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열번째

인생은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by 이민행

1. 역경을 이겨내는 바람직한 방법


농구만화를 대표하는 다케이코 이노우에의 명작 '슬램덩크'에는 수많은 명장면들이 있습니다. 그 중 이야기의 막바지에 서태웅이 산왕공고의 정우성에게 1:1 실력으로 무참히 깨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수 위의 실력 앞에서 수없이 패배하지만 그럼에도 정우성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교 농구 최고 실력자 정우성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도 웃으며 투지를 불태우죠.


인생은 여행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수많은 상수와 변수들 사이에서도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미지의 길입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죠. 오늘 소개해 드릴 명언은 삶에서 역경이 닥쳤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멋진 말입니다.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Life no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 영국작가 비비언 그린


비비언그린(vivien Greene, 1904~2003)은 인형의 집을 수집 연구하여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런던의 집이 폭격을 맞은 후 옥스퍼드로 가족과 함께 피란하게 된 그녀는, 우연히 접한 인형의 집에 매료되어 수집을 시작합니다. 이후 영국과 전 세계의 다양한 인형의 집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이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했고, 인형의 집을 통한 문화사 연구에 선구자가 되었죠.

남편과 결별, 전쟁으로 인한 피란,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어려운 외부 환경속에서도 자신만의 일에 몰두해 발전해 나아갔던 그녀의 인생이 그녀가 말한 빗속에서 춤을 추는 법을 배워나갔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비바람속에 삶의 여유


북송시대의 문장가,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소식(蘇軾, 1037~1101), 자는 자장(子瞻), 호는 동파(東坡), 흔히 소동파(蘇東坡)로 불리는 그는 당송 8대가(八大家) 중 한 사람으로, 사람들은 그를 ‘시의 신(詩神)’이라 불렀습니다. 시·서·화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진정한 천재 예술가였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시작하지만, 왕안석이 주창한 신법을 반대하는 구법당의 일원으로써 당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결과 66세로 사망하기 까지 황주(호북성), 혜주(광동성), 해남도로 유배와 복귀를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갖은 정치적 핍박 속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유배와 지방관 생활로 보냈지만, 그는 원망과 비탄에 잠기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가 남긴 시 중 정풍파(定風波)는 그의 이러한 인생관이 잘 담겨 있습니다.


"莫聽穿林打葉聲(막청천림타엽성),

숲을 뚫고 이파리 때리는 빗소리 듣지를 마오

何妨吟嘯且徐行(하방음소차서행),

시 읊조리며 서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소

竹杖亡鞋輕勝馬(중장망혜경승마),

죽장에 짚신신고 걷는게 명마탄 것보다 훨씬 좋으니

守坡, 一蓑煙雨任平生(수파 일사연우임평생),

뭘 두려워하랴?

안개비 속에 도롱이를 걸치고 평생을 맡기리.."

— 소식(蘇軾), 정풍파(定風波)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삶의 순간을 살아냈던 대시인의 여유가 인상적입니다.


3.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운명애(運命愛)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그가 다른 것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전부 영원히. 필연적인 것은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며, 감추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세명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칼 마르크스, 그리고 기존 도덕체계와 가치관을 비판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그들이죠.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인 니체는 그의 저서이자 철학적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아모르 파티, 즉 운명애(運命愛)를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이 허무와 권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성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능은 앞으로 마주할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삶과 경험을 통해 천천히 성숙하며, 의지는 의식의 깊은 곳에서 자라나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과제와 사명’을 요구하죠. 이 과제와 사명, 즉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생에서 낮설고 가혹한 문제를 직면했을 때, 삶을 긍정하고 스스로를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하였습니다.


4. 과학에서 말하는 역경을 이겨내는 법


지금이야 누구나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동설(태양중심설)이지만, 과거에는 천동설(지구중심설)이 학계와 종교계의 주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이래로 오랫동안 우주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관점이었던 천동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인물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입니다.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했던 그는 목성과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제기했던 지동설을 증명하게 됩니다.

천동설을 교리로 삼았던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했고, 이단으로 규정하여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유죄판결을 받고 가택 연금생활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되는 불행을 겪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E pur si muove.)"

— 갈릴레오 갈릴레이


가택연금이라는 시련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갈릴레오는 연구와 저술활동을 끝까지 이어갔습니다. 진자의 주기, 낙하하는 물체의 가속도, 관성의 법칙 등을 연구하여 뉴턴의 운동 법칙과 근대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됩니다.


5. 문학 속에서 말하는 폭풍 속의 춤


"외적으로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 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그리스의 대문호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가 발표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자유와 삶을 노래한 20세기 문학의 걸작입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나’(작가)는 책과 사상 속에 갇혀 있던 지식인으로, 삶을 변화시키고자 크레타 섬으로 떠나 석탄 광산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시작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이 바로 조르바죠. 조르바는 세상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순간을 살아내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노래하고 춤추며, 사랑하며,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는 인간이었습니다. 광산 사업은 실패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지만, 조르바는 모래사장에서 춤을 추며 “이게 인생이야!”라고 외칩니다.


자기만의 춤을 추면 됩니다.


20대 때 언젠가 우산이 없어 비를 흠뻑 맞게 된 날이었습니다. 신발과 옷이 젖을 까봐 전전긍긍하며 놓지 못했던 마음이 어차피 젖게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포기하고 내려놓는 순간, 그렇게 편할 수 가 없었습니다. 일부러 웅덩이를 밟아 보기도 하고,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히 머리속에 남아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걸 우리는 흔히 운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운명 속에서 삶을 선택하는 건 결국 자기자신이죠.

인생에서 시련과 역경은 항상 있습니다. 때로는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게, 그리고 오래 지속되기도 하죠. 그렇지만 앞에서 소개해드렸던 많은 역사속 인물들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겁니다.

멋진 춤이든 막춤이든 일단 움직이는 겁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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