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정변이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난 7월 초 현재, 은행 ATM 옆으로 늘어선 인파와 주변의 차량 정체는 여전하다. 계좌당 일일 인출한도와 매일 특정되는 현금 인출가능한 ATM 위치등으로 인해 수수료를 선공제하고 현금을 대신 지급해 주는 신종 암시장이 성행하고 있다. 특정 은행의 특정금액 인출 대행 수수료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공연히 광고되고 있으며 그 수수료는 현재 8~10%선에 이른다.
Nikkei Asia는 6월 14일 자 기사를 통해 금융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하여 미얀마 당국이 현금 공급량 증가로 인한 짜트화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현금 부족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Financial Times도 5월 31일 자 기사를 통해 현금 부족 현상은 미얀마 경제와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신호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충분한 현금 확보가 어려운 기업들이 직원들의 급여 현금 지급과 공급업자들의 선현금 지불 요구가 더해지며 잠정적 영업중단을 선언하고, 이는 다시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 경제에 접어들고 있다. 미얀마 당국은 짜트화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막고 은행 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 두 달간 여러 조치들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시장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악회 되고 있다. 반 쿠데타 운동의 일환인 제세공과금 납부 거부 운동,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제재, 주요 국제 금융기구들의 미얀마 사업 지원 중단, 주요 다국적 기업들의 군부 합작사업 배당금 지금 중단 및 연관 사업 철수와 축소 등으로 현금 부족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현금 부족이 아직 근본적인 위기를 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업과 은행의 자금 확보 문제가 장기화되면 소규모 은행들부터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2021년 1월 IMF는 2019/20 회계연도 미얀마 외화 보유고를 67억 달러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2월 4일 바이든 행정부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CBM 자금 10억 달러 인출을 동결한 것을 감안하면 2월 초 기준 가용 외화는 57억 달러로 추산된다. Fitch Solution은 2020년도 수입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금액이 약 3.5개월치 수입 결제 대금에 해당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변 이후 수입 급감, FDI 유출, 수출 급락 상황 등을 고려할 경우 현 외화 보유고가 몇 개월치의 수입 결제 대금에 해당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7월 16일 자 환율은 정변 이전보다 약 18% 하락한 1,636쨔트(CBM기준)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한때 1,700쨔트를 기록했으며 CBM은 달러 매각을 통해 환율시장에 개입했다. 사실 CBM은 2월부터 시장에 달러를 매각하기 시작했다. 2월 3일 680만 달러 매각(매각가 1,382쨔트)을 시작으로 7월 16일까지(매각가 1,636쨔트) 19 차례에 걸쳐 총 8,480만 달러를 매각했으나 환율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편, Fitch Solution은 5월 28일 미얀마 짜트화의 지속적인 하락을 예상하며 2021년 연말 환율을 1,750으로 전망했다.
정변 직후 급격히 확산된 10,000 짜트 신권 발행 소문이 은행 예금 인출사태를 촉발시켰다. CBM은 2월 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용 중인 1,000 짜트, 5,000 짜트, 10,000 짜트 구권 사용 중단과 10,000 짜트 신권 발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신속히 진화에 나섰다. 2월 4일 민 아웅 흘라잉 SAC 의장도 은행관계자들과 긴급 회담을 갖고 신권 발행 소문을 부인했다. 신권 발행 가능성에 대해 국민과 군부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네인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화폐 개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금 부족사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뱅크런으로 인한 미얀마 은행 파산 위기를 거론하는 가운데, 5월 24일 열린 SAC 11/2021 회의에서 SAC 의장이 의미 있는 공식발언을 했다. 관영 Global New Light of Myanmar의 5월 25일 자 기사를 보면, SAC 의장은 투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많은 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축재자들을 색출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inancial Times도 5월 27일 기사에서 미얀마 군부가 현금 부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거액 자산가들을 노출시키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AC 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네윈 정부가 세 차례 화폐개혁을 실시하며 부정축재 재산을 밝히겠다고 공론화 한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 현금부족, 인플레이션 우려, 환율 하락의 세 악재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과거 화폐개혁 악몽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1962년 3월 2일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정부는 정권초기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국제사회와 교류를 단절하고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던 인도인과 중국인의 재산 몰수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산업생산 감소, 실업률 급증, 금융시스템 미비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짐에 따라 1964년 5월 17일 1차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자본가들의 부정축재 재산 색출과 당시 성행하던 암시장 척결을 주장하며, 당시 통용되던 고액권 50쨔트와 100쨔트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고 1주일 이내 1 짜트 신권으로 교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200 짜트 이상의 금액을 신권으로 교환 시에는 자금 출처 소명과 함께 그에 따른 세금도 부과했다. 이러한 화폐개혁은 정부가 표적으로 삼은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중소기업 및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쳤다.
