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Review.
떨리는 두 손과 마음으로 전했던 진심을 마지막으로 한채, 침묵만이 그 여백을 메웠고, 그 사이 10번의 봄들이 지나갔다.
세미야 하은아
아주 오래, 아주 깊이 사랑해,
사랑할게.
줄거리 :
영화 <너와 나>는 세상과의 이별이 될,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의 ‘하루’, 돌이키고 싶은 그 ‘단 하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해당 영화로 조현철 감독은 제45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부문, 제60회 백상예술대상 GUCCI IMPACT AWARD 영화 부문 수상을 하였다.
영화는 ‘세미’(박혜수)의 꿈으로 시작이 된다. 그 꿈에서는 세미의 절친인 ‘하은’(김시은)이 죽어있었고, 그 꿈이 너무 불길하다는 이유로 다리를 다친 하은을 찾으러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간다. 친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가고 싶은 세미는 어떻게 해서든 하은과 함께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하은도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팔아, 함께 여행에 갈 수 있는 돈과 방법을 마련하고자 한다. 돈을 구하던 와중 사소한 계기로 둘은 크게 다투게 되고, 갑작스레 하은과 연락이 두절된다. 밤이 될 때까지 하은과 연락이 안 되자, 학교 친구들과 세미는 함께 하은을 찾아 나선다. 불안한 마음에 예민해진 친구들은, 평소 세미가 하은에게 이기적으로 굴었으며, 세미는 하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세미에게 화를 낸다. 자신이 하은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면 좋겠고, 어쩌면 하은이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 엇갈리는 자신의 모습에 세미는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된다.
이후 다행히 하은을 금방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던 세미는, 하은을 만나 하은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상대의 마음이 나와 다를까 무서워서 망설였던 시간들을 토로하며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사실 둘은 이미 같은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후 하은이 혼자 남겨진 채, 분향소에 다녀오고, 사고 소식과 함께 우는 모습은 세미가 수학여행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었고, 따뜻했던 순간은 둘의 마지막 추억이 되어버린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과 함께 영화는, 미치게 돌아가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멈추어 버린 그 날에 남겨진 자와, 떠난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굉장히 오랜만에 벅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의 ‘이점’이라고 한다면, 기대하지않았던 순간에 대한 기대를 부여한다는 점,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그 속의 간지러운부분들을 대신 긁어준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열 번의 벚꽃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남겨진 이들은 함께 그들을 그리워하고, 또 각자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며 하늘을 우러러 보았지만, 떠난 이들의 안부는 이곳까지 여전히 전해지지 못하였고, 그래서 해소되지 않았던 그리움이 어딘가에 깊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각색된 이야기로라도 그들의 소식을 전해 받을 수 있어, 깜짝 선물 같은 이 영화의 존재에 새삼감사했다. 쓰이고 미처 전해지지 못했던 그 편지들이 이제야 도착한 느낌이었고, 그 편지의 배달을 맡아준 조현철 감독에게도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영화의 씬 들 속, 숨어있는 신호들.
결국, 우리 곁에 어떤 모습으로 함께 있다는 것 :
사실 나는 영화가 세월호 참사 모티프로 제작되었다는것을 알고 보았다.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란 평이 많았는데, 난 반대였던 것 같다. 오히려 알고 봤기에 더 꼼꼼히, 짙게 기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모든 감동들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도 있다. 영화 속 모든 신호들이 나에겐,
‘나 좀 기억해줘’라는 새들의 부름같이 들렸다.
세미가 지나온 길에 핀 노란색 봄꽃들과,
세미와 하은이 서로를 애타게 찾을 당시의 시각이 2시 37분이었다는 점,
갈 곳을 잃은 진돗개의 모습,
진돗개를 잃어버리고 마치 자식을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울며, 걱정했던 아주머니의 그리움에 찬 말들,
2014년, 그 봄을 형용하는 노래들,
안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없어진 하은을 찾는 친구들,
상복 입은 사람들 뒤로 사라지는 세미,
그리고 마치 조금 더 오래 살아주길, 늦었지만 이렇게도 바라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 길고 긴 실타래 같은 국수를 먹는 수학여행 전날 세미의 모습,
꿈에서 죽어있는 하은의 모습이 내 모습 같기도, 친구들의 모습 같기도, 선생님 같기도, 엄마, 아빠 같기도 했다는 세미의 나직한 말들.
곳곳에 숨어있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말, 장소, 배경은 전부 떠난 이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묶여있었다.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우린 저마다의 물품에 하나씩 노란 리본을 달며 그들을 기렸었지.
2시 37분, 그 넓은 바다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얼마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낸 엄마는, 돌잡이 때 헌 실타래를 놓아 아이가 그렇게 빨리 떠나버린 걸까 싶어, 죄책감으로 매일 밤을 지새웠었지.
그때 그 무해하게 행복하기만 했던 배 안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스승이었고, 엄마였고, 친구였고, 동생이었고, 언니였고, 형이었었지.
그 따뜻한 봄에도 여전히 진도항은 춥디 추운 겨울이랬덨지.
그해 여름, 가뭄에 농사가 망해도, 남은 이들이 얼른 돌아올 수 있게 비가 오지 않길 그토록 바랬었지.
