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승만의 잘못된 프레임 (2)
두 번째는 반민족특별위원회를 해체시켜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이승만의 실책입니다. 제대로 된 반민족행위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광복 후 한 세기가 다 흐른 지금까지도 친일파 논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반민특위의 해체의 과는 명명 백백합니다. 그리고 반민특위해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때 반민족행위를 통해 부를 누렸던 이들을 처벌하지 못했기에 반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요 갈등 부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친일파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으며, 대한민국에서 친일 프레임은 반공주의가 희석된 현재에 가장 무서운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시켜 반민족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실패이나,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결코 반민특위 해체를 옹호하는게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우선 이승만이 왜 반민특위에 적극적이지 않았느냐는 주장에는 어떤 뚜렷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습니다. 이승만 본인이 했던 이야기는 왜정시대에 악질적 해악을 저질렀더라도 지금 잘하는 일이 있다면 애국자, 라는 발언은 분명히 반민족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는 대부분의 우익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견해이기는 했습니다. 김구 역시도 반민족행위자 처벌에 대한 의견에는 이승만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일제 치하에서 다져왔던 행정력의 대한 경험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들에게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민특위는 일제치하에서 관료적 일을 해왔던 이들을 모두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반민족행위를 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려 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 일본 치하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있습니다. 그런 형태의 프레임으로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는 국민들의 조상 중에 친일프레임에 걸리지 않을 이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몇몇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본인들이 유리한 행태로 악용합니다. 이건 실수가 아닌 의도적이고 명백한 정치적 술수입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정부에서 제대로 된 국가적 체계하에서 행정 및 관료 업무를 경험해 본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임시정부조차 그저 작은 단체에 불과했으며, 그 외의 다양한 독립운동가는 중국이나 소련,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각자의 작은 단체들을 이끈 것에 불과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시 국제법상,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적이 없으며, 그렇기에 임시정부는 국제 공인이 되지 않은 그저 작은 단체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왕정 국가가 아닌 근대적 현대 민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 목표였으나 제대로 된 행정을 경험해 본 이들은 없습니다. 즉, 제대로 된 국가 운영에 관련된 일을 경험해본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정 당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대로 맡은 업무를 하게 한 것은 몇몇 낭설과 같이 미군정이 친일 세력을 비호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모두 처벌하는 경우 국가 행정 체계가 마비가 되버리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이들의 행정능력은 국가를 통치하는데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대다수 이들이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반민족행위자들의 경우는 그 사례가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가 일반적인 행정업무를 해왔던 이들을 제대로 벌하지 못했다고 대한민국이 친일파의 천국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부 과격한 주장을 하는 이들의 선동에 가깝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의 일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다고 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르고 처벌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사회 혼란이 지속되는 판국에서 이들을 처벌하면 국가의 행정력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의외로 이 부분을 많은 분들이 간과합니다. 오래도록 국가의 자리잡힌 행정체계를 경험한 이들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정적으로 역사를 배울 때 놓치는 부분들이며 부작용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국가들이 국가교체과정에서 이들 모두가 죽거나 처벌받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아왔습니다. 이는 국가 건립 초창기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사회적 혼란이 그 이유입니다. 전근대시절, 교체된 전 왕조의 왕족들과 소수의 귀족들이 처형당하는 등 숙청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구심점이 되어 나라가 혼란스러울 것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위층이 아닌 하위층의 관료들은 대부분 살아남습니다. 실제로 고위층보다 하위관료들이 더 국가행정에 전념하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양권 역사권에서 매우 흔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바뀌었을 때, 기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처벌은 있었지만 중간 관리들까지도 모두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을 처벌하고 벌하려 하는 경우, 그들이 반발하게 되면 새로운 내전 상태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새 왕조 개창 후 기존의 관리들을 모두 제거하려고 하고 자신의 이상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해기존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왕망은 결국 지방의 호족들의 봉기로 인해 왕조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조선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문동 72인 및 왕씨 학살로 인해 과대 평가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조선의 건국 후 기존의 고려의 사대부들을 당시 집권세력이 모두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가진 고향으로 낙향한 이들은 성종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등용되어 새로운 정치세력 사림을 이루게 되고 조선 중기부터 조선의 새로운 집권세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살펴봤을 때, 이들이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운다고 한다면, 새롭게 들어선 이들이 행정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 사이에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일부 공산주의자들의 난동까지 겹쳐진다면 국가 행정만은 말 그대로 마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국가적 행정체계의 마비는 제주 4.3사건을 통해 여실히 살펴볼 수 있고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런 부분을 간과한 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고 한탄합니다. 또 일부 프랑스나 독일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그들은 수백년에 걸쳐 근대국가적 행정체계를 완성한 나라들입니다. 따라서 그런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더라도 그들을 대체할만한 인력을 찾기가 비교적 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기존의 관리들을 청산하고 새롭게 행정망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는 것은 국가 행정력의 난이도를 너무나도 쉽게 보고 완전히 무시하는 격입니다. 조선은 근대국가를 완성하지 못하고 망했으며, 독립운동가들도 광범위하고 거대한 행정체계를 다룬 적이 없습니다. 수십 년간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에 투사했던 그들이 순식간에 새로운 국가 행정체계를 다시 만들고 관리한다? 어불성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