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

깐깐한 엄마

by 엄살

"엄마는 저희한테만 청소를 시키고, 엄마는 안 해요."

팩폭(팩트폭탄-우리 식구들이 지은 별명)이라 불리는 둘째가 입을 열었다.

순간 황당했던 나는 바로 받아쳤다.


"엄마가 청소를 안 하다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아니잖아요. 저번에 제가 하다가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안 된다면서요?"

"그게 어떻게 안 하는 거야? 얘 좀 보게!!!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한껏 흥분해 있는 나와 둘째를 번갈아보던 남편이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런, 느낌이 안 좋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대답은 안 하고 계속 쳐다보고 있다.

"왜? 이번엔 또 뭔데?"

한참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였다.


"음, 뭐냐면. 만약 내가 자기 아들이었다면 어떤 느낌일까 잠시 상상해 보느라 계속 쳐다본 거야."

"ㅎㅎㅎ 내 아들이면? 오 마이갓~~ 이겠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구나."

"내가 아이들을 좀 닦달하긴 하니까. “





남편의 허무맹랑(!)한 상상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난 어떤 엄마인가를 떠올려 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막내는 내 대신 북을 치고 있다. 저번에 올렸던(제 브런치 북, 섬세한 남편과 삽니다 중-게임하면 무조건 중독이야?) 틱톡이라는 앱에서 진행하는 북 치기 말이다. 친구가 초대를 해서 하긴 했는데, 매 시간마다 5000번씩 북을 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번 북 칠 때는 연말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할 만했지만, 이번에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북을 치려니 너무 바쁘다. 그렇다고 어차피 하는 거, 지는 건 싫고(나, 승부욕 최강녀!) 이런 식으로 내가 저지른(?) 일의 뒷수습 혹은 도움을 아이들에게 청한다. "엄마 지금 좀 바쁜데 대신 북 좀 쳐줄래? 5000번이야."


북 쳐달라는 부탁하기 바로 전엔 금요일부터 쌓여있던 설거지를 한 사람당 5개씩만 해달라고 강제로 명령(!)했다. 뒷마무리는 한밤중에 내가 하겠지만, 현재는 글 쓰는 게 우선이라 일단 아이들에게 패스.


방학이라고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맛있는 음식 해먹이고, 공부도 봐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두 달 중 하루이틀정도 될까? 나머지는 오전 일정 마치고 오후 재택근무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들어오면서 카톡으로 "엄마 들어가고 있으니 노트북 좀 켜줘."라고 보냈다.


아이들이 김밥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김밥을 주문해 라면과 함께 배불리 먹인 뒤 "오늘 과식했는데 저녁은 패스하는 게 어때?" 하며 점심과 저녁을 김밥과 라면으로 퉁치는 일타쌍피의 기술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써먹는다.


온라인 라이브방송과 인스타 피드에 올릴 것을 준비하느라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기보단 내 셀카를 찍거나 다른 영상을 촬영하는 게 우선이고, 집에 오는 택배 중엔 식자재 다음으로 내 것이 많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더라도 주로 이런 모습^^;;


밤엔 주로 이런 모습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엄마 지금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

바쁜 일이 끝나고 조금 숨 돌릴 때 되면 "엄마 오늘 마감이라 내일 얘기하자."

다음날 오전 "엄마 지금 나가야 되니 갔다 와서 얘기하자."

마감이 없는 밤시간 "엄마 지금 읽어야 되는 책이 있어서 내일 얘기하자."

방학 동안 아이들이 푼 문제집을 채점해 주기로 해놓고 미루고 미루다 개학이 낼모레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옆에 있어 주겠다고 오후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그에 맞춰서 다른 일들도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옆에만 있어 줄 뿐 일의 홍수 속에서 꼴딱거리는 날 아이들이 한 번씩 구해주는 형국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좋은 엄마란다. 학원 가라고 안 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바쁜 와중에 때마다 밥 준다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이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보이는 장점이 있을 거라며 당당하다가도 때로 부끄럽고 후회되는 모습이 있다. 난 아이들에게 포근하고 엄청 따뜻하고 부드러운 담요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은 포기했다. 내 성향상 그런 면이 부족하다. 자라면서 받은 사랑의 모양도 이러한 그러한 촉매제 역할을 했기에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은 어차피 다르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친구처럼 친근하고 말이 통하고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엄마'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친구라고 생각하다 보니 아이들의 작은 실수 하나도 한쪽 눈 감고 넘어가 주는 법이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냥 "그랬어?! 속상했겠네. " 하고 꼭 안아주면 되는 걸 못하고 있다고 지난번에도 남편이 얘기해 줬다.


청소 얘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돌아가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그다음 주엔 그 조가 교회 청소를 한다. 식사 준비는 여자집사님들이 주로 하지만 청소는 아이들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애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다만, 그 시간에 찬양단 연습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어디 어디를 청소하라고 하고 난 건반 앞에 앉아 있으니, 둘째는 엄마가 우리들만 청소시키고 본인은 안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엄마가 안 해서 속상했구나. 엄마는 이러저러해서 시간이 걸리니 너희들이 해주면 빨리 끝날 것 같아서 그런 건데.."라고 설명해 줬으면 될걸. 또 이러니 저러니 그게 맞고 저게 틀리고 하면서 따지니 결론은 안 나고, 아이는 계속 속상한 연장선이었다.






"내가 만약 자기 아들이면, 매일같이 '오늘은 뭐를 꼬투리 잡힐까' 걱정되고, 내가 원하는 게 생기면 '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하지?' 하면서 사는 게 참 어려울 것 같아. “

남편은 우스개 소리처럼 이야기했고 나도 낄낄거리고 웃었지만, 막상 돌아보니 아이들에게 나란 엄마는 편하지만 때로 무섭고 깐깐한 엄마가 아니었을까.


개학을 앞두고 이제야 엄마로서 나를 돌아보는 게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뻔뻔함과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용기 내서 나다움으로 아이들에게 다시 비비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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