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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스물셋은 어떤 모습인가요

영화 <청춘스케치> Review.

by 썸연



나의 젊음들이 너무 오래 울진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청춘 스케치>



줄거리:

여자 주인공 레이나는 대학 졸업 후 텍사스의 한 TV 방송국에 입사하여 기자로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세상은 녹록지 않고, 프로그램 관계자와의 갈등으로 실직하며, 한동안 백수가 되어 집 안에서 꼼짝 않고 전화비만 축내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레이나의 친구이자 뮤지션의 꿈을 가진 트로이도 일자리를 잃고, 레이나의 아파트에 함께 머물게 된다. 레이나는 자신의 , 그리고 이 청춘의 시간을 담은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되고, 그러던 중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마이클이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갑작스레 그가 레이나의 삶에 들어오게 되고, 그는 레이나에게 구애한다. 마이클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친구인 트로이는 괜히 레이나의 사랑에 참견하며 마치 남자친구라도 된 마냥 비아냥과 핀잔을 늘어놓곤 한다. 이때부터였을까 보통의 친구라고 불리던 그들의 이름에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수로 입맞춤을 하고는, 괜한 일로 서로 트집을 잡기도 하며 마이클과 레이나가 서로 기싸움을 하는 동안, ​마이클의 도움을 받아 레이나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하며 상영회를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영화는 상업적인 요소와 함께 가공된 채 레이나가 담고자 했던 의도는 전부 삭제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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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심에 빠져 집으로 돌아온 레이나를 위로해 주며 마이클과 레이나는 서로 그간 숨겨두었던 감정과 마주하고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다음 날 아침,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트로이는 레이나를 두고 급히 방을 떠났고, 레이나는 친구 관계가 끊어지는 게 무서워 그간 피해만 왔던 일에 큰 용기를 냈지만, 어젯밤의 일을 그저 가벼운 잠자리라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이는 트로이의 모습에 실망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 둘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을 모진 말로 뱉어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후 트로이는 시카고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삶을 돌아본 그는 마지막으로 레이나에게 진심을 전하기로 한다. 마침 레이나는 친구들에게 트로이의 소식을 듣고는 그를 붙잡으러 달려가고 있었고, 그렇게 다시 조우한 둘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포옹했고,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레이나와 트로이와 함께 그들의 청춘을 함께 밝혀준 두 친구, 빅키와 새미 또한 각자만의 청춘의 시간을 그려나간다. 빅키는 끝끝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가 없는 채로, 그렇게 에이즈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다가 음성 판정 후 마음의 안정을 얻고 새롭게 삶의 의미를 제고해 가는 인물로, 새미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불안정한 세상에 한 걸음을 내딛는 청춘의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의 첫 시작은 90년대의 감성을 설명하는 8mm 캠코더 화질로 레이나가 자신의 졸업식에서 연설문을 잃어버린 채 “그 질문의 답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라며 해맑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의 본 내용이 끝난 후, 크레딧이 롤링되는 동안 마이클의 이름이 제작자로 실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이클이 네 명의 청춘들, 그들이 남긴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쇼로 그려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영화 청춘 스케치 결말은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오프닝과 결말이 유독 독특하게 느껴졌던 점은, 두 장면이 서로 바뀌어서 오프닝이 결말 부분에 들어가고, 결말이 오프닝 부분에 실려도 전혀 위화감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어떤 청춘도 쉬이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그리하여 결국에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언젠간 하나의 스케치가 되어 기록될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오프닝과 크레딧, 그리고 <청춘 스케치>라는 제목에 모두 담아낸 듯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받고 싶었던, 누군가는 나에게 던져줬으면 하고 기다렸던 말, 예고편으로 공개된 그 한 마디가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난 23살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 네가 23살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




TO. 나의 청춘에게


나는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다. 남들은 다 그래도 나는 다른 길을 갈 줄 알았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을 것이며, 시대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들이 원하는 속도에 맞춰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떵떵거렸다. 근데 웬걸. 이런 내가 너무 불안했다. 취업이 고민이라고, 미래가 걱정이라고,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거냐고, 이루지 못한 게, 이뤄내지 못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무섭다고.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내 안의 내가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쓸데없는 일에 불같이 화냈다가, 또 펑펑 울었다가 하는 날들이었다.