그리고 그 그리움으로 이어진 감정들은 어느새, 2014년의 그때로 나를 데려다 놓았고, 거짓말 같았던 이 모든 현실을 <너와 나>를 통해 이따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시간만 동결되어버린 게 너무 억울해서, 그 하소연이라도 듣고 싶어, 뜨거운 눈물로 시간을 녹여냈던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미에게 너무나도 하고픈 말 :
숨겨왔던 고백을 저지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하은과 세미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갔다 올게!
응, 갔다 와
둘 사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듯한 입맞춤과 함께 세미가 떠난다. 세미는 간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 듯, 몇 번을 되돌아오고, 하은은 행여나 세미가 다시 돌아올까 끝까지 세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세미가 “간다? 나 진짜 간다!” 라고 말하는 장면의 러닝타임이 꽤 길었는데, 아마 이 영화를 남겨진 이들이 보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헤어질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담겼으리라 생각되었다.
해당 장면에서 난 세미에게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소리내어 외치고 싶었다. 남겨진 이들은 얼마나 더 간절하게 말리고 싶었을까. 얼마나 크게 외치고 싶었을까. 세미가 떠나는 길 쪽엔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근조 화환들이 차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길로 간다는 건 곧 세미가 죽음의 길로 떠난다는 뜻이였을테니, 더 간절하게 소리 내어 잡고 싶었다. 하은이는 그날의 세미 뒷모습을 언제까지 기억하게 될까. 잡지 못한 분함과 괴로움, 미안함, 그리고 자꾸만 떠나가는 뒷모습에, 아주 오래, 영영 아픈 장면으로 남게 될 것 같아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래도 세미가 마지막까지 가져간 기억들이, 이루어낸 수줍은 고백과, 수학여행에 대한 설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확인한 입맞춤, 돌아왔을 때 하은이가 해준다는 말이 무엇일지에 대한 기분 좋은 고민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건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꿈속 세미는 그렇게 웃고 있었던 걸까.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세미는 아주 행복한 기억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세미가 우리에게 남겨둔 말 :
극 중 수학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밤, 세미가 키우는 애완 앵무새 ‘조이’에게 ‘사랑해’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더이상은 듣지 못할 세미의 말을 이어주는 매개로서의 앵무새와, 세미가 남겨진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하은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 하은이 하고 싶은 말을 수학여행에서 다녀오면 이야기 해주겠다고 하고, 그 말은 극 중에서 전해지지 않고 마무리가 되는데, 어쩌면 그 말이 ‘사랑해’였고, 앵무새에게 세미가 남긴 말이 전하지 못했던 하은의 사랑한다는 말에 대한 세미의 답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라면 아마 ‘단 한 번만이라도 안아봤으면’, ‘볼 수 있었으면’, ‘말 해봤으면’. 하는 것이 가장 간절한 소원일 것이다. 때문에 세미의 앵무새가 간직하게 된 여러 번의 ‘사랑해’ 라는 말은 남겨진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단 한 번의 목소리였고, 온기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했다는 디테일이, 하나의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가 꽤나 오래 사랑한다는 말을 메아리로 들려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시사한다고 생각된다.
퀴어 소재, 풋사랑, 그리고 청춘의 혼용 :
죽음, 이별, 풋풋한 사랑, 청춘의 소재 결합이 어떻게 이리도 참신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보는 내내 눈물과 함께 감탄을 멈추지 못한 영화였다. 이 하나의 영화만으로 조현철 감독의 행보가 굉장히 기대가 되면서도, 약 120분 가량의 러닝타임에 최대한 자신이 뱉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녹이려 한 것들이 영화 마장센에 톡톡히 드러나 있어, 그 감동이 가슴 속에 더 저릿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마치 그 시절, 여고생이었던 사람처럼 시대상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구현해냈다고 생각된다. 세미와 하은을 비롯한 주변 친구들의 말투, 호흡, 대사들까지 디테일한 부분이 한 두군 데가 아니라서, 마치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고 온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특히나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더불어 퀴어적인 사랑 소재를 결합하여 내용 전반을 ‘독특한 시점’으로 표현해낸 것도 인상 깊게 보았다. 보통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라면 남겨진 유족들의 상황과 입장, 생각 등을 대변하고, 희생자들의 기록, 이야기들을 유족을 통해 전해 듣는 식으로 전개가 진행되기 마련이었는데, <너와 나> 같은 경우는 남겨진 이들만이 아닌, 떠난 이들의 시점에서 느낀 하루와, 남겨진 이들이 감히 예상했던 바와 달리 그들이 느꼈던 편안함,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하는 듯한 시점에 포커싱이 되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제목과 같이, 당시의 참사는 정말 ‘내’가 될 수도 있었고, ‘우리 가족’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계속 기억하고 공유한다면, 같이 숨 쉬고, 같이 눈뜨고, 감고 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음을 전하고자 하는 게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싶다. 나도 인간은 본래 누군가의 기억에 사는 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기억으로 존재가 자꾸만 상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우리는 그들을 마음속에 품고 마치 하나인 것처럼, 절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기도하고, 또 생각해내는 것이다. 너가 나이고, 내가 너인 것처럼. 그냥 그렇게, 서로에게 흡수되어 서로를 안은 채 눈을 뜨는 것이다.
너무 감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모두가 물 흐르듯 이 영화를 받아드렸으면 좋겠다. 세미와 하은이가 그저, 그렇게 오래 웃고 있을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여러분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제 60회 백상예술대상 GUCCI IMPACT AWARD 영화부문 <너와 나> 수상소감 中, 조현철 감독 -
안녕, 갔다 올게
사진 출처: <너와 나> 공식 포스터 및 스틸컷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