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ABC뉴스는 5월 16일 자 기사를 통해 호주 정부가 미얀마와의 외교관계 격하 가능성이 있음에도 지난 4월 임기를 마친 안드레아 포크너 Andrea Faulkner 전 미얀마 대사의 후임으로 외교 통상국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FAT) 고위 관리를 발탁했다고 보도했다. 호주 정부는 군정에 신임대사 신임장을 제출하지 않고도 대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리대사를 임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동안 호주 정부는 현재 14년형을 언도받고 구속 수감된 경제학자 겸 아웅산 수지 여사 경제 고문이었던 션 터넬 Sean Turnell 박사의 석방을 위해 미얀마 군정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조치 없이 군정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인권단체로부터 군정에 대한 제재에 호주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호주 정부는 군정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듯한 신임 대사 신임장 제출 문제와 군정과의 관계 유지 문제에 대한 고심 끝에 대리대사 체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호주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별도의 환영 메시지를 발표할 정도로 그 상징성이 크다. NUG는 호주 정부의 결정을 높이 평가하며 호주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신뢰 강화에 일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정의 찬 예 Chan Aye 외교부 차관은 5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호주 정부의 방침에 대응하여 호주 주재 미얀마 대사관 운영 방안을 검토 중이며 호주와 외교관계가 격하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호주와 미얀마의 외교관계는 대리 대사급으로 격하될 전망이다.
군정 외교부 차관은 5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영국 정부는 2021년 7월 대사로 임명한 피터 보울스 Peter Vowles의 신임장을 제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국정부 공식 사이트에 그의 직책을 대리대사로 밝히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21년 7월 23일 피터 보울스를 미얀마 주재 영국대사로 임명했으며 8월에 취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Independent는 8월 26일 자 기사를 통해 영국이 미얀마 주재 대사를 새로 임명하고 군정에 신임장을 제출하면 사실상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피터 보울스 대사 지명자는 2021년 8월에 미얀마에 입국했으나 군정의 거듭된 요청에도 신임장을 제출하지 않은 채 업무 차 미얀마를 잠시 떠났다가 2022년 2월 군정으로부터 재입국을 거부당한 상태이다. Nikkei Asia는 5월 9일 자 기사를 통해 영국 정부가 피터 보울스 대사의 지위를 대리대사로 격하시키자 군정은 2022년 4월 말 피터 보울스 대사 지명자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양국 외교 관계가 대리대사급으로 격하된 셈이다.
지난해 3월 NUG 지지를 공개 선언하여 군정으로부터 해임된 쪼 좌 민 Kyaw Zwar Minn 전 영국 주재 미얀마 대사의 관저 점거문제에 대해 미얀마 군정은 영국 정부에 강제 퇴거 조치를 요청했으나 영국 정부는 군정의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부해 왔다. 그러나 3월 10일 자 Reuters 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이메일을 통해 쪼 좌 민 전 대사에게 관저를 비워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정부와 군정이 이미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놓인 상태에서 영국정부의 신임 대사 임명 문제가 더해지며 양국 간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Nikkei Asia는 미얀마 주재 대사관을 운영 중인 국가들 중 독일, 덴마크, 핀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그리고 대한민국도 신임장 제출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기 위해 대사 직무대리 지명 방식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Radio Free Asia(RFA)는 5월 19일 자 기사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 중 2021년 4월 군정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대사를 소환한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필리핀 등이 아직 신임 미얀마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1년 4월 7일 자하이리 바하림 Zahairi Baharim 주미얀마 말레이시아 대사가 당시 군정의 전력에너지부 장관과 회담을 가진 것이 알려지자 말레이 시아 정부가 군정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자하이리 바하림 대사가 군정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1년 4월 8일 성명을 통해 자국 대사의 이번 미팅이 말레이시아의 미얀마 군정 정당성 인정 여부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하이리 바하림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으며 현재까지 신임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사이푸딘 압둘라 Saifuddin Abdullah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2022년 2월 NUG 대표단과 온라인 화상회의를 했고, 2022년 5월 14일에는 NUG 외무장관과 대면 회담을 가질 정도로 미얀마 반군부 세력과의 교류를 중요시하고 있어 현 군정체제 하에서 신임 대사를 임명하지 않을 전망이다.
Nikkei Asia는 2021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았던 브루나이도 올해 초 미얀마 대사를 소환 조치한 후 부대사에게 대사 대리 역할을 맡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브루나이의 경우 아세안 회원국들 중 미얀마 군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던 것을 감안하면 신임대사를 임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임 대사 임명을 위해 정식 신임장을 군정에 제출하는 국가들도 있다. 많은 국가들이 미얀마 군정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는 듯한 외교 절차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인도와 사우디 아라비아는 신임 대사 임명을 위해 군정에 신임장을 제출했다.
인도 정부는 2021년 11월 16일 비나이 쿠마르 Vinay Kumar를 신임 미얀마 대사로 임명했으며 2022년 4월 7일 SAC 의장 민 아웅 흘라잉에게 신임장을 제출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3월 17일 사우드 빈 압둘 알 수바이에 Saud Bin Abdullah Al-Subaie 신임 대사의 신임장을 제출했다.
신임장을 정식 제출한 국가들의 경우 미얀마 군정을 정식으로 인정하는가 여부보다는 자국의 외교적 편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도의 경우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중국과 긴장이 지속되고 있고, 미얀마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정과 일정 수준의 관계유지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세안-미국 정상회담 개최 직후인 5월 14일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워싱턴에서 NUG의 진 마 아웅 Zin Mar Aung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비록 이 회담은 비공식 회담으로 표현됐으나 군정의 참석이 배제된 이 정상회담 직후 아세안 회원국 장관과 NUG 장관의 만남을 통해 NUG가 국제사회에 공식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군정이 국제사회 제재에 반발하며 러시아와 중국 중심의 외교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한 반군부 세력 지원 국가들은 군정에 대해 외교적 압박을 더욱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The Diplomat는 5월 19일 자 기사를 통해 EU회원국들이 미얀마 공관에 대사를 파견하지 않기로 했으며, 아세안 일부 회원국들도 군정과 외교적 관계를 조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군정과의 외교적 관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국가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군정에 대한 외교적 압박이 강해질수록 군정도 러시아와 중국 중심의 외교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면서 자신들이 테러단체로 규정한 반군정 세력과 접촉하거나 지원하는 미얀마 주재 외교관에게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이슈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외교전이 갈수록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