 배후로 이승만이 지목되는 것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해방이후 있었던 수많은 암살사건의 배후로 김구가 지목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구는 장덕수 암살 이전에는 이승만과 함께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찬성했으나, 장덕수 암살 이후 이승만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자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독립이전부터 미국과의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며 정치력을 키워온 이승만과 다르게 김구의 정치력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끝끝내 남북협상에서 김일성의 프로파간다에 철저하게 이용당했습니다. 남북협상 이전부터 뒤늦은 통일정부 구상을 외쳤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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