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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살 Oct 24. 2024

남편의 집에 방문하다

두 집 살림하는 남자

남편은 평일에는 회사 근처 원룸에 살고, 주말이면 집에 온다. 주말에 만나면 매우 반갑고 애틋하지만, 어떤 면에선 불편한 부분도 있다. 평일 내내 치열하게 살다가 밤에 잠깐 혼자의 시간을 갖고 조용히 잠드는 패턴을 유지하다가, 남편이 오는 주말엔 야식을 먹고 탈이 나기도 하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남편의 수다를 듣다가 수면부족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만약 남편이 며칠 내로 원룸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온다고 한다면? 일단, 겉으로는 좋다고 하겠지만, 상상만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결혼 15년 차니까 적당히 솔직하고 현실적인 게 편하고 좋게 여겨진다. 완전히 솔직할 순 없다. 부부사이에도 배려가 필요하니까...

 



남편의 집에 방문했다. 남편 회사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갔는데, 먼 거리를 간 김에 잠깐 얼굴이나 보고 오자 고 연락을 했다. 업무가 많고 바쁜 시즌이었는데, 그래도 근처라고 하니 나와준다 해서 고마웠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남편이 말한 출구 앞에 서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평일 낮에 남편 회사 근처라니... 왠지 모르게 긴장도 되고, 어색했다. 저 멀리서 남편이 걸어온다. '피식' 웃는다. 아마도 나랑 비슷한 기분인가 보다. 어라? 우리 옷 색깔도 똑같네? 볼 일 때문에 우아한 느낌의 블랙원피스를 입었는데, 남편도 깔끔한 느낌의 블랙 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느라 고생했네?!"

"응, 어차피 강의 들으려고 온 건데 뭐. 근데 여기 대중교통으로 오니 진짜 멀긴 머네."


남편의 원룸이 위치한 건물로 향했다. 역세권에 위치해 있고 젊은 층의 유입이 많은 곳이라 음식점과 다양한 편의시설로 가득했다. 


"우리 신랑, 좋은데 살고 있었네?"

"여기 밥값이 얼마나 비싼지 몰라. 국밥 한 그릇에 만원이야."

"우와, 우리 동네에 비해 비싸긴 하다." 


건물 지하로 내려가 샐러드 가게, 돈가스 전문점, 꽃집, 다이소, 이마트 슈퍼를 지나 지하도를 통과하니 원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6층에서 내리니 호텔로비 같은 느낌으로 양쪽에 문들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내 공간이 나와버리는 문들... 신랑 앞으로 오는 택배 중에 조금 중요한 혹은 비싼 물건들을 왜 우리 집으로 배달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오다가다 발에 채일 수도 있겠구나...

도심에서 이런 작은 문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 매달 7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하다니... 이것마저도 다른 곳들은 가격이 올라서 들어갈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 얼마나 좋은지 한번 들어가 보자!


물 한 방울 없는 남편의 화장실


남편은 신발을 벗자마자 왼쪽에 보이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부터 씻으라고 채근이다. 사실은 더러운 우리 집 화장실과 비교해서 자기 집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보여주고 싶은 거였다. 세면대부터 반짝반짝 윤이 났다. 평상시에도 깨끗한데 내가 온다고 청소를 한번 더 했다나...

"캬~~ 진짜 깨끗하네. 우리 집 화장실은 더러워서 어떻게 이용한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내가 집에 가면 어떨 땐 가방 내려놓고 화장실부터 청소하잖아?"

"자기가 와야 집이 깨끗해진다니까!"

한껏 추켜세워주고 나서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일인용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겨우 서서 운동할 수 있는 공간 정도.

 

남편의 침대와 책상, 어색한 커튼겸용 꽃무늬 버티컬


"이 꽃무늬는 뭐야?" 

"아, 이사올 때 달려있었는데, 햇볕도 가리고 겸사겸사 쓸만해서 그냥 뒀지."

'나 같으면 당장 바꿨을 저 무늬와 색깔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이 사람 참 검소하구먼?!'   

 

남편이 먹다 만 봉지과자를 열어 맛을 보는데

"먹지 마. 점심 먹어야지!"

"맛있는 거 사줄 거야?"

"사실 여기 진짜 맛있는 돈가스 집이 있는데, 자기 오기 전에 벌써 쏠드아웃 됐더라고."

"그럼 뭐 먹지?"

"감자탕 어때?"

"우와, 좋아!"




그날 감자탕을 배불리 먹고, 커피 마시러 가려다가 빵도 먹여야(?) 한다며 근처 빵집에 갔다가, 남편과 친한 동료들이 아이들 갖다주라고 사준 것까지 양손 무겁게 들고 돌아왔다. 


말로만 들었던 남편의 집을 다녀와보니, 집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 실감 나서 좋다. 주말에 집에 오면 더러운 집에서 요리하고 화장실 청소하고(내가 시킨 것은 절대 아님) 돌아가면서 "아, 되다. 얼른 우리 집 가서 쉬어야지."라는 농담을 한다. 그러면 나는 "다음 주에 올 땐 집청소 싹 해놓을게."라는 뻔한 거짓말로 응수한다. 


그를 닮은 그의 집이 그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지만,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동안은 자신만의 저녁시간을 충분히 누렸으면 한다.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앗, 부러우면 지는 거다. 


"신랑, 푹 쉬고 이번 주말에 와서 맛있는 거 많이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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