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학살자 이승만?
5. 학살자 이승만?
이제 다시 이승만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승만을 비판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글에 앞서서 이승만과 공권력으로 인해 관련없는 민간인의 피해를 가져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제주 4.3사건부터 시작해서 여수.순천 10.19사건과 보도연맹, 대전 산내 학살사건을 비롯하여 후방지역 공비 토벌 당시 죄없는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희생당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이승만과 이승만 정권하에 공직 혹은 정치를 하던 이들의 책임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결코 이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또 그와는 반대로 이 사건은 전형적인 흑백논리에 의한 프레임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제주4.3사건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모든 사건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양면성을 모두 바라보아야만 제대로 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많은 역사 강사 혹은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4.3사건의 전말은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민중을 상대로 경찰, 즉 공권력이 그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하여 죄없는 민간인들의 피해를 가져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무기와 조직력을 갖추고 잘못된 공권력에 저항하다가 수많은 죄없는 이들이 희생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는 공산주의자들의 난동과 폭력적인 행위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형편없고 역사적 인식 없이 감정적 자극만을 위한 프로파간다식 선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평화로운 시위를 하던 민중입니다. 이들은 폭력을 사용할 의도조차 없었지만, 이들을 무도한 공권력의 피해자로 둔갑하고, 이들의 저항을 생존을 위한 자위권으로 해석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고, 또 어떤 진실의 흐름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수치를 통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몇 만명이 희생되었다, 죄 없는 민간인이 죽었다 식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이에 대중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새겨집니다. 이 과정속에서 일의 선후관계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해집니다. 당연히 죄 없는 민중이 희생당한 것은 슬픈 일입니다. 또한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제주 사건과 여순반란 사건은 편견의 역사 사건편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일어난 일과 희생자의 숫자가 아닙니다. 또한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와 비극적 역사가 발생하게 된 것에 있어서 이승만과 당시 정부를 구성하던 내각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고,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4.3사건을 공권력의 횡포, 또는 죄없는 민중을 죽인 무도한 이승만 정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제주 4.3사건의 1차적 원인은 남한만의 5.10 총선거를 막기 위한 혼란책과 후방 교란책의 일환이었으며, 이를 선동하고 사주한 남로당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는 사건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책에서 내내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시의 시대와 역사적 배경입니다. 2024년 현재의 우리에게 4.3사건과 같은 공권력의 횡포와 민중 학살은 있어서도 안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은 폭력과 불합리함이 용인되고 묵인되기까지 했던 시대입니다.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필자가 편견의 역사 내내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제주 4.3사건의 수많은 피해자와 공권력의 횡포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제주에서는 그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그 일의 동기와 당시의 국내 정치상황, 국제정세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제주 4.3사건을 두고 어느 한쪽은 국가가 죄 없는 민간인을 죽였다고만 이야기하고, 어느 한쪽은 공산주의, 즉 빨갱이들을 때려잡았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다고만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현대사회속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광우병 파동, 쌍용자동차 파업, 용산철거사업, 2002년에 미선.효순 장갑차 사건 등에서 수많은 언론들은 자극적인 내용만을 사진에 담아 언론에 배포합니다. 수많은 시위속에서 자극적이고 감정을 거드릴만한 내용만을 짜깁기 하여 언론에 나오고 있습니다. 평화 시위를 하는 이들을 경찰을 위시한 공권력이 무도한 폭력을 사용했다는 프레임입니다.
서럽게 매맞고 내 동료가 시위에 의해 두들겨 맞고 폭행을 당하는것도 참다가 진압명령이 떨어지면 과도한 진압이 이루어지는 일의 선후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과도한 진입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미선.효순 장갑차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상은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교묘하게 짜깁기 하여 선동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반란사건, 그리고 해방정국에 있었던 수많은 시위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석됩니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혼란상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프로파간다에는 오직 학살자 프레임만 존재할 뿐입니다. 학살자 프레임으로 결론을 내놓고 사건을 바라보니 온갖 학살과 만행만이 남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은 현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속에 있던 시기입니다. 통일 정부냐 단독 정부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 끝에 결국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는 시기였습니다. 거기에 이념 대립이 가장 극심한 시기였으며, 한반도는 그 이념 전쟁의 최선봉에 있던 나라였습니다. 38선은 경계로 나뉘어지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휴전선이라는 철책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비교적 남과 북의 왕래가 자유롭기도 한 시점이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수많은 좌익 계열 인사들이 한반도의 적화통일과 남한의 혼란을 위해 침투해 들어와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박헌영은 서울을 점령하면 수많은 좌익 세력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라고 기대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내부에 수많은 좌익세력들이 자리잡고 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분들이 놓치시는 것 중 하나가 4.3사건 당시 죄없는 민중들이 죽임을 당했다라고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 없는 민중들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가 내 편이고 남의 편인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감입니다.
