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싸움에서 졌다.

by 유쾌한 주부저씨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감기기운이 살짝 있다.

잠이 들면서 예상했던 일이다.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자면...


신랑이 구렁이처럼 나를 칭칭 감고 있던 이불을

슥-걷어내고는,

둘째 아이방에 나뒹굴고 있던

이불인지 담요인지 애매한

그물같은 그것(?)을

자상하게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본인 이불과 내 이불을 챙겨

코인세탁방에 가서 이불세탁을 하고 왔다.


주부인 내가 할 일을 이런 식으로

신랑이 해줄 땐 어찌나 고마운지...

그러다 밤늦게까지 술 퍼먹고 올 땐

어찌나 미운지...


결혼 생활은 항상 이렇게

감정이 시소 타듯.. 왔다 갔다 한다.


그날은 자상한 신랑의 날이었는지

혼자서 그 많은 이불을 세탁 건조까지

해두고는 자기 이불은 본인 매트 위에

정갈하게 깔아놓구선,

나 보고는 둘째 아이방에서

가져온 그물 같은 이불을 계속 덮으라고 했다.


깨끗이 빨아둔 이불을 다시 돌려주기엔

아깝다며 장롱 안에 고이 모셔놨다.

이 무슨 개 같은 논리이지???

신랑 논리로는 지금 내가 덮고 있는

그 그물 같은 이불도 곧 세탁해야 하니

새 이불 덮기 전에 덮고 있다가

아이들 이불과 함께 같이 세탁하자는..

먼.. 이상한 논리로다가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지금이야.. 내가 지금.. 살짝 열이 올라왔지만

사실 그 당시 신랑이 말할 때

"아~~ 그래~그러자~"라고 순순히 응했던

순진한 나였다..


코를 골며 자는 신랑을 옆에 두고

나도 잠을 청하며 잠이 오려던 참이었는데,

솔솔 찬바람이 들어온다

분명 단열 잘된 집으로 이사 와서

외풍이란 게 없을 것인데!

싸한~바람이 내 몸 구석구석을 핥는다


이놈의 이불이 문제구만!!

손뜨개질로 만든 이불이라

손가락이며 발가락이며

자꾸만 빠져나온다.


그 사이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하아~

잠이 올랑말랑 하는데 굳이 일어나서

세탁한 이불을 꺼내?

그냥 자?

일어나면 잠이 깰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든지 일어나지 않고

삐대보려는 마음으로 이리 덮었다가

저리 덮었다가 발가락 삐져나오고

발가락 다시 빼고,

혼자 누워서 난리도 아니다.


끝내는 이불을 한번 접었다

오호~난 센스쟁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바람이 덜 들어온다

헌데...

내 몸통이 이리 컸나?


여유가 없다.이불이

살짝 모자란다.이불이.

차렷자세로 누웠을 때.

듬직한 어깨를 덮기엔

넓이가 살짝 짧았다.


옆으로 돌아누우면 이불이 떠서

바람이 훅!하고 옆구리를 친다.


순간 든 생각

살 빼자.. 살 빼야 한다.. 주문외우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감기기운으로

굿모닝을 맞이하였다.


어머낫.. 이게 무슨 일이람

먼저 일어나신 자상한 신랑분께서

보일러를 틀어놓고 있으셨다.


그러니깐 나는

보일러도 돌지 않는 방에서

구멍 숭숭 뚫린 이불을 덮고

자고 일어난 셈이다.


신랑이 싸함을 느끼고

뒤늦게 보일러를 돌려놨으나


늦었다..

이미 감기기운이 온몸을 돌고 있다.


이제 며칠 동안은 신랑 탓을 하면서

부엌에서 한 발짝 물러나면

될 것 같다.


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