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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Jun 27. 2023

거북이와 토끼사이에서 균형잡기

내가 감정코칭을 배운 이유

  나는 작년 봄에 경계선 지능인 큰아이를 돌보기 위해 인생 계획에 없던 전업주부가 되었다. 사퇴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평소에는 아파트 앞 동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둘째 아이를 등원시키셨다. 이제 출근 안 하니 내가 민이를 등원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민이가 물었다. “엄마, 일하러 가지?” 순간 당황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민이는 눈치가 빠르고 샘이 많은 전형적인 둘째이다. 형이 뭘 먹었는지 뭘 했는지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자기도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한다. 아침에 민이의 등원은 내가 함께했지만, 오후에는 큰아이 센터 일정이 많아 하원은 주로 시어머님께 부탁했다. 퇴직 후 며칠간은 민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예전처럼 할머니 집에 가지 않고 (아파트 앞 동이 시댁이다) 바로 집에 와서 엄마가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민이는 하원 후 집에 와도 엄마가 없고 저녁에 형과 같이 들어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되었다. 며칠 후 밤이 되어도 아이가 집에 안 오려고 했다. 시어머님께서 아이와 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할머니: “왜 집에 안 가려고 하니?”     

  민이: “엄마는 형만 사랑해.”      

  할머니: “아빠도 계시잖아.”     

  민이: “아빠도 형만 사랑해.”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큰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너무 일에만 몰두해서 아이가 이렇게 되었나!’ 죄책감이 있었다. 작은 아이까지 잘못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민이는 혼자 잘 놀고 있는 형에게 다가가서 장난감을 뺏거나 먼저 때리기도 했다. 형인 호야는 여기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울면서 도망 다녔다. 이 꼴을 보고 있자니 나로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남편은 큰아이에게 동생이 때리면 너도 때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몸집이 큰 호야가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을 심하게 때려서 민이가 다칠까 걱정되었다. 결국 부모가 갈팡질팡하다 보니 두 아이가 싸울 때면 보통 먼저 도발을 시작하는 민이를 야단치는 경우가 많았다. 민이는 워낙 눈치가 빠르고 예민한 아이라 아빠와 엄마가 형만 감싼다고 억울해했다. 

 하루는 호야 센터 수업이 끝나고 상담하면서 둘째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는 둘째 아이와 단독으로 시간을 가지라고 권유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늦게 퇴근하는데 저녁 시간에 아이들 밥도 챙겨야 하고 큰아이 숙제도 봐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이와 단독으로 시간을 보내기는 힘들었다. 민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등원할 때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했더니 민이는 ‘치….’ 이랬다. 아침 시간에 민이와 나만 있을 때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는데 아이는 별로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 후로도 민이는 일부러 내 앞에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엄마 싫어’를 자주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절반은 시댁에 가서 잤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호야가 다니는 센터에서 상담할 때 민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하루는 상담사가 부모 관계검사를 해보겠냐고 물었다. 민이 기질이 ‘나로서는 좀 버겁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선뜻 검사하겠다고 했다. 기질 및 성격검사(TCI)를 했는데 부모가 질문지를 작성하고 결과를 분석해서 아이 기질과 성격을 파악하는 검사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상담 선생님이 결과를 설명해 주셨다. TCI 검사에서는 기질을 자극 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의 네 가지 하위 척도로 파악한다. 성격은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 자율성+연대감 4가지 척도로 본다. 검사 결과 민이는 자극 추구,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자기 초월성이 높지만, 연대감이 낮아 남 이야기를 잘 안 듣는 성향이라고 했다. 반면 호야는 위험회피가 높고 자극 추구,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자율성이 낮았다. 한마디로 두 아이는 물과 기름 같은 기질이라 잘 어울리기 힘들다고 했다. 나의 기질은 호야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상담 선생님은 민이를 많이 안아주고 ‘나 전달법’으로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아이에게 감정표현을 많이 하고 정서적 보상으로 즉각적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감정표현이 보통 사람들보다 매우 적은 편이라 아이들이 힘들어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감정코칭’이란 책을 추천해 주셨다.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을 아이 가졌을 때 읽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민이에게 적용해 보니 아이가 떼를 덜 썼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큰애와 센터에 가는데 ‘감정코칭 부모교육’이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니 집 근처 가족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한다고 했다. 며칠 후 가족센터로 전화했다. 안타깝게도 모집이 마감되었다고 하면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겠다고 했다. 할 수 없지,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몇 주 뒤 저녁 시간에 가족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지원자 한 명이 막판에 취소했다면서 오늘 첫 강의인데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오늘이요?’ 시간을 보니 저녁밥 차릴 시간이었다. 왠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파트 앞 동에 사시는 시어머니께 급하게 전화해서 아이들을 부탁했다. 그 후 두 달간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아이들을 시어머님께 부탁하고 감정코칭 수업을 들었다. 아이가 다 성장한 분들부터 나와 같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까지 여러 연령대 사람들이 같이 듣는 수업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들은 강의는 모두 주입식 강의였다. 그런데 감정코칭 수업은 수강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참여형 강의였다. 수업을 들으면서 감정코칭이 자녀 양육에서 아주 중요한 사랑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업을 들은 후에는 이프랜드에서 감정코칭을 주제로 밋업을 했다. 강의형식으로 밋업을 준비하다 보니 나 스스로 감정코칭에 대해 더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덧 감정코칭을 알게 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나 스스로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감정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살다가 기분이 푹 가라앉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왔다. 결혼 전에는 그럴 때마다 집에 틀어박혀 온종일 미국 드라마 등을 보면서 칩거하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큰아이 임신했을 때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큰아이 대할 때 같이 보낸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항상 뭔가 서먹했다. 어느 날은 시댁에서 키워주시던 큰아이가 어떤 일로 심하게 운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남편이 ‘네 아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아침마다 감정코칭을 배우면서 알게 된 행복일기를 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의 감정 상태를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전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고 서너 가지 정도 ‘~해서 감사하다’ ‘~라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을 다이어리에 쓴다. 이렇게 하니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아이들의 변화이다. 올해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 다녀올 때 일이다. 성묘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다. 산소 가기 전부터 둘째가 키즈카페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성묘 먼저 해야 하니 다녀와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점심 먹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내 옆에 와서 물었다.      


