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속도, 그리고 예의>
지나친 관심은 사양하고, 적당한 무관심을 권장하는 ‘눈부심 방지 위원회’ 협찬, 새벽 2시 심야 마음 교통정보입니다.
깊은 밤, 가로등 하나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고, 들리는 건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와 제 숨소리뿐이네요. 오롯이 나만의 속도에 집중할 수 있는, 제가 참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 고요한 평화를 깨뜨리는 불청객이 나타납니다. 반대편 차선에서, 혹은 제 뒤에서, 있는 힘껏 상향등(High Beam)을 켜고 달려드는 차들 말입니다.
“아, 눈부셔! 진짜 매너 없네.”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눈을 질끈 감게 됩니다. 그 강력한 빛은 시야를 밝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앞을 하얗게 지워버리니까요.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고, 운전자를 위협합니다.
그런데 도로 위에서만 상향등이 켜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도로 위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하이빔을 쏘아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그 주식은 지금 팔아야지, 안 그래?”, “애들 교육은 그렇게 시키면 안 돼. 내 말 들어.”
그들은 그것을 ‘조언’이나 ‘관심’이라고 부릅니다. 캄캄한 네 앞길이 걱정되어서, 내가 먼저 가본 길이니까 훤히 비춰주겠노라고 말이죠. 하지만 정작 그 빛을 정면으로 맞는 운전자는 눈이 멀 것 같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내가 가려던 차선이 어디였는지, 내 내비게이션이 뭐라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문득, 룸미러를 보며 저 자신에게도 물어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하이빔을 쏜 적이 없었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걱정된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혹은 후배에게 내 기준의 정답을 강요하며 눈부시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로, 그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기회를 그 강렬한 빛으로 지워버린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 라이트를 가장 밝게 켜서 상대의 앞길을 휘저어 놓는 게 아닐 겁니다. 오히려 반대편에서 차가 올 때, 혹은 누군가의 뒤를 따를 때, 조용히 하향등(Low Beam)으로 낮춰주는 것. 상대가 자신의 눈으로 길을 볼 수 있게, 눈부시지 않게 기다려주는 것. 그 ‘어두움의 배려’가 진짜 사랑 아닐까요?
지금 누군가의 인생에 하이빔을 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스위치를 조금만 내려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동공 크기에 맞춰, 자신만의 빛으로 길을 찾을 능력이 있으니까요.
이 새벽, 서로의 눈을 지켜주는 배려 깊은 운전자들을 위해 침묵의 소리가 주는 평화를 노래합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 띄워드립니다.
오늘 밤은 부디, 눈부심 없이 편안한 시야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눈부심 방지 위원회’ 협찬, HBS 57분 마음 교통정보였습니다.
[잠깐만, HBS 공익광고]
"자존심은 택배로 반품 보내시고 사랑은 퀵서비스로 받으세요."
재고 따지다가 유통기한 다 지나갑니다. 지금 바로 전화하세요. "자니?"라고 묻기엔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
- 망설임 방지 위원회, [사랑은 타이밍] 캠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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