담배를 든 오른손을 벌벌 떨며, 부모님에게 죄지은 듯한 표정을 짓는 레이나의 마음을, “내가 스물셋이 될 동안 알아본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하고 부모님께 알리기까지 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해,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연습해 보는 새미의 마음을, 당당함의 근원이었고, 용기의 발원지였던 “내가 좋아하는 일”이, 그게 이상적이라서 좋았던 일이, 진짜 ‘이상’ 일 뿐이란 생각이 자꾸만 끼어들어 무대에서 온 마음과 몸을 바쳐 뛰어놀 수 없는 트로이의 마음까지 <청춘 스케치>에 등장하는 네 친구의 마음 모두, 내 마음이었다.


근데 고작, 이제야 학생 딱지를 떼고, 고작 이제야 스물 하고도 셋인 이들이 얼마나 더, 뭘, 어떻게 대단한 걸 해내야만 할까. 여전히 우린 뭘 해야 하는 모르는 게 맞고, 우린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 고민하는 것이 답이라면 답이지 않을까.

고작 스물셋이 자꾸만 뭘 이뤄내야 하는 현실이, 그리고 청춘의 시절 그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죄절감 가득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아리고 또 아렸다. 이 시절에 우린, 시절을 발판 삼아, 사랑이 뭔지 우정이 뭔지, 이별이 뭔지, 그리고 내가 누군지 공부하기만 해도 충분히 기특한 계절을 지나고 있는 것이며, 그리하여 고민이 길어지더라도, 멈칫할지라도 괜찮은 것이지 않을까.


젊음이 영원할 때, 젊음이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될 때, 그저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면, 그 영원을 아주 기가 막히게, 겁 없이 즐겨보라고. 그것이 청춘스케치의 네 소년과 소녀가 1994년에서 2025년의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지 곱씹어본다.


몸이 건강할 때, 시간이 있을 때, 빚을 내서라도 돈을 축내서라도 여행을 하는 게 옳을 것이라고 자부했던 지난 주이지만, 이번 주는 돈이 없어 울적하고,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하나, 막무가내로 찾아보고 하는 것이. 어느 하나 안정된 것이 없어 사실은 매일 불안하기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린 사실, 또 하나의 세계를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경험에 대한 면역이 그리 충분하지 않으면서도, 왜 자꾸만 실패하지 않으려,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되는 걸까. 그렇게 애쓰는 힘들이 닳고 닳아 주저앉은 어느 날에, 고된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요즘에, 어쩌면 참 필요한 영화였다 싶었다.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어깨를 마는 레이나의 등이, 담배 연기로 대신 쉬는 트로이의 한숨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부서지게 했다. 이 때문에 함께 시대를 이겨내고 있는 젊은 나의 친구들이 더더욱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무지가 당연한 오늘이, 훗날 아주 오래 추억하게 될 소중한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지만, 현재를 달리는 우리에겐 도무지 그 해피엔딩이 예상되질 않기에,

날 둘러싼 세상 밖의 모든 것들이 양날의 검이 되어 애꿎은 나만 자꾸 괴롭히려 하는 청춘이 얄미우면서도

너무 애틋해서. 심장 부근이 저릿했다.


쓸데없는 사랑에 목숨 걸어보고, 그게 쓸 데없다고 느껴지더라도, “그래도 사랑을 하고 살아야만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 또다시 생각하며, 사랑받고, 그 사랑을 말하는 순간에 열심히 임하라고.

그래서 청춘을 돌아봤을 때 남는 게 사랑뿐일지라도, 그게 청춘의 전부가 되어, 삶의 말미,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만약 내가 머리 흰 노인이 되어 지금의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이와 같을 테니, 그날의 머리 흰 노인을 믿고, 그저 앞으로 나아감에 망설이지 않기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아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낭비하고, 또 낭비해도 결국 반드시 남겨지는 반짝거림이 있기에 또 미련하게 낭비하는, 이 한 여름밤 같은 젊음과 청춘을 한 폭의 스케치로 그려낸 영화 <청춘 스케치>.


온통 모르겠다는 말만 늘어놓게 되는 스물셋의 여정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사소한 일에 무너지는 자신이 질리도록 미운 누군가에게, 그리고 청춘의 반짝거림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에게.


뻔한 말이지만, 완연하게 채워진 것이 꼭 최선의 답은 아님을, 여전한 여백이 우리를 청춘으로 이끄는 것임을그들을 향한 이 모든 나의 애정어린 말들을,

영화 <청춘 스케치>로 대신해 전한다.


그리고 여전히 청춘일 이 네 명의 푸른 봄들과 기록된 젊음을, 나는 스물셋에 서서 아주 열렬히 지지하며, 뜨겁게 동경하는 바이다.



거봐, 우린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 너, 나, 그리고 5달러.







사진 출처: <청춘 스케치> 공식 포스터 및 스틸컷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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