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로컬언론 Mizzima는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하 총사령관)이 6월 8일 미얀마 군부가 ‘2008년 헌법(이하 헌법)’ 초안을 마련했던 장소인 의회 회의장 Pyidaungsu Hall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장은 양곤으로부터 60km 북쪽에 위치한 흘레구 Hlegu 타운십 냐웅 나 핀 Nyaung Hna Pin 빌리지에 위치해 있다. 총사령관은 폐허 상태의 Pyidaungsu Hall을 시찰하면서 시설 사용이 가능하도록 유지 보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초안 마련을 위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7차에 걸쳐 8개 그룹 702명의 대의원이 참여한 전당대회가 이 회의장에서 개최됐으며 2007년에 헌법 초안이 마련된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헌법 제정을 위한 전당대회 위원장은 테인 세인 소장이며, 그는 2010년 총선 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Mizzima는 테인 세인 정부 당시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총사령관의 이러한 행보는 평생 집권을 염두에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총사령관이 2023년 2월 1일 비상사태 만료 이후의 권력 장악 및 유지를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행 헌법에 따라 2023년 2월 1일 비상사태 만료 및 6개월 이내 총선이라는 예정된 정치일정 하에서, 총사령관은 이전 군부와 같이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 개정과 반군부 정당들의 총선 출마 저지를 통한 총선 실시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합법적인 정권 이양이라는 대외적 명분을 만들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등의 정치적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는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선언과 함께 제헌 헌법인 ‘1947 헌법’을 공포했으나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1962년 헌정 중단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후 1974년에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1988년 군정에 의해 헌정 중단 사태가 반복된다. 그리고 군정에 의해 다시 ‘2008 헌법’이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헌정 중단 및 신 헌법 제정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1947 헌법
미얀마의 첫 헌법은 미얀마 독립 직전인 1947년 5월 양곤 Jubilee Hall에서 초안이 작성됐다. 아웅산 장군은 반파시스트인민해방연맹(Anti-Fascist People's Freedom League, AFPFL)을 이끌고 1947년 4월 총선에서 승리했다. 아웅산 장군은 제헌 의회 총 202석 가운데 196석을 확보하며 과도정부의 수반이 됐으며 75명으로 구성된 헌법초안 위원회를 구성한 후 헌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그 해 7월 19일 아웅산 장군이 암살을 당함에 따라 불교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우 누 U Nu가 버마 초대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아웅산 장군이 제출한 헌법은 1947년 9월 24일 비준됐고,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과 함께 ‘버마 연방 헌법’으로 공포됐다. 1947 헌법은 양원제를 바탕으로 각 자치구의 인구수에 따라 의석을 배당하도록 하고 있다. 1962년 쿠데타 이후 네윈 장군은 ‘1947 헌법’ 중단을 선언했다.
1974 헌법
1974년 1월 3일 국민투표에 의해 비준된 ‘1974 헌법’은 네윈이 주도하는 버마사회주의 계획당(BSPP, Burma Socialist Program Party)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소위 미얀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위해 제정됐다. 헌법 초안위원회는 97명의 위원으로 구성됐으며 당시 산유 San Yu 대통령이 주도했다. 1974년 제정된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8년까지 버마는 군부 이외 정당이 금지된 일당제 국가였다. 의회는 혁명 평의회로 불렸으며, 유일한 합법 정당이었던 BSPP 소속 군부 인사들이 순차적으로 권력을 차지했다.
1988년 8월 민주화 투쟁 이후 1988년 9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소 마웅 Saw Maung 장군의 군부는 ‘1974 헌법’ 중단을 선언했다.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민주 연맹(NLD)을 인정하지 않은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는 ‘1974 헌법’을 대체할 신 헌법 제정 계획을 발표했다. 1992년 소 마웅 장군이 물러나고 탄 쉐 장군이 집권한 이후 1993년 신 헌법 제정을 위한 의회 구성을 시도했으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의 반대로 무산됐고 2008년까지 헌법 기능이 중단된 상태가 이어졌다.
2008 헌법
1993년부터 신헌법 제정 노력 끝에 미얀마 군부는 헌법 초안 마련 목적으로 2004년 전당대회 (national convention)를 개최했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전당대회 참석자는 각 정당과 민족지역 대의원 등 1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NLD는 군부의 전당대회를 통한 헌법 제정이 비민주적이라며 전당대회를 통한 헌법 제정 논의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0월, 대법원장 아웅 토 Aung Toe는 54명의 초안 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 제정을 위한 전국적인 국민투표가 2008년 5월 10일에 예정됐으나 국민투표 일주일 전 발생한 사이클론 나르기스 피해로 인해 에야와디 지방 7개 타운십과 양곤 40개 타운십 국민투표는 5월 24일로 연기됐다. 당시 군사 정권은 5월 29일 헌법을 공포하며 2천6백만 명 이상의 유권자 중 92% 이상이 2008 헌법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2008 헌법’은 상원의석 224석과 하원의석 440석 중 각 25%를 군부에 당연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헌법 개정은 의석수 75%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다고 규정하여 사실상 군부 동의 없는 한 헌법 개정의 길을 막아버렸다. 국가 주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권력의 3대 축인 행정, 입법, 사법부가 군 통수권자에게 이양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 이행 조항도 포함됐다.