실제로 4.3사건 초창기에 진압군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던 박진경 대령은 부하들에게 피살당했습니다. 부하들에게 피살당한 이가 좌익 세력이었는지, 혹은 그의 강경 대응에 부담감을 느꼈던 제주도 출신의 군인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명령체계가 그 어떤 단체보다도 확고한 군내에서 진압의 핵심 인사가 암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군대, 경찰, 그리고 민중 세력 내에서도 수많은 좌익 인사들이 스며들어 있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공포감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역사속의 전쟁에서 배신과 모략에 의한 패배, 혹은 죽음은 정신적인 고통을 부여합니다. 로마의 위대한 전쟁 영웅이자 독재자이던 카이사르가 마르쿠스 브루투스에게 암살을 당했을 때,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이야기하며 죽어갔다는 이야기는 진실 여부를 떠나서 믿었던 이, 혹은 내 편으로 생각했던 이에게 배신당했다는 정신적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그만큼 내부의 적만큼 위험한 이는 없습니다.
문제는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란한 사회 정국 속에서 숱한 유력 인사들이 암살로 목숨을 잃었으며, 김구마저도 암살에 의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혼란입니다. 흔히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하는 농담 중 하나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전쟁이 나면 간부부터 쏘아버리고 탈영한다, 라는 농담이 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내 등 뒤를 든든하게 지켜야 할 아군이 나를 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군대의 폐쇄적이고 상명하복과 구타와 폭력이 만연한 군대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농담이지만, 1940~50년대의 대한민국 사회는 이것이 농담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놓칩니다.
이처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한국현대정치사가 가지는 특징입니다. 또한 한국정치사의 축복이자 재앙은 민주적 시민권을 숱한 투쟁과 대결 속에서 역사적 흐름에 따라 쟁취하고 획득한 것이 아닌, 시작부터 각종 자유를 보장받고 시작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의외로 이 부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수탈을 위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좋아진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좋은 순기능마저도 일제에 의해 시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해방 후까지 연결됩니다. 제대로 된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하지 못했고 민중의 의식이 그러한 민주사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데, 헌법상에 서구에서 수백년동안 투쟁 끝에 얻어왔던 모든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모든 권리를 보장받았으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도만 따지고 보았을때는 더없이 선진국에 도달해있는데, 민중의 의식이 그러지 못한,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은 없는 나라 살림에서 교육을 위해 많은 부분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보장된 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저항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4.19 혁명입니다.
그러나 한국현대정치사에는 또 하나의 비극이 존재합니다. 바로 서로 상반된 체제를 가진 두 강대국에 의한 간접적 지배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독립 지원을 위해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 받아들인 이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서구의 노동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과 여성평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주의사상이 우리에게는 반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이미 보장된 권리를 다시 한번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적용과정에서 남한과 그 지도층은 척결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해방정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리고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좋게 말하면 사회주의 사상가들, 나쁘게 말하면 반동분자들이 온 남한에서 사회혼란을 조장합니다. 숱한 암살시도가 있고, 숱한 지도층들이 암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포속에서 수많은 시위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공포감은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반란사건,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빨치산 토벌 중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무고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좌익, 우익 할 거없이 수많은 무고한 민중들이 학살하고, 희생됩니다. 각종 좌익세력의 난동과 폭동으로 인한 상처를 경험했었기 때문에 추후 한국전쟁에서는 반공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처형이 벌어질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이런 학살이 용인되서는 안되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학살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통렬한 비판을 가해야하는 부분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시대, 그리고 그것이 용인되고 묵인되던 시대, 그 시대가 바로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엄연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읽어보았지만, 이 당시의 혼란을 제대로 조명하는 글은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에서 주목하는 것은 부당한 공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죄없는 민중을 학살했다는 프레임, 또는 공산주의자들의 만행과 그것을 지켜낸 우익 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제주 4.3사건이 그렇고 여수순천 반란 사건이 그러하며,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수많은 민중 학살 사건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프레임은 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하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진보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이나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기를 쓰고 독재자와 그 독재자를 추종하는 무리들, 그리고 평화적 시위를 한 민중에 대한 학살과 독재라는 프레임에서만 접근하고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반공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만 접근합니다. 서로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다르니 이 문제에 대해 평행선이 그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사고도 비슷합니다. 왜 사회적 분위기가 반공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