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보는 인플루언서가 있다.
사실 그녀를 인플루언서라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팔로워는 1.5만 정도,
옷을 파는 사람이지만 외모가 여느 옷 파는 인플루언서들과는 다르다. 많이 다르다.
피부가 굉장히 까만 편인데 매끈한 흑진주 느낌은 절대 노.
기미와 검버섯이 거뭇거뭇하고, 팔자와 눈가에는 굵고 자잘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스타일.
몸매는 너무 말라서 어떤 옷을 입어도 빈티가 흐르고,
유행하는 탕후루나 티라미수 케이크 같은 밈을 따라하는데 굉장히 삐그덕삐그덕거린다.
춤추는 걸 즐기는 느낌이 절대 아니다.
스스로도 어색해하면서 춤을 추니 보는 사람도 거북하고 악플도 폭주한다.
심플하게 보기 역겨우니 그만하라거나
공감하듯 돈 벌어먹기 더럽게 힘들어보인다거나
적나라하게 60대 할머니 같다거나 대놓고 못 생겼다는 댓글들까지.
그녀가 올리는 릴스들은 불편하고 판매 중인 옷들을 살 생각도 없고 악플들은 더더욱 읽기 힘들만큼 잔혹한데
나도 참 희안하다.
왜 자꾸 꾸역꾸역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영상들을 감상하고 옷들을 구경하고 악플들을 읽으며 이걸 어쩌나 하는 건지......
사악함도 본능인 걸까?
팔로우도 하지 않으면서 굳이 검색까지 해서 그녀를 찾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악플을 다는 것도 아니고 악플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그녀를 본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인지,
어느 부분이 나랑 닮았는데 용기를 낸 사람이 신기해서 찾아보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아닌 누가 욕 들어먹는 모습에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는 사악한 본성을 가진 건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루에도 두어번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들른다.
욕을 먹으면서도 정말 조회수나 댓글수로 인한 수입 때문인지 알을 깨고 나오고 싶은 꿋꿋한 용기인지
그녀는 하루에 서너편의 릴스를 찍어 올린다.
진심으로 대단하다 싶다.
어느 순간 저러다 무너질까 걱정도 되고......
그러던 중,
오늘 허를 찌르는 댓글 하나를 봤다.
저걸 보고 예쁘다며 부추기는
니들이 제일 나빠
그렇다.
쏟아지는 악플들 중에도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쟤들 언니 질투해서 저래요.
거울부터 보고 댓글다세요.
예쁘기만 한데 왜 험한 말 하세요, 그냥 지나가세요.
언니, 저런 사람들 어딜가나 있어요.
무시하고 예쁜 사진 계속 올려주세요!
표면적으로 보면 힘을 주는 사람들이 선인이다.
그녀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비록 잘 어울리지 않아도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하는
의류 판매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사람들.
하지만 한꺼풀 벗기고 보면 과연 그들이 선인일까?
누군가 전혀 재능이 없는 분야에 도전하려 들때
누가 봐도 가능성이 0%인 일을 밀고 나가려고 할 때
뜯어 말리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부추기지는 말아야 한다.
매부리코에 툭 튀어나온 구강구조를 가진 그녀를 보며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둘 중에서 하나일 거다.
첫째는 위에서 말한 댓글에서처럼
예쁘다고 부추겨서 그녀가 릴스를 멈추지 않고 올리기를 바라는 부류.
그녀가 좀 더 오래오래 욕 먹기를 바라는 부류.
그런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제일 나쁜 부류.
둘째는 평소에도 타인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잘 해주는 부류. 진심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
누군가 하는 모든 말에는 목적이 있다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정해놓은 답을 그대로 말해줌으로써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부류.
목적에 맞는 대답을 통해 대화에서 안정감을 찾는 부류...... 바로 나다.
난 누굴 만나 대화하든 그냥 원하는 답을 준다.
그래서 마음과 말이 다른 경우가 많다.
속으로 딴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며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준다.
남편 자랑을 하는 사람에겐 좋겠어요 부러워요^^
사랑 받는 아내라 점점 더 예뻐지나봐요!
돈 자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겠어요 여유가 부럽다^^
아기 사진을 보여주면
어머 아기가 어쩜 이렇게 귀여워요^^
애들 자랑을 하면 공부 잘해서 걱정 없겠어요^^
성격 좋아서 걱정 없겠어요^^
비율이 좋아서 모델 시켜도 되겠어요^^
눈이 어쩜 저럴게 예뻐요^^
상사가 그만 말하라고 하면
죄송해요 제가 좀 수다스럽죠^^ 주의하겠습니다!
동료가 회사 욕을 하면 같이 욕을 퍼부어주고,
또 다른 동료가 회사 찬양을 하면 그래 이런 회사 잘 없다며 같이 찬양을 해주고,
친구가 남편 욕을 하면 같이 욕을,
친구가 남편 다시 좋아졌다 하면 그래 잘됐다^^
그런 남자 없다 격려를 건넨다.
