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놀래키다 생명 단축함

by 유쾌한 주부저씨

신랑과 나는 티키타카가 잘 맞는 편이다.
서로 장난도 잘 치고, 가끔은 티격태격,
아주 가끔은 가볍게 몸싸움(?)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나는 옆구리를 찌르거나
장난이라도 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신랑은 아직까지도 그 버릇을 못 고쳤다는 점이다.


특히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힘 조절을 못 하고 몸으로 밀어내거나

가볍게 손가락으로 찌르는데,

그게 또 은근히 아파서
몇 분 동안이나 아픈 곳을

손으로 문지르며 진정시켜야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신랑은 또 무지 재밌어한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

복수를 해야 한다.


신랑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다.
귀신 무서워하기.


공포영화도 못 보고,
귀신 이야기도 질색이고,
스산한 분위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밖에서 일 보고 집에 들어오니 조용했다.
아이들은 아직 하교 전,
신랑은 이미 퇴근해서
안방 화장실에서 뽀득뽀득 씻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놀래켜볼까?’


오늘이 그날인 것 같았다.
복수의 날.


헌데…
한 대 더 맞을 각이 서는 것 같기도 했다.
(나 변태인가? 맞을 생각부터 하다니!!)


마침 네일도 빨간색으로 새로 했겠다.
딱 놀래키기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


안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
바깥소리가 전혀 안 들리니
신랑은 내가 온 줄도 모를 터였다.


물소리를 들어보니
대충 마무리 단계인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드레스룸에 들어가
신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깜깜한 방에서
신랑이 놀랄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귀신처럼 키득키득 웃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보통 미친 게 아니다. 하하하.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 거야?


샤워기 물소리는 진즉에 멈췄는데
나올 기미가 없다.
혼자 무슨 꽃단장을 하는 건지…


슬슬
깜깜한 드레스룸이
나도 좀 소름 돋기 시작했다. ㅋㅋ


드디어
안방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화장대에 앉는 신랑의 기척.


오예.
드디어 개시다.


화장대 옆이 바로 드레스룸이다.
우리 집 드레스룸 문은 하얀색.


나는 인기척 없이
빨간 네일을 한 손가락 네 개를
문틈 사이로 슬쩍 내밀어
살짝 문을 열었다.


신랑 입장에서는
화장대에 앉아 있다가
하얀 손, 빨간 네일을 한 손가락 네 개가
문틈에서 나와 문을 여는 장면을 본 셈이다.


허어어억—


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는
불쌍한 신랑.


그 이상한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더 놀래켜줄 심산으로
“허익—!”
하며 튀어나갔다.


(도를 넘은 행동이었다. 쯔쯔쯔)


머리를 빗고 있던 신랑은
봉변을 당했다.


그리고 찰나였지만

신랑눈에서 빨간 레이저가. 나에게 발사??


손에 쥐고 있던 나무 빗으로
두더지 게임에 나오는 두더지처럼

나의 머리를 두들겼다

뿅망치가 아니라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나무 빗이었는데

전생에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만난 사람처럼 내 머리에 내리치는

빗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심 머리 반으로 쪼개지는 줄...


맞으면서도 웃으며

난 또 이렇게

생명 단축의 모험을 즐기고 있다.


누가 보면 나잇값 못하고 철딱서니 없는

장난질에다..

특히나 놀래키는걸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상상만 해도 짜증 날 만한 사건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