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 군산에 오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불행히도 저에게는 졸업식 사진이 초등학교 때 사진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전날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졸업식 리허설 정도 될까요?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다고 학생들을 강당에 다 모아놓고 식순을 맞춰보는데,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분위기는 사뭇 엄숙하고 슬펐으나, 왠지 저는 싫어하는 음악 선생님을 이제 안 본다는 기쁨에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양옆을 바라보는데, 오른편의 종석이는 넋 나간 휑한 눈빛으로 립싱크만 하고 있었고, 왼편의 인범이는 안경 너머로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금세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더군요.
난 이 상황이 너무 웃겼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인범이에게 살짝 물어봤습니다. “야, 인범아. 너 진짜 슬퍼서 이러는 거냐? 너 미친 거 아냐?”
눈만 뜨면 매일 보는 옆집 종석이,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앞으로 최소 3년은 더 매일 볼 인범이 사이에서 “작별이란 웬 말인가”를 부른다는 게 너무 코믹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웃음보가 터져버렸고, 그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담임쌤의 손에 제 귀떼기가 잡혀 강당 밖으로 끌려나왔습니다. 담임쌤이 “너 미친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지나가던 교장 선생님이 우리 담임쌤을 불렀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서 잽싸게 학교 담장을 넘어 도망을 쳤습니다. 학교 주변이 온통 논바닥이던 시절이라 좁은 농로로 도망을 치는데, 담임쌤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울 같은 농수로를 건너는 다리까지 가기 전에 잡힐 것 같아서, 개울을 폴짝! 뛰어 건넜는데 착지 순간에 발목이 접질려 그만 뛰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담임쌤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저를 부축해서 학교로, 학교에서 다시 담임쌤 자전거 뒷자리에 저를 태우고 시내 병원까지 가서 깁스를 시키고, 목발까지 짚게 한 뒤 집으로 데려다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안 분위기는 시베리아보다 냉랭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졸업식 사진발을 위해 머리를 다듬으시고 행사용 양복을 잘 다려 놓으신 아부지, 미장원 예약과 평소 안 입던 예쁜 옷을 준비하신 엄마는 졸업식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계셨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갈 즈음, 옆집 종석이가 나 대신 받은 졸업장과 상장(?), 그리고 친구들의 위로의 꽃다발 몇 개를 들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눈치 없는 저는 엄마에게 말했죠. “그래도 졸업식인데 짜장면하고 탕수육 정도는 시켜 줘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아부지께서는 졸업식 때 입으려던 양복을 챙겨 입으시고, 엄마에게도 옷 입으라고 하시고는 여동생들만 데리고 군산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 ‘빈해원’으로 가버리셨습니다. 나가시면서 딱 한 마디 남기셨죠. “너는 짜파게티나 끓여 먹어.”
저는 종석이랑 둘이서 짜파게티를 4개나 끓여 먹었습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명절이면 만나는 종석이는 그때 먹었던 짜파게티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짜파게티였다는 미친 소리를 하곤 합니다.
며칠 후 고등학교 입학식장, 행사가 끝나고 반 배정을 받기 전에, 아부지와 엄마가 오셔서 엄마에게 잠깐 다가갔습니다.
“엄마, 나 깁스해서 목발 짚고 버스 못 타니까 택시비 좀 줘~”
그때 엄마가 제 옷가지와 물품이 빵빵하게 든 배낭을 제 앞에 쿵,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 오늘부터 기숙사에 들어갔다. 집에 올 필요 없다. 아부지가 너 꼴 보기도 싫다신다.”
“What????”
그렇게 아버지의 기습 공격에 저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강제로 기숙사에 유배되어,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복수였을까요. 고등학교 졸업식 직전에 저는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3년이 걸렸네요.) 대학교 졸업식도 취업하기 전에 여행(가출?)을 간다고 안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졸업식’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입니다. 대화 중에 졸업식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아부지가 말없이 소주를 찾으시거든요.
그러고 보면 “모든 어른들은 언젠가 웃으며 끌려 나오던 학생이었다” 라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다음 주에는 그날 눈시울 붉어졌던 인범이 내외가 인천에 놀러 온다네요. 그 당시 진짜로 슬펐는지 다시 물어봐야겠습니다. 근데, 기억이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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