그래,
그냥 정황상 정해진 대답을 기계적으로 하는 거다.
나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가 느끼는 진심이 어떤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나부터가 내가 내 새끼 귀여우면 남이 뭐라 하든 내 눈에 귀여운 거고, 남편이 잘해주면 그걸로 되었지 자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애들 공부도 내 주관대로 시키는 거며, 회사도 내가 만족하고 다니면 그만이므로 그런 문제에 있어 타인이 뭐라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크게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더라도
진심이 말로 잘 나오지 않는다.
귀엽긴 한데 적당히 좀 해 라든가 지금 공부 잘해도 나중에 놓아버릴지도 모르니 번아웃 조심하라든가,
외모는 역변할 수 있으니 커 봐야 안다든가,
남편이 너무 잘해주면 뭔가 덮으려고 그러는 걸지도 모르니까 휴대폰 대화내역 몰래 한번 보라든가... 하는
비판적인 나의 진심을 결코 드러낼 수 없다.
그러다보니 듣고 싶은 말을 정확히 맞춰주는 나와의 대화가 즐거운지, 만나자는 사람들이 꽤 된다.
내게 본인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온갖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윤성씨한테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지?
그러니까요.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까지 하세요, 하고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주로 듣고 원하는 대답을 주니 사람들은 나의 속마음을 모른다.
그리고 점점 더 다가오고 나는 선을 넘어오는 그들이 부담스러워 그때부터 관계를 피한다.
혹은 한계점에서 뜬금없이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 다가오라고, 부담스럽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날 손절해버린다.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는 나는 필요 없다는 듯이.
사십년이 넘도록 내가 맺은 관계들은 늘 이런 패턴으로
진행되어왔기에 나는 오랜 친구가 없다.
없어도 상관없는데 오늘 인스타그램에서 저 사람의 댓글을 보니 내가 뭔가 잘못하는걸까,
싶은 반성이 시작되었다.
언니 예뻐요 계속 릴스 올려주세요 (그리고 욕 먹어요)
처럼 흑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함에 있어 진심을 다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를 하나도 사귀지 못한 건 그로 인한 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 객관적으로 못생긴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다 귀엽다 잘생겼다는 대답을 바랄 때
나의 정답은 늘 그래 귀여워^^ 였다.
이런 경우
진짜 친구가 많은 사람들의 모범답안은 무엇일까?
진심으로 친구의 아기는 내 새끼처럼 귀엽고
그래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래 귀여워^^ 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이기적이고 쌉t,
대문자 T인가 보다.
아무리 나랑 사이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가족들까지 맹목적으로 좋아지진 않는다.
솔직히 왜 자꾸 물어보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있어 너랑 나, 두 사람의 이야기만 하면 좋겠고
중요한 결정은 어차피 각자 인생 각자 사는 거
타인에게 질문하거나 의지하지 않으면 좋겠다.
정보나 조언은 차라리 온라인에서 객관적으로 검색해서 구하는 편이 훨씬 효용성이 높다고 본다.
이런 생각이니 누굴 만나도 피곤하다.
친구들을 만나도 답을 찾아 내뱉는 업무를 처리하는 느낌이다. 만나고 오면 고되다.
같이 사는 가족 빼고는 누굴 만나도 심지어 부모님을 만나도 그런 느낌이라 집에 오면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혼자 미디어를 보거나 요가를 하는 시간을 한 시간 이상은 가져야 피로가 풀린다.
쓰다 보니 어쩌면 나는 친구가 필요없는 사람인가보다.
사회성 부족을 이렇게 포장해서
정신승리해본다.
인스타그램 그녀가 내일 첫 라이브방송을 한다며
기대해달라는 피드를 남겼다.
댓글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또 양극화된다.
기대할게요^^ 와 입에 담기도 힘든 악플들.
인스타 라이브에서는 악플을 바로 지우지도 가리지도 못할텐데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패션 사업을 할 외모가 아닌데 차라리 모델을 쓰든가,
모델이 하고 싶으면 본인의 나이와 피부톤에 맞는 옷을
골라서 파는 게 좋을 텐데... 안타깝다.
왜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는 걸까?
아니지. 내가 뭐 그렇게 괜찮은 인간이라고,
남 걱정을 할 처지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내게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나도 놓치고 있진 않는지......
늙은 얼굴이나 뚱뚱한 몸은 둘째치고,
정답이라 생각하며 내뱉는 나의 말들도 누군가는 가식이라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하고 있지는 않을지.
사실 다들 모를 거 같은 비밀을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제목을 다시 한번 읊어본다.
탕웨이의 목소리로 내뱉어본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아니, 나쁘다기보다는 어리석은 것 같다.
언제쯤 똑똑해질 수 있을까?
언제쯤 타인과의 대화가 편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