관련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행된 화폐 교환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며 신권 교환 기한이 계속 연장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상 지폐의 78%만 교환되었으며 신권 교환에 실패한 22%의 지폐 소유자들은 대부분 신권 교환 자체가 불가능한 시골 거주 서민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화폐개혁은 부정축재 자산가들의 자산 색출을 목적과 달리 서민들의 피해가 더 컸으며, 사실상 군부 엘리트들과 정권 지지자들을 위한 자금 마련이 주목적이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1차 화폐개혁은 미얀마 화폐 시스템과 짜트화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이때부터 미얀마 국민들은 짜트화보다 금이나 보석 등 실물자산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1985년 11월 3일, 네윈 정부는 예고 없이 당시 고액권이던 25 짜트, 50 짜트, 100 짜트 사용을 금지하고 75 짜트 신권을 발행했다. 1986년에는 15 짜트, 35 짜트 신권도 발행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은 2차 화폐개혁의 목표가 첫째,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한 현금 공급 조절, 둘째, 암시장 척결, 셋째, 부도덕한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 징수라고 밝혔다. 구권 교환 한도를 5,000 짜트로 정하고 교환을 시작하였으나 1964년 1차 화폐개혁 당시와 마찬가지로 교환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1987년 9월 5일 네윈 정부는 불과 2년 전인 1985년 화폐개혁 당시 새로 발행된 25 짜트, 35 짜트, 75 짜트 지폐 사용을 금지하고 1 짜트, 5 짜트, 10 짜트 소액권만 사용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45 짜트와 90 짜트 신권도 발행했다.
발행된 지 2년밖에 안된 신권이 사용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권 교환 시기나 교환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전날까지 시중에서 유통되던 화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45쨔트와 90쨔트 신권 발행이 급증하며, 통화 공급 조절과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화폐개혁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시중에 유통되던 현금의 80%를 차지하던 고액권들을 아무 보상 없이 사용 금지시킴에 따라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 되었다.
세 차례에 걸친 화폐개혁 실패가 8888 항쟁(1988년 8월 8일)의 도화선이 되었고 네윈 정부의 실각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화폐개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서민들이 은행시스템을 여전히 불신하여 은행 계좌 개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얀마 경제성장의 아킬레스 건임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2월 1일 정변 직후 신권 발행 소문이 급속히 확산된 것은 국민들의 이러한 화폐개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고로 현재 통용 중인 지폐 중 1,000쨔트는 1998년 11월, 5,000쨔트는 2009년 10월, 10,000쨔트는 2012년 6월에 발행되었다.
환율 안정을 위해 CBM이 달러를 매각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시장에서는 1993년 당시 정부가 달러 확보를 위해 발행했다가 2014년 4월부터 사용 금지시킨 ‘외환증서(Foreign Exchange Certificate, 이하 FEC)’의 발행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1993년 2월 4일부터 미얀마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FEC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무역과 관광 등 외국과 교류가 증대됨에 따라 외국인들에 대한 별도의 환율을 강제 적용함으로써 외화를 벌어들일 목적으로 발행한 것이다. 속칭 ‘미얀마 달러’로 불렸던 FEC는 1, 5, 10, 20 등 4종이 발행되었고 미얀마 입국 외국인은 300달러를 강제로 FEC로 환전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외국기업과 국제 NGO 등이 납부하는 임대료와 제세 공과금도 FEC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FEC 발행 및 유통을 통해 시장에서 개별적인 달러 환전을 억제하여 환율을 관리하고 무역역조 현상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러와 FEC의 환율이 각기 다르게 적용되며 FEC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고시) 공식환율, 세금부과에 사용되는 공정환율, 시장환율, FEC환율 등 복잡한 환율구조가 외국자본 유치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됨에 따라 FEC 폐지를 비롯한 전반적인 외환관리 체제 개편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부는 외자 유치, 자금운용 및 관리를 위해 2012년 4월 IMF의 지원으로 시장환율제도를 도입했고, 2012년 8월 12일 외환관리법을 제정했다. 2013년 3월 20일 신규 FEC 발행이 중단되었고, 유통 중인 FEC 교환 및 세금 납부 등 특정 목적으로만 2014년 3월 31일까지 사용을 허락하다가 2014년 4월 1일 부로 FEC 전면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자 구소련 및 중국을 비롯한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도 외화 확보를 목적으로 FEC를 발행한 경우가 있다. 구소련은 1961~1991년 동안 FEC를 발행했고, 중국은 1980~1994년 동안 FEC를 발행했다. 북한도 1978년에 FEC를 발행했고 2002년에 중단한 바 있다.
국내 가스 생산량의 80%가 수출되고 원유와 LNG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에너지 산업 여건, 외국 투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형 개발 및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농수산물 위주 수출구조, 관광 산업 육성 필요, 미얀마 경제의 근간이 되는 CMP 산업 육성, 역내 물류 허브로서의 역할 구축 등으로 대변되는 미얀마의 경제 구조는 군사정부하에서도 그 기조가 바뀌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정 산업 분야는 미얀마 국내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근 국가 경제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환 부족과 환율 하락, 현금 부족사태로 인해 시장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군정의 화폐 발행이나 FEC 재도입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안이나 구시대적 정책으로 역행하면 미얀마의 경제구조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대량의 화폐 발행은 군정이 가장 두려워하는 짜트화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실패한 바 있는 FEC를 재도입한다는 것은 외환시장 구조를 2012년 이전으로 회귀시켜 외국인 투자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특한 미얀마 경제구조와 미얀마를 둘러싼 외국과의 통상 관계 그리고 미얀마의 자금줄인 외자 유치를 고려한다면 FEC 재발행이나 대량의 화폐 공급은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설에 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