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자물쇠처럼 잠겨있던 엄마의 입에서
아빠에 대해.. 엄마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나의 부모님은 그냥..
군더더기 없이
나의 엄마와 아빠였다.ㅋㅋ
이 말인즉슨
그냥 평범하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모님이셨다.
부모님께서는 과거사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고
어린 내가 부모님 과거사가
궁금할 일도 없었다.
그전엔 도란도란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고 이제야 엄마를 옆에서
보살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서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가 입 터진 아이처럼
과거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신처럼
머리가 새하얀 중년의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듯..
엄마 과거이야기,
아빠 과거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가장 쇼킹했던 건..
그 시대 아빠의 정관수술과
(나 낳고 바로 정관수술 했다는 아부지!
신랑은 아직도 하네마네 이러는데..)
외할머니댁의 부유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이 말씀은 하셨다.
엄마 처녀 때까지 잘 사셨다고..
그러다.
흔한 스토리가 나온다.
하필 엄마 시집갈 나이 때쯤
외갓집의 보증문제로 인한 집안기울임..
그리고 가난의 시작..
시집을 왔는데 이곳도 만만치 않은 곳..
그리고 엄마의 고생이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내 머릿속엔
한때 잘 살았다던 외갓집.
이렇게만 기억에 남겨놨던 것 같았다.
헌데
보증사건 이전의
과거사를 듣고 난 후..
출생의 큰 비밀을 안거처럼..
그 후유증이 컸다.
요약을 해보자면
엄마의 외갓집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라고 하셨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데릴사위처럼
장가 오신 거였다고 했다
엄마는
보리밥을 시집와서 처음 맛보았다고 하신다
허억...
그것도 없어서 못 먹었다니..
그간 엄마의 고생이 눈에 훤하다.
엄만 모직코트도 입어보셨다고 했다.
엄마의 외할아버지께서(나에겐 증조할아버지)
첫 손주라고 엄청 이뻐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옷도 잘 사주시고
항상 수를 놓고 사셨다고 했다.
세상에..
엄만 시집오기 전까지
사극 드라마 여주인공
놀이를 하고 계셨던 거다.
그런 분이 시집와서 처음 농사일을 돕고
밭일을 돕고
그걸 못한다고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
하아.. 알고 나니.. 엄마가 너무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엄마 왜 도망 안 갔어? 힘들었을 거 아냐!!"
엄마는 담담히 대답을 하셨다.
"바로 언니가 들어섰고 너희 할머니 말고는
다들 좋으신 분들이라서 참았지..
아빠도 좋으셨고~"
같은 여자로서..
가여웠고 대단하고 맘이 아렸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보름달 같이 통통했던
20대의 처녀의 얼굴은 없어지고
이젠 백발이 되어버린 흰머리,
주름진 얼굴,
몇 개 안 남은 치아.
할머니가 되어버린 나의 엄마..
얼마나 친정이 그리웠을까..
배고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없는 집으로 시집와서 시부모 공경하고
고지식한 남편말 들으며
아이들 키우고..
아빠 눈치도 보이고 그래서
엄만 절대 우리 어렸을 때도
저렇게 자세히 친정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쌀밥 이야기며 모직코트 이야기를 해주셨다.
항상 없이 살던 우리 친정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반전의 영화 한 편이었다.
난 그동안 부모님 삶에 대해 너무
단편영화로 봐왔던 것 같다.
이리 긴 장편영화인 데다
서사가 있는 반전 영화였는데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해서
내 부모님도 평범한 부모님이었다고
치부했던 나의 편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