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2

축출당한 아들의 편지

by Oscar Jung

아버지, 어머니. 이건 정말 너무하신다 생각합니다.

저는 당연히 두 분 사이에 ‘극적 타결’이 이루어진 줄로만 알았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집으로 들어가도 저와 제 기타가 안전하겠습니까?”라고 여쭈었을 때, “사내자식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시며 흔쾌히 용서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마음 푹 놓고, 호기롭게 대문 초인종을 눌렀지요. 스피커 저편에서 들려오는 “누구세요?”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당당하게 “이 집 아들이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집안에 아들 없습니다.”라는 냉정한 한마디와 함께 ‘딸깍—’ 하고 끊으셨죠.

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분명 아버지는 모든 걸 다 용서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버지는 엄마와 저의 ‘안전한 컴백홈’에 대하여 전혀 협의를 안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 부부지간에 아들의 안위 같은 중대사를 협의도 안 보시고 그 며칠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신 겁니까? 혹시 저와 통화할 때 이미 약주를 거하게 드셨던 건 아닌지요? 아니면 그사이 엄마가 우리 집안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셨거나, 혹시 저 모르게 이사를 가시고 아들 없는 딩크족 부부가 새로 이사를 온 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우정의 무대>에 나오는 군인들처럼 목놓아 외칠 수 있습니다. “집 안에 계신 분은 저희 어머님이 확실합니다!”라고요.


아버지, 그리고 엄마. 저는 다시 떠납니다. 이번은 가출이 아닙니다. 저는 분명 아버지의 하해와 같은 용서에 감동하여 귀가하였으나, 엄마가 저를 막으신 겁니다. 이건 ‘축출’입니다. 떠나기 전, 할 말은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참, 제가 뒷 담장을 넘어 뒷마당 감나무 옆에 제 기타를 세워 놓았습니다. 가출 여행(?)이 길어지니 기타까지 들고 다니기는 좀 버겁네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한파로 인해 제 기타의 ‘컨디션’이 심히 우려되오니, 제 방 구석에 비스듬히 잘 모셔놔 주세요. 기타는 온습도 관리가 생명인 거 아시죠? 방 보일러는 살짝만 가동해 주시고, 온도는 약 22~23도 정도로 유지해 주세요. 너무 건조하면 나무가 갈라지니 매일 물에 적신 수건을 방바닥에 깔아 습도 조절도 부탁드립니다.


엄마~ 그리고 죄송해요. 반지는 부득이하게 팔았습니다. 최대한 안 팔고 버티려 했으나, 서울 물가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친구들에게 매번 얻어먹기도 좀 그렇고... 그 녀석들도 저처럼 가출한 놈들이라 사정이 빤하거든요. 다들 무슨 놈의 사연들이 그리 많은지, 듣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답니다. (헤헤헤.) 이게 다 아버지가 저 꼴 보기 싫다고 고등학교 입학식 날, 저를 기숙사에 집어넣어서 생긴 불상사 아니겠습니까? 유유상종이라고, 거기서 만난 놈들이 다 그렇습니다.

방학이라 친구들이 다들 본가로 돌아가서 서울이며 경기 일대며 갈 곳이 많아 참 좋네요. 이미 위쪽(수도권)에서 한바탕 휘젓고 놀았으니, 이번엔 ‘남도 유람’이나 떠나볼까 합니다. 기숙사 동기 중에 남도 녀석들이 개학 전에 내려오라고 아주 난리거든요. 아래쪽 물도 한번 흐려줘야죠. 헤헤헤.


엄마~ 금목걸이는 한 돈씩 잘라 팔아서 버텨보겠습니다. 한꺼번에 팔았다간 제 씀씀이가 감당 안 되게 커질 것 같아서요. 뭐, 엄마가 계속 저를 받아주지 않으시면 한 돈씩 야금야금 잘려 나갈 테고, 엄마의 목걸이 길이는 점점 짧아지겠죠? 최소한 목걸이가 팔찌 길이로 줄어드는 참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기숙사 재입소 신청도 해야 하고, 봄방학 전에 학교도 가 봐야 하는데... 가뜩이나 위태로운 출석 일수와 생활기록부가 아주 너덜너덜해지면 아들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엄마~ 만약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엄마는 할머니께 혼꾸멍이 나셨을 겁니다. 할머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이야 옥이야’ 하는 사랑스러운 손자를 문전박대를 하시다니요?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지나가는 걸인에게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법도이거늘, 어찌 남도 아닌 친아들을 내치십니까.


아버지도 그래요. 실망입니다! 제가 분명 금목걸이와 금반지에 상응하는 걸 사드리라고 코치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갑 사정이 안 좋으시면 사랑으로라도 엄마를 위로하고 설득하셨어야죠! 가장으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하셨던 겁니다.

아무튼 저는 남도 유람 좀 즐기다가 개학 전에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두 분이서 머리를 맞대고 협의 좀 확실히 해두세요. 아들이 돌아오는 날엔, 따뜻하고 훈훈한 온기 가득한 분위기로 저를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제 기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저는 전주역 사거리에 유명한 콩나물 해장국집이 있어 거기서 뜨끈하게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목포로 갑니다. 함께 사신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의견이 안 맞아서야... 앞으로 남은 긴~ 세월을 어찌하시려고 그럽니까? 두 분, 행복하세요. 남도에 가서 동백꽃 소식이나 한 자락 전하겠습니다.


- 불충한 아들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