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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살 Oct 10. 2024

그냥 고(프롤로그)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여자

어쩌면 이 얘긴 나와 그 사람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MBTI도 정확히 반대니까. 

난 ESTP, 남편은 INFJ...







올여름,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날, 막내가 물건을 사다가 계산을 잘못해서 10배의 금액을 지불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 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서 결연히 일어났다. "환불해 올게." 

일본어를 잘하냐고? 노!!!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파파고앱을 켜고 바로 계산대로 휑하니 사라진 나를 보고 남편은 경악했단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행동 이라며'


계산대에 도착해서 물건을 보여주며 환불 가능하냐고 하니 점원이 뭐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다. 

'뭐라고 하지?'

순간 생각했다. 

점원은 물건을 이미 뜯었기 때문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니면 환불이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난 거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물건의 가격을 잘 못 봤대요. 꼭 환불 부탁드립니다." 

점원이 갑자기 전화기를 들더니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매니저가 왔고 그 자리에서 환불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 일로 인해 아이에게 시작부터 슬픈 여행이 될 뻔했던 것을 슬기롭게 해결해 낸 멋진 엄마가 되었다. 


 

후쿠오카의 거리


그날 저녁,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식당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부터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다들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30분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식당에서 각자 음식을 시키고 기다렸다. 배고파 죽겠다는 큰 아이가 시킨 메뉴가 제일 먼저 나왔다. 평소에 김치가 들어간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그 녀석의 메뉴는 역시나 빨간 볶음밥이었다. 그런데 한 숟가락을 먹은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나중에 들은 얘기다) 난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녀석의 표정을 제대로 못 봤다. 그것을 남편이 간파해서 자신의 메뉴였던 돈가스를 녀석의 앞으로 들이밀었단다. "아빤 배가 불러서."라며. 그런데 자기 거랑 돈가스까지 만족스럽게 다 먹더란다. 큰 아이가 식성이 좋냐고요? ㅎㅎㅎ 잘 먹는 것만 먹습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라 때로 기분은 맞춰줘야 하죠. 식당 이후 타워에 잠시 올라가는 일정이 남아있었기에 신랑은 저녁을 제대로 먹으면 타워에 올라가는 내내 투덜거릴 녀석의 상태를 생각해서 작업(?)을 놓았던 거였다. 나중에 얘길 듣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남편의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

여기까진 지극히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이제부터 내가 할 얘기는 남편 때문에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는 이야기로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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