  민이: “엄마 나는 키즈카페 가고 싶어. 엄마 생각은 어때? 생각해 봐.”     

  나: “그래? 엄마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 형이랑 아빠는 어떤지 모르겠네. 아빠께 여쭤봐”      그러자 민이가 아빠 옆에 쪼르르 가서 묻는다.     

  민이: “아빠, 나 키즈카페 가고 싶어요. 아빠 생각은 어때요?”     

  아빠: “아빠는 키즈카페 가는 것 괜찮은 것 같아, 형 생각 물어볼래?”     

  민이: “형, 키즈카페 가래?”     

  호야: “아니, 난 괜찮아, 난 집에 있고 싶어, 너랑 아빠랑 다녀와”     


  이 모습을 지켜보는 데 놀라웠다. 반년 전만 해도 민이의 주특기는 ‘난 키즈카페 지금 당장 갈 거야’를 짜증 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니. 아이들이 나의 말과 행동에 아주 큰 영향을 받는구나!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은 아이들에게 훈육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감정코칭에서 배운 심장 호흡을 한다. 심장으로 숨을 쉰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깊게 5초간 들이마시고 5초간 내쉬고를 반복한다. 심장 호흡을 최소한 1분 정도 하면서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 본다. 심장에서는 전자기파가 방출되는데 심장 호흡을 하면서 나의 감정을 안정시키면 1~2 미터의 거리 안에 있는 상대방의 감정도 안정시킨다고 한다. 특히 내가 상대방에게 영향력이 큰 사람이면 더욱 효과가 좋다. 나는 민이가 막 짜증 내면서 울고 있을 때 아이 앞에 앉아 아이를 쳐다보면서 심장 호흡을 한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이 귀에는 들리지도 않고 나도 좋은 말이 나가지 않는다. 심장 호흡하면서 기다리면 아이가 어느새 울음을 멈춘다. 그러면 아이 눈물을 닦아주고 꼭 안아준다. 그리고 해당 사건에 대해 내 생각을 짧게 이야기한다. 마지막에는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이런 스타일로 민이를 훈육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감정코칭이 잘 안 되고 서툴게 끝날 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같은 기질의 사람이 민이 같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감정코칭이 꼭 필요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에게는 육아가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내게 감정코칭 기술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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