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여자
어쩌면 이 얘긴 나와 그 사람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MBTI도 정확히 반대니까.
난 ESTP, 남편은 INFJ...
올여름,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날, 막내가 물건을 사다가 계산을 잘못해서 10배의 금액을 지불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 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서 결연히 일어났다. "환불해 올게."
일본어를 잘하냐고? 노!!!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파파고앱을 켜고 바로 계산대로 휑하니 사라진 나를 보고 남편은 경악했단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행동 이라며'
계산대에 도착해서 물건을 보여주며 환불 가능하냐고 하니 점원이 뭐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다.
'뭐라고 하지?'
순간 생각했다.
점원은 물건을 이미 뜯었기 때문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니면 환불이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난 거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물건의 가격을 잘 못 봤대요. 꼭 환불 부탁드립니다."
점원이 갑자기 전화기를 들더니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매니저가 왔고 그 자리에서 환불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 일로 인해 아이에게 시작부터 슬픈 여행이 될 뻔했던 것을 슬기롭게 해결해 낸 멋진 엄마가 되었다.
그날 저녁,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식당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부터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다들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30분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식당에서 각자 음식을 시키고 기다렸다. 배고파 죽겠다는 큰 아이가 시킨 메뉴가 제일 먼저 나왔다. 평소에 김치가 들어간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그 녀석의 메뉴는 역시나 빨간 볶음밥이었다. 그런데 한 숟가락을 먹은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나중에 들은 얘기다) 난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녀석의 표정을 제대로 못 봤다. 그것을 남편이 간파해서 자신의 메뉴였던 돈가스를 녀석의 앞으로 들이밀었단다. "아빤 배가 불러서."라며. 그런데 자기 거랑 돈가스까지 만족스럽게 다 먹더란다. 큰 아이가 식성이 좋냐고요? ㅎㅎㅎ 잘 먹는 것만 먹습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라 때로 기분은 맞춰줘야 하죠. 그 식당 이후 타워에 잠시 올라가는 일정이 남아있었기에 신랑은 저녁을 제대로 못 먹으면 타워에 올라가는 내내 투덜거릴 그 녀석의 상태를 생각해서 작업(?)을 해 놓았던 거였다. 나중에 그 얘길 듣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남편의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기까진 지극히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이제부터 내가 할 얘기는 남편 때문에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는 이야기로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