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와 직장인 사이에서(완)
어린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어린 시절이 좋았다 느끼는 이유는 자유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적으로도 자유롭다는 건 그만큼 책임질 것이 많다는 의미였다.
프리랜서를 위한 루틴교육을 처음으로 여러 교육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저작권, 세법, 직무교육 등등… 여러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식은 쌓여 갔지만, 계속해서 프리랜서로서 내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프리랜서 워케이션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2박 3일 경치 좋은 호텔에 머물며 여러 프리랜서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지원사업이었다.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글쓰기 루틴을 위해 매일 1만 자 이상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시작한 에세이 작가,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특히 꾸준함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했던 인스타툰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큰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파트타임과 인스타툰 작업을 몇 년째 꾸준히 병행하는 그 작가를 보며 스스로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꼈다.
또, 프리랜서로서 나의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따라 차근차근 내가 가진 능력들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적어 내려갔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채우기 힘든 빈칸을 보며 아 나는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문을 가진 채 프리랜서 워케이션에서 돌아왔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무언가 만들어 냈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 특히 내가 그린 일러스트나 기획한 것이 실물 굿즈로 만들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으로 자유롭게 먹고살고 싶다 생각했던 배경에는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막상 프리랜서가 되고 나니 무언가 만들기에는 자본적인 문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고 느꼈다. 물론 잘 나가는 프리랜서, 작가분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결과를 낼만큼 모든 것에 꾸준하고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기에 게으른 나는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나 싫다고 생각했던 취업인데, 생각이 정리되고 계기가 주어지자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고, 눈여겨봤던 기업 중 원하는 포지션에 지원했고, 몇 번의 면접 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빠르게 굿즈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다.
회사 안에서 다양한 굿즈를 만들 수 있게 되고 나만의 작업은 아니지만, 내 손을 조금이라도 거쳐간 데이터들이 다양한 제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일러스트 굿즈 제작, 디지털 굿즈 제작, 비즈공예 등 기존에 프리랜서로 하고자 했던 작업들은 취미로 돌아가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일정한 수입이 있다는 것은 통장에 8억을 가진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를 준다고 했던가. 프리랜서를 하겠다며 방황했던 시간 때문인지 매달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게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취미가 된 이전 일들은 오히려 부담감 없어졌기 때문인지 전보다 꾸준히 즐기며 작업하고 있다.
하지만 안다. 평생직장은 없고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어찌 보면 노예생활이라는 것. 무언가를 만들고 월급을 받는 생활이 즐겁다가도 가장 사적이어야 하는 공간이 화장실, 그 화장실이 매일 오전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것을 보면서 아 여긴 자유롭지 않은 닭장이다 다시 깨닫는다.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이곳에서 나가게 될 것이고, 그때는 개인 사업을 하던 프리랜서가 되던 독립해야 할 것이다. 그저 치기로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하며 지금의 나는 직장인에 머무르고 있다.
-프리랜서와 직장인 사이에서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