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제사건
나는 답정녀인가?
결혼 16년 차이지만 아직도 남편이 연예인이든 누구든 '예쁘지? 예쁘다 혹은 예쁜 것 같아...'등등 외간여자(?)를 보고 이야기하면 뭔가 따끔따끔한 느낌이 머리끝에서 올라오는 것을 애써 누른다.
*남편의 이야기는 다른 브런치북(섬세한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에서 하고 있음에도 오늘 또 이야기하는 게 송구할 뿐이지만, 그래도 또 합니다.
신혼 때의 기억.
임신 중반, 잠이 쏟아져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눈을 떴다.
남편은 옆에서 '소녀시대'의 춤과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당시 시댁에 들어가 살고 있어서 우리의 공간은 방 하나였다) "예쁘지? 어쩌고 저쩌고..."
난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 '지금 나한테 왜 쟤네들이 예쁘다는 얘기를 하는 거지?'
"쟤들이 그렇게 예뻐? 그만 좀 얘기하지?!."
남편은 잠 잘 자고 일어나서 순간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다른 여자들 보고 예쁘다거나 어쩌고 얘기하는 거 아무리 연예인이어도 아내로서 불쾌하다고 설명했다.
첫 아이를 낳고 몇 개월 지나 남편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부서에 함께 참석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구석에서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다른 쪽 구석에서 어린 여선생님과 계속 이야기 중이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실 정도로...(아내가 저쪽에 앉아있는데 저런 행동은 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집에 와서 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현재 그 여선생님이 자기 반 보조교사라서 의논을 하다 보니 길어졌고 나를 배려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속으로 '아, 진짜. 이런 걸 일일이 다 말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날, 남편의 전화가 울렸다. 결혼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여자 동기였다. 승무원이고 남편 말로는 '그전에 본인한테 관심 있었다나...' 전화통화 끝에 그 동기보고 '우리 집과 같은 단지에 살고 있으니(알고 보니 이웃사촌) 언제 만나서 아파트 평상에서 치킨이라도 먹자'는 이야기를 하고 끊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나보고 같이 가자는 것도 아니고 둘이 만나서 치킨을 먹는다고?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 당시 남편은 29살, 우린 사귄 지 7개월 만에 결혼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일 테지만 '바람둥이' 스타일은 아닌데 도대체 뭐지 이 사람?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이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생각이 짧았다. 기분 나쁠 줄 몰랐다. 미안하다."였고, 그 다음부터 나에 대해서, '다른 여자사람이랑 얘기하거나 통화하거나 엮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 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 나로서도 기분 나쁘고 답답했다. '
나도 결혼 전에 친했던 남자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결혼을 했으니 내가 사랑 받을 남자는 오직 남편 한 사람이고, 다른 남자사람들과는 담백하게 지내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이게 시대에 안 맞는 생각일까?) 또한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라 믿었는데 번번이 반대되는 행동을 하니 약 오르고 속은 기분이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감정을 차분하게 설명하기엔 당시 나도 너무 어렸다. 내 짜증에 남편이 화를 내지 않아 싸움으로까지 번지진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내 마음에 서운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그사이 세 아이를 낳았고, 결혼 10년 차가 되었다. 우린 여러 우여곡절을 함께 겪어나가며 많이 단단해졌다고 믿었다. 남편은 한동안 쉬었던 교회 봉사를 시작했고 청년부 교사를 맡게 되었다.
몇 주 후 1박으로 청년부 수련회를 떠났다. 남편이 회사에서 출장이나 워크숍으로 집을 비운 거 외에 다른 일로는 처음이라 나도 긴장이 되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야 그는 돌아왔고, 밤새 못 잔 잠을 보충하고 나서는 내내 청년부 아이들 이야기만 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다음날 교회에 가서도 청년부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내 생일이라고 친정에 가기로 한 시간도 잊어버렸다. 나는 친정으로 가는 길에 "그래도 오늘 내 생일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했고, 또 미안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남편은 교회에서 청년부 외에도 내 또래의 젊은 여집사와 둘이 한참을 이야기하는 일이 꽤 있었다. 나랑 워낙 친밀한 여집사라서 둘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한 건 아니다. 다만 남편이 왜 내가 다른 여자사람이랑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가?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다.
이번에 남편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미안하다"가 아니라
"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 사람이 혼자 힘들어 보이거나 하면 너무 신경 쓰여서 가서 말을 걸어주는 거다. 그게 내 기질이다. 그러니 받아들여달라."
하......
난 그 기질이 너무 싫은데, 우리 가족에게만 신경 써도 부족한데 왜 남에게까지 그렇게 해야 하지?
마치 남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듯했다.
너무 답답해서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토로하면 모두가 공감해 주었다.
'내 남편이었어도 기분 나빴을 것.'이라며.
인생에서 가장 큰 핵폭탄을 맞은 듯 했다.
그 한 해 동안 미친 듯이 싸우고 나서 얻은 결론은
'이혼할 수 없으면 받아들이자'였다. (그때 깨진 베란다 유리를 아직도 수리하지 못했다)
남편은 나에 대해 '이 사람이 이렇게 싫어하니 밖에 나가서 여자사람에게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나...
그 이후 난 내 마음을 돌보기 위해 자연스레 운동하고 글을 쓰는 길로 오게 되었다. 나와 한 몸이고 분신일 거라 믿었던 남편과도 평행선일뿐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죽을 듯이 힘들었다. 남편과는 그후 싸움이 아닌 수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 했다.
나중에 깨달은 건 그는 '멀티가 안된다'였다. 한 가지에 신경을 쓰면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것. 일단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면 아내인 '나'나 '아이들'까지도 신경을 못 쓸 정도로 '한 가지 집중형'
그러니 반대성향인 나로선 더욱 힘들고 이해가 안 될 수밖에.
그걸 파악했음에도 한 번씩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올 때가 있다.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와 이쁘다, 연예인인 줄..."
이 한마디에 싸늘한 눈빛으로 "자기는 눈이 참 낮은 거 같아. 맨날 이 사람 저 사람 다 이쁘다 그래? 저번에도 이쁘다더니!"
그는 내 눈빛에 흠칫 놀라서 "내가 눈이 낮은 게 아니라, 그냥 한 말인데... 얘들아 나 아무래도 너희 엄마가 쳐 놓은 덫에 걸린 것 같다." 하며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창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했다.
"그러게. 답이 정해져 있었지. 내가 이 사진 우리 막내한테 보여줬더니 '하나도 안 이뻐. 엄마가 훨씬 예뻐.' 그랬는데...."
남편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고, 마침 만들고 있던 계란국을 서둘러 끓이기 시작했다.
이제 결혼 16년 차이고, 오늘 남편을 이 잡듯(?) 잡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우린 평상시 아주 잘 지내는 부부이다. 아무 의도 없이 그냥 보여준 다른 여자 사진에 그가 "예쁘다"라고 반응한 것에 또다시 혈압이 오르는 내가 답정녀 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