아웅산 수지의 ‘2008 헌법’ 개정 추진과 실패
아웅산 수지 당시 국가 고문을 주축으로 NLD가 집권 이후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2008 헌법’ 개정 작업은 2020년 3월 군부 지명의원들과 야당인 USDP의 거부로 무산됐다. NLD는 헌법 개정을 위해 2019년 1월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했으며 2020년 1월 13일 헌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연방의회에서 2020년 3월 10일부터 3월 20일까지 진행된 헌법 개정안 회의에서 군과 군사령관에게 부여된 특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하려는 내용을 포함한 114개 안건 중 110개 안건을 군부 지명 의원들과 USDP의원들이 부결시킴에 따라 군부의 힘을 차단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는 NLD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NLD, 쿠데타 이후 2008 헌법 폐지 선언
2021년 2월 쿠데타 이후 축출된 의원들 단체인 CRPH는 3월 31일 ‘2008 헌법’이 군사 통치를 연장하고 민주 연방 연합의 출현을 막기 위한 악법이라고 지적하며 이 헌법의 폐지를 선언하고 연방민주주의 헌법 초안을 공개했다. 이어서 2021년 4월 16일 군정에 대항하여 외국의 지원과 외교적 대표성을 확보할 국민통합정부(NUG) 구성을 발표했다. 그러나 군정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AC, State Administrative Council)는 CRPH의 ‘2008 헌법’ 폐지 주장을 일축하고 3월 21일 CRPH를 불법 조직으로 규정한 뒤 그 조직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23년 8월 1일 총선 실시 및 폐쇄형 비례대표제 도입 발표
일본 TBS는 2022년 2월 23일 자 보도를 통해 군정 마웅 마웅 온 정보부 장관이 일본 언론 매체들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2023년 8월 1일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군정은 2월 28일 자 보도자료를 통해 다양한 정당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방선거 관리위원회(UEC)는 비례대표제 시행을 위해 4차례 정당과 연석회의를 가졌고, 폐쇄형 비례대표제 (Closed List 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 도입 의사를 밝히며, 관련 법과 규칙을 정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부는 쿠데타 이후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로 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비례 대표제가 소수민족 대표 정당들의 의회 의석 확보를 용이하게 한다는 명분 하에 USDP나 친 군부 소수 정당이 그 혜택을 볼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소수민족무장조직들(EAOs)과 잇따른 평화회담을 통해 헌법 개정 토대 마련 중
군정은 5월 20일부터 미얀마 21개 소수민족무장조직(Ethnic Armed Organizations, EAOs) 중 정전협정(NCA)에 서명한 7개 조직과 비서명 조직 3개 등 10개 EAO들과 대면 평화 회담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EOS와의 회담 결과를 보면 논의 사항에 대한 세부 설명 없이 연방 민주주의 구축과 다당제 민주주의 도입 그리고 자치주 관련 논의가 있었으며, 연방연합 설립을 위한 헌법 초안 마련과 자치주 관련 법안 마련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군정에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인 EAO들에 대해 자치권을 보장하고 연방의회에 참여 가능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군정의 약속이 그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 분명하다. EAO들과 연방제 및 선거제도 변경 합의를 통해 군부가 명분을 쌓을 뿐만 아니라 헌법 개정과 총선 승리를 모두 도모하겠다는 것이며 총사령관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한 국정책임자로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
군정의 비상사태 선포 종료 시한이 7개월 밖에 남지 않았으며, 군정이 공표한 2023년 8월 1일 총선까지도 1년여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군정은 평생 집권을 위해 비상사태 선포시한 동안 선거제도를 비롯한 각종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연방제도 도입과 선거법 관련 사항은 헌법 개정이 불가피한 이슈들이다. 군정 입장에서는 확보한 시간 내에 원하는 수준의 개헌과 입법 조치를 완료해 나가고자 할 것이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테인 세인 전 대통령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두 사람 간 친분은 차치하더라도 테인 세인 전 대통령의 ‘2008 헌법 제정 à USDP 창당과 선거출마 à 2010년 총선 승리 à 대통령 취임’이라는 일련의 정치적 수순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2023년 총선을 대비해 총사령관이 USDP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현재 당권 경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하고자 하는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정치 행보를 위해 USDP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테인 세인 때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비상사태 선포 시한 마감 날짜인 내년 2월 1일부터 총선에 이르기까지 반군부 세력은 투쟁 수위를 더욱 높여 갈 것이며 군부도 그 대응 강도를 훨씬 높여 나갈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총선 일정 연기설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