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늘 친절하라.
요즘은 아이들이 참 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령화와 더불어 출산율이 역대 최저가 됬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일할 수 있는 인구의 수가 줄어든다, 국민연금이 고갈된다 등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들이 들려오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이나 개인으로서 자유의 제약,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 여기에 어디서 살아야 하느냐는 주겨환경도 중요한 이슈들이죠.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 십분 공감하는 부분들입니다.
지금은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지만, 처음 태어나 기를 때가 문득 생각이 납니다. 돌을 넘기기 전에 아이들은 자주 웁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힘든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우는 것 뿐이죠. 세상이라는 낯선 곳에 나와 매 순간, 살이 오르고 뼈가 커지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아기들이기에 낯설고 불편한 것은 당연할 겁니다. 성장이라는 제 나름대로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그런 존재들입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에 이르기 까지 어쩌면 우리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존재이죠.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끝에서 사람에 대한 태도를 말한 철학자가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플라톤입니다.
"모든 이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그들만의 힘든 전투를 하고 있기에."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er battle"
— 플라톤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철학자입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해 기록했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길러낸 인물로, 진정한 서양 철학의 시작점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정치, 윤리, 존재론, 교육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철학 체계를 세운 그는 ‘국가’라는 저서에서 철인정치, 이상국가를 이야기하며 인간의 정의와 조화로운 삶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그 실현이 어렵고 힘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걸 인정했죠. 그렇기에 그 누구한테든 쉽게 단정하지 말고, 가벼운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라도 먼저 건네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친절을 건낸다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라는 것이죠.
중국 전국시대의 유가 철학자 맹자(孟子, BC 372~289) 는 공자 이후 유학을 체계적으로 확립한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공자가 ‘예(禮)’와 ‘인(仁)’을 중심으로 사회 질서를 고민했다면, 맹자는 ‘인성(人性)’ 자체에 집중하며 인간 본성의 선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은 본래부터 ‘선(善)’한 존재이며, 그 선한 본성은 누구에게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선함의 핵심이자 맹자 철학의 본질은 바로 사단(四端)이라 불리는 네 가지 마음입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 - 부끄러움을 느끼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 겸손하게 사양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그리고 가장 첫번째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동정하는 마음"
—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다면, 누구든 놀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은 그 아이의 부모와 친구라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맹자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이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이라고 말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나와 어떤 관계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며, 이 본성이야말로 우리가 선해질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죠. 맹자는 이 측은지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곧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인간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으로 성장하는 씨앗이라고 보았습니다.
신경과학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신경계 질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뇌과학, 심리학, 인지과학 등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죠. 이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연구하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밝혀냈습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깊고 오래 간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죠. MRI 등 뇌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거절이나 외로움, 모욕 등 감정적인 고통을 겪을 때 뇌의 통증 중추(Anterior Cingulate Cortex) 가 활성화됩니다. 이는 실제로 신체적 고통을 겪을 때와 같은 뇌 부위입니다. 다시 말해, “속상해서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신경학적으로 진짜 아픈 상태입니다.
심리학자 엘리너 허먼(Eleanor Hermann)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 고통은 생존과 직결된 위협으로 인식되어 몸 전체가 긴장 상태에 빠지고, 뇌는 싸움(fight) 또는 도망(flight)의 반응을 준비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만나는 누군가가 예민하거나, 차갑거나,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면 그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어떤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이해의 태도, 신뢰하는 눈빛이 상대의 뇌 속에서 실제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의 릭 핸슨(Rick Hanson) 교수는 “친절한 접촉이나 말이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시켜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진정시킨다”고 설명합니다. 옥시토신은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며 불안과 경계를 줄이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죠. 결국 친절은 과학적으로도 인간을 서로 이어주고 치유하는 첫걸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참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 속 인물들의 고민, 아픔, 선택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는 다른 삶에 연민과 이해의 감정이 피어나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인생을 느낄 수 있는데요, 사막을 비행하다 불시착했던 조종사의 경험도 포함됩니다.
“그날 새벽, 나는 마치 죽음을 앞둔 나무 껍질처럼 메말라 있었다. 혀는 목구멍에 들러붙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기억들은 하나같이 조각난 유리처럼 흩날렸고, 삶의 의미조차 잊혀졌다.”
- 앙투안 드 셍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에서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간의 대지』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비행사로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직접 우편 비행기 조종사로 사하라 사막을 넘나들며 경험한 실제 체험이 바탕이 되었고, 문학적 성찰과 인간에 대한 철학을 함께 담은 이 책은 지금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작품속 1935년 12월, 주인공은 리비아 사막 한가운데 비행을 하는 도중 추락하게 됩니다. 40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온도, 거친 모래바람, 음식과 물이 떨어진 상황에서 구조를 기다립니다. 신기루같은 헛것을 보며 환각 상태에 빠지고, 극심한 탈수 증세로 혀가 갈라지고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태가 작품속에 묘사됩니다. 비행기를 버리고 끝없이 걷다가 결국 베두인 유목민을 발견하고 목숨을 구하게 되죠.
만약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비행사', '사막', '불시착', '구조'라는 단어들의 의미가 가볍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타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말이죠.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쏴라."로 유명한 최고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원래 이름은 캐시어스 마르셀러스 클레이 주니어 였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세계 복싱계에 혜성처럼 등장했고 이후 프로 무대에서도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며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싸움은 링 밖에서 더욱 치열했습니다.
"캐시어스 클레이는 백인들이 내 노예주에게 준 이름이다. 난 노예가 아니기에 그 이름을 반납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칸의 이름을 선택한다."
- 무하마드 알리 -
고질적인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미국에서, 알리는 이름을 개명하고 전쟁 징병을 거부하며 흑인과 평화를 대표하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순간말이죠.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5년형의 징역을 선고받으면서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습니다. 자신과 같은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들,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을 대표하여 약자의 편에 서고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감당한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불의에 맞선 당당한 모습 속에서 플라톤이 말한 '타인에 대한 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는 누군가의 싸움에 진심으로 귀기울이며 직접 앞에 나섰던 사람이었죠.
바쁜 세상입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루 24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죠. 나를 돌아보기도 바쁜 인생 속에서 타인을 생각하고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이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친절함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은, 가져야 할 가치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풀꽃』은 타인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숨어 있습니다.
사랑, 진실, 믿음, 희망, 공감, 평화, 자유, 그리고 안식… 이 모든 것들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친절함이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나의 작은 응원입니다. 지친 하루를 견뎌내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따뜻한 격려이자, 삶을 지탱하는 조용한 힘이죠.
그렇기에 우리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2500년전 대학자가 인류에게 남겼던 것이죠.
『오늘도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이라는 응원군을 보내줍시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