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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Apr 05. 2024

3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파나마 | 당신은 어느 쪽 사람인가?

중미를 여행할 땐 주로 현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어도 되지만 현지 물가가 저렴하기에 굳이 요리해 먹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중미는 중미만의 식문화가 있었기에 현지의 음식을 먹는 것을 즐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식집 같은 느낌이려나?

식당에 가서 고르는 건 소고기(Carne)냐, 돼지고기(Cerdo)냐, 닭고기(Pollo)냐, 생선(Pescado)이냐 중 하나였다.

그러면 주문한 메인 재료의 요리와 한국보다는 조금 더 길게 생긴 쌀밥과 샐러드, 감자튀김 등이 나왔다.

어떤 곳은 커다란 바나나를 슬라이스해 굽혀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맛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맛이 날 때가 있었다.

특히, 이곳 파나마에서 유독 그러했다.

아, 뭘까? 이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은..


분명 겉으로 보기에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진 않은데.

아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상한 맛이 난다.

그냥 '맛이 이상하네?'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먹을 없을 수준의...

그렇게 몇 숟가락 몇 포크질(?) 못하고 남긴 음식이 하나둘 생겨났다.




 건물이 특이해서. 그리고 유일한 파나마 시티 사진 :(



파나마에 왔다.

딱히 파나마에 와야 할 강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남미를 가기 위한 동선에 파나마가 있었을 뿐.

그래도 파나마에 왔으니 여기는 가봐야겠다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파나마 운하.


느린 화물선이 위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돌아가야 했던 그 시절의 운항을 파나마에 운하를 만듦으로써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 운항 동선을 혁신적으로 짧게 만들어 해상무역의 활로를 열었는 운하가 바로 이 파나마 운하이다.


수도 파나마시티(Panama City)에서 당일치기로 파나마 운하를 보러 가던 중에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를 한 명 만났다.

중미 땅에서 한국인을 볼 일은 극히 드물었기에, 오랜만에 만난 자국민이 유난히도 반가웠다.

시간도 마침 점심시간.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근처에 식당에 들어갔다.


왠지 오늘은 닭의 기분(?)이라 뽀요가 적혀있는걸 하나 주문했다.

밥과 닭고기와 야채의 조합을 기대하면서.


...

수프가 나왔다.

아무래도 닭고기가 들어간 수프인 듯하다.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어보았다.

척 보아도 원했던 닭고기는 거의 보이지 않고, 내장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조금 저어보았다.


 '으아앗'

닭발이 나왔다. 뼈가 제거되지 않은 날것 그 자체의 닭발이..

싸늘했다. 실패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쉽지만 얼마 없는 닭고기와 맛이 강하지 않은 내장만 조금 주워 먹고 남길 생각이었다.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으로 넣었다.


 '으웩'

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이 난다.

아무리 수프를 저어봐도 안에 들어있는 재료를 맛봐도 날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눈앞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계속 숟가락으로 휘적휘적 젓고 있자 그 사람이 물었다.


 "왜 안 먹어요?"

 "뭔지 모르겠는데 이상한 맛이 나서 못 먹겠어요. 아무리 봐도 이런 맛이 날만 한 건 안 보이는데.."

 "아~ 거기 보면 작은 이파리 같은 거 있죠? 거기서 나는 거예요."

 "이거요? 이거 파슬리 아니었어요?"

포크로 그 이파리만 쿡 찍어 맛봤다.


 '으웩'

이놈이다.... 이놈이었다!


 "이거.. 뭐예요?"

나는 물었다.


 "아~ 그거 고수예요. 스페인어로는 신란트로(Cilantro)라고 한답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이파리에서 이렇게나 자극적인 맛이 나다니...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음식이 고작 이 작은 이파리였다니...


지금은 쌀국수나 마라탕, 훠궈 등등 고수가 들어가는 음식들이 많아 고수의 존재가 우리 일상에 익숙하지만 그 당시 한국은. 아니, 적어도 나와 나의 주변인들의 영역 안에서 고수는 낯선 식재료였다.


아시아 요리의 고수는 주로 이파리 째로 들어가기에 원치 않는다면 충분히 내가 빼낼 수 있다.

하지만 중남미 요리에 들어있는 고수는 수프, 샐러드드레싱 등의 요리에 잘게 다져져서 들어간다.

한마디로 한번 들어가면 그 요리에서 고수를 빼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고수가 들어있던 음식은 이런 맛(?)의 원인도 모른 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으니, 대처할 수 있다.

이후 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절대 빠트리지 않는 말이 생겼다.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많은 스페인어를 배우고 사용했지만, 죽는 그날까지 잊을 수 없는 그 문장.


 'Sin Cilantro. Por favor~'

(고수 빼주세요~)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과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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