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꺼지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리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Review.

by 썸연

홀씨 같은 사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줄거리 :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는 여자 주인공 ‘마고’ (미셸 윌리엄스)는 업무차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한 남성과 조우한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두렵다는 마고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동감을 하는 그의 이름은 ‘대니얼’(루크 커비). 둘은 우연치 않게도 같은 동네에, 바로 앞집에 살고 있었고,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동승하게 된다. 그 짧은 찰나에 둘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강력한 끌림을 느끼게 되고, 이상한 기류를 알아챈 마고는 대니얼과 헤어지기 전,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성급히 밝히곤 인사하며 떠난다. 마고는 결혼 5년 차. 늘 유쾌한 남편과 여전히 사랑 중이고, 겉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필요로 하고, 남편인 루(세스 로건)는 시간이 흐른 만큼 뜨거운 사랑보단, 잔잔하고도 편안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바라는 바와 다른 루의 모습에 마고의 서운함과 외로운 감정은 쌓여만 가고, 강렬했던 인상을 준 대니얼을 자꾸만 의식하고, 찾게 된다.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


마고의 남편 루는 다정하고, 유쾌하고, 진정으로 마고를 사랑해주는 좋은 남자다. 그렇기에 마고는 자꾸만 대니얼에게 뛰는 심장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마고를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부터 마고의 생각과 마음이 당연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안정적이고, 그 사랑이 착한 사랑이라고 해서 과연 사랑에 유통기한이 없을까? 인간은 교묘하게 삶의 어느 부분에서나 간사함을가지고 있고, 그 간사함의 형태는 사랑과 마주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익숙하고 편안함 마저 받아들일 만큼 상대를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원한 사랑이 중간에 가다 끊기게 되는 이유는, 간사스럽게 이전처럼 불타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단, 한 번의 한숨이 쌓여, 만들어진 백번의 한숨이 데미지가 되고, 이 정도면 적당히 서로에게 맞춰진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쌍방의 동일한 생각이 아닌, 일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마고만 이 사랑에서 이기적이었을까. 남편 ‘루’ 도 어찌 보면 그만큼 같이 붙어있던 시간이 있고, 일상을 공유하며 같이 살아왔으니 마고에 대해 다 안다고 넘겨짚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특별히 마고를 알아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지붕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나의 모든 시간을 빼곡히 궁금해했었던 그가, 이제 더 이상은 나의 ‘오늘’조차 궁금해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전까지는 마고가 가진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과하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을테지만, 결혼기념일 식사 자리에서 루와 마고가 나눈, 아니 사소한 대화조차 특별히 나누지 않는 그 모습에서 둘의 사랑의 모양이, 많이 엇나가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새로운 사랑, 사람 :


영화의 후반부에선 마고와 대니얼이 매일같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며, 감각적인 사랑의 본능에 충실한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 36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 포커싱이 마치 사랑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듯하여, 둘의 관계성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포인트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몇 차례 씬이 이어지다가 이 둘이 사랑을 나누던 침대 자리엔 쇼파와 텔레비전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둘의 위치는 침대가 아닌 소파로 옮겨졌다. 소파에서 둘은 조금은 권태로운듯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사랑한다는 마고의 말에, 대니얼은 조금 더딘 속도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이 장면은 ‘루’와의 결혼 생활에서 보여진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몸은 아주 가까이 밀착되어있지만, 뭔지 모르게 평안함에 이르렀다기보단, 엄습해올 무료함과 권태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는 표정 같았달까.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변했기 때문에, 그래도 마고가 어느 정도 새로운 사랑 안에서의 행복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동치는 놀이기구? :


중간중간 마고가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이 보여진다. 밝고 경쾌하고 역동적인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 마고는 때로 어색해했고, 그녀에게서 나오는 은근한 불안감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움직임에 적응하며, 드디어 스스로를 놓고, 신나게 몸을 맡겨 보려는 순간, 놀이기구 운행이 끝나며, 산통을 깬다. 이 장면은 깊은 감정에 도달하려다가 갑자기 김이 확 빠진 느낌이 들어 괜히 찝찝함이 길게 남았던 부분이다.

대니얼과의 사랑에서도 결국 권태를 느끼며, 루와 진정한 마지막 인사를 한 그녀는 마지막 즈음, 다시 또, 놀이기구를 타러 가고, 이 장면에서 마고는 홀로 놀이기구에 탑승한다. 함께 자리에 앉았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어서였을까. 처음엔 이상한 듯 연신 무표정을 하고 있던 그녀가, 점차 시간이 흐른 후엔 편안한듯 자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이 놀이기구의 모습이 우리가 사랑에 빠진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껴졌다. 주위에선 요란하고 또, 소란스럽게, 뜨겁게, 흥분되는 사랑을 하고 있고, 물론 나도 그 안에 충분히 속해 있지만, 왜인지 모를 어색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함과 함께, 그 안에 내가 직접 속했을 때 느껴지는 이상과의 괴리감. 그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인 사랑의 과정을 놀이기구의 움직임에 투영하여 보인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사랑의 감정도 한순간의 ’발화‘라는 거다. 마고의 표정에도 깨달음에서 비롯된 안정이 드리워진 것이 아닐까.


사랑과 닮은 왈츠 :


놀이기구와 마찬가지로, 서로의 사랑을 느끼는 씬들에 삽입되는 음악들이 변하는 사랑의 형태를 부연 설명하는 데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대니얼과의 사랑에 대한 서사가 진행되면서 한없이 경쾌하고 웅장한 리듬의 왈츠가 깔린다. 그 공간에서의 씬들이 끝나고 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래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데, 마치 뮤지컬을 보고 있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 고요함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또한, 사랑에 취해있을 땐 모르지만, 결국 잔잔함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사랑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지.


그래서, 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


사랑을 열병같이 앓아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크게 앓고 나면, 왜인지 모르게 개운해지는 그 기분을 다들 알지 모르겠다. 사랑도, 결국엔 뜨거웠다, 식었다, 그 과정에서 개운했다가, 찝찝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잊혀지기 마련이다. 경쾌함에 빠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왈츠의 춤사위도 언젠가 막을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여전히 돌아보지 않는 그의 뒷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고, 그 순간의 서운함을 확신으로 결론 짓지 말고, 이 사랑이 만들어진 과정을 천천히 음미해보길. 그리고 비록 ‘사랑이란 무엇일까?’ 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을지라도 이 질문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단숨에 꺼지는 결말이 아닌, 지켜가는 과정을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진 출처: <우리도 사랑일까> 공식 포스터 및 스틸컷 사용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도시에선 우리가 맘 놓고 사랑할 수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