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입니다
예상은 했다.
1-2월 방학 때는 원하는 날 쉴 수 있다는 파트장님의 복선...
"수업에 여유가 있으니 꼭 5주 차가 아니어도 쉬어야 하는 날 휴가신청 하세요."
C사는 6세까지 유아에 있고 7세부터 초등키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올려 보낸다. 난 지난 12월에 90명, 2월에 15명 정도로 총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보냈다. 마지막 수업 때 화면으로는 "잘 가."하고 웃으면서 인사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희들 보내고 나면 내 월급은 어찌 될까?'라는 물음표가 남았다.
같은 파트의 선배샘들이 해준 얘기로는 보낸 아이들만큼 정원이 다시 채워지는 데는 거의 일 년이라는 기간이 걸린단다. 한 달에 보통 5-6명 정도의 신규를 받으니 계산상으로 일 년은 있어야 그렇게 된다는 게 딱 맞다.
아이들이 확 줄고 다음 달 월급은 그전의 3/4의 금액이었다. 1/2을 예상했는데, 다행히 이관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나머지 부분이 조금 채워졌다. 이제 그것마저도 없는 이번 달 월급은 3/5 가량 된다. 역시 1/2보다는 많아서 괜찮다고 생각해야 할지... 내 얘길 들은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파트의 어떤 샘은 월급이 줄은 기간 동안 오전에 파트타임 알바로 근처 공장에서 박스를 접는 일을 했단다. 아침에 그쪽으로 출근했다가 헐레벌떡 들어와 오후 재택근무까지 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고... 그러다가 학생수가 예전 궤도로 돌아오고 나서 알바를 그만뒀다고 했다.
나도 오전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때가 많다. 나가서 텐션을 함부로 올렸다가는 2시 근무 시작부터 헐떡거려서 끝나는 8시까지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다 쓰고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가서도 되도록 에너지를 아끼고, 밥도 밖에서 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와 집에서 해결하고 한숨 돌린 뒤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학습지교사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오전에 누구를 만나도 급하게 들어와야 하고, 어쩔 땐 식사도 못하고 헐떡거리는 상황이 힘들었다. 차가운 아침공기가 따뜻하게 덥혀지고 햇살이 제일 좋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시작할 때면 감옥에 갇힌 것 같고 괜스레 답답해지곤 했다. 그런 상황에 월급도 줄어든다니 '이 일 말고 다른 일 없을까'하는 꼼수라는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려고 했다.
이번 주는 긴 방학을 끝내고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갔다. 2시부터 3-4시 사이에 세 아이들이 모두 돌아온다. 막둥이는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직 차가운 바깥바람에 손과 얼굴이 빨개져서 들어왔다. 그동안 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 들뜬 마음이 보였다. 조금 있으니 올해 중1이 된 둘째가 현관문을 연다. 첫날은 엄청 긴장한 모습이더니 슬슬 적응되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마지막으로 중학교의 마무리 학년이라 이미 익숙하다는 듯 여유로운 몸짓의 첫째가 합류했다.
"얘들아, 오렌지 먹을래?"
오늘은 밖에 나갔다가 점심 먹는 대신 마트에 들러 아이들 간식을 사 왔다.
처음엔 안 먹는다더니 까놓으니까 맛있어 보인다며 까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오렌지가 사라졌다.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네."
"그러게요. 이 그릇 이제 밑 빠진 그릇이라 불러요."
"이 오렌지 엄마도 먹고 싶은데 조금 남겨주지 그래?!"
"네"
일이 바빴을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도 손만 흔들어주고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낮시간에 간식 먹으며 잠깐 수다 떠는 순간이 꽤나 즐거웠다.
"엄마 일하러 들어갈게."
아이들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할 일을 하며 다 같이 집에 있는 오후가 나쁘지 않다.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도 시간 맞춰 들어올 수 있으니, 시간 개념이 없는 나에겐 차라리 잘 된 거 아닌가 싶다.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을 이 시간에 하는 것도 좋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잠깐씩 아이들과 수다도 떨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빠서 허덕일 때가 오고 그만큼 월급은 오를 것이고.
자유롭고 싶고, 시간 부자로도 살고 싶지만 그러려면 이 시간을 참고 견뎌야겠지. 평일 오후 매일같이 주어진 6시간의 근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바라보기로 한다.
봄을 맞이하듯이, 나의 일도 따스한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