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요가학원에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내가 다니는 요가 수업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보니 젊지 않은 내가 그 곳에서는 굉장히 젊은 편에 속한다.
당연히 수업의 난이도가 나에게는 높지 않다.
요가 선생님의 목소리도 수업 스타일도 굉장히 부드러운 편이라
그야말로 내게 있어 요가는 힐링타임,
하루가 아무리 힘들어도 저녁 요가시간 만큼은 마음이 가라앉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힘들지 않은 동작들로 서서히 근육을 풀고 평소 통증이 심한 부분에 자극이 갈때면 조금 더 머무르기도 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보내는,
50분 남짓의 참 좋은 시간.
어제는 전사자세에서 굽힌 무릎 사이로 두 팔을 교차하고 그 허벅다리를 들어올려 귀 옆으로 붙이는 자세를 시도했다.
하체가 뚱뚱한 내게 꼭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차저차 균형을 잡는 것에 성공했는데 허벅지부터 엉덩이 뒤쪽까지 쫙 당기는 게 정말 시원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 스트레칭 되면서
기분 좋게 느껴지는 통증,
깊게 호흡하며 세포들이 생기를 찾는 느낌.
이 맛에 요가하지!
그 자세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평소 요가매트 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
내겐 너무 어려운 자세가 누군가에겐 쉬울 수 있어도 궁금해하지 않으려 하고,
가끔 특정 아사나를 먼저 포기하고 무너져도 주눅들고 싶지 않으니까.
보통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성향들이 많다보니 대부분 서로 그렇게 무심하게 대하기도 하고,
요가 수업 전 혹은 후에 의례 이어지는 차담을 싫어하는 수강생들도 많이 봤다.
젊은 층이 많은 요가 수업에 가면 더욱 그런 게 느껴진다.
속으로 누굴 부러워할지 몰라도 겉으로는 서로 관심 두지 않고 자신의 아사나에 집중하는 분위기.
누가 어떤 자세로 얼마나 머무르든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
그러나 내가 다니는 요가수업은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연령대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서로 관심도 많고 사적인 이야기도 편하게 나누시는 편이다.
아사나 중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한다.
이거 너무 아프지 않아? 여기에 힘을 주라는 거야? 선생님, 저 좀 봐주세요 등등.
나는 젋어서(?) 열외라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만 집중을 하긴 했는데
어제는
내가 귀 옆으로 허벅다리를 붙이고 한참을 머무르던 어느 시점부터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 거다.
그리고 그렇게 열 카운트가 지나고 스무 카운트가 지나자......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
한 사람의 박수가 두 사람의 박수가 되고 세 사람의 박수가 되더니
어느 순간 갈채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
예상치 못했던 환호에 요가 선생님도 웃으시고 나도 웃음이 터져서 무너지며 아사나에서 벗어났다는 웃긴 이야기.
아주머니들의 주책과 타인의 관심을 싫어하는 내가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왠지 따뜻한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요가를 하며 처음으로 뿌듯했다. 전쟁같은 직장생활로 곤두박질 친 자존감도 치솟았다.
유연한 편이라 모든 자세가 되지만 근력이 부족해 한 가지 아사나에 오래 머무르는 건 잘 못한다.
어제는 한 가지 아사나에 오래 머물러서 칭찬을 받았기에 더 기뻤던 것 같다.
한 가지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좋다.
이 가지 저 가지 옮겨다니지 않고 한 가지에 오래 머무르며 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벌써 네 번이나 직업을 바꾼 사람으로서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한 집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비록 아직 전세 세입자라 2년마다 철새처럼 집을 옮기고 있지만 언젠가 내 집을 사서 이사하면
그 집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고 싶다.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는 삶이 좋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도전하는 삶을 원치 않는다.
한동안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며 호주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베트남에서 1년씩 사는 누군가의 호화스러운 삶이 부럽기도 했지만 잠깐의 선망을 삼키고 보니 나는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
신포도의 합리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언어와 지역 분위기에 적응해나가며 삶을 개척하는 건 내게 맞지 않다.
작고 사계절이 있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사람들과 내 입에 익숙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늙고 싶다.
요가도 아쉬탕가보다는 하타요가가 좋다.
한 자세에서 오래 머무르며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처음엔 어렵지만 오래 있으면 또 적응이 되고
한 가지 자세에서도 힘을 주는 방향에 따라 자극이 다르게 오는 게 재미있다.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같은 동작 안에서도 스스로 강도를 조절한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혼자서도 고요히 집중할 수 있고 원하는 자세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운동.
나는 드라마도 봤던 드라마를 보고 또 보는 게 좋다.
삼십년째 드라마 시청이 주된 취미지만 한번도 가볍게 텔레비전을 틀어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나오는 아무 드라마를 시간 보내는 목적으로 본 적은 없다.
굉장히 심사숙고해 작품을 선택하고
그렇게 선택한 드라마는 주야장천 본다.
보고 또 보고 다른 거 보다가도 다시 틀어서 보고 인상 깊었던 회차는 다시 찾아서 보고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도 찾아보고 메이킹도 찾아보고 리뷰도 찾아보고......
아주 지겨울 때까지 보는 거다.
소설도 마찬가지,
새로운 작품보다는 예전에 봤던 소설들을 다시 찾아 읽고 또 읽는 편.
음식도 마찬가지,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기 보다는 아는 메뉴를 기깔나게 하는 맛집이나 레시피를 찾아 헤매는 편.
맛집도 가던 곳을 주로 가고,
음악도 듣던 음악을 주로 듣고,
사람도 만나던 사람을,
영화도 봤던 영화를 몇 번이고 보는......
이런 스타일은 뭐라고 해야 할까?
도전적이고 개척하는 삶의 반대되는 긍정적 표현은 무엇이 있을까?
끈기나 집념이 떠오르지만 너무 거창하고
게으른 거라고 하긴 억울하다.
한 가지에 머물러있다 하여 멈춰있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돌고 있는 팽이랑 비슷하다.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잔잔한 호수처럼 늙고 싶다.
한 계속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어제와 같은 호수는 없다.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고 미생물이 생기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달팽이도 고양이도 지나가면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호수,
오늘과 다른 내일의 호수가 된다.
그렇게 살고 싶다.
같은 공간이지만 매일 다르게, 행복하게.
매일 걷는 길을 걷고 또 걷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도 같은 하루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일 새로운 기분으로, 결론은 행복하게.
여행도 번거롭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짐을 꾸리기도 풀기도 힘겹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은 접어둔다.
처음엔 돈 혹은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내가 아닌 무언가가 접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스로 꼬깃꼬깃 접어둔 거였다.
긴 세월 추구해온 내 삶의 방향성은 ‘안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한 가지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
그러니까 이혼도 하지 않기로 다시 한번 결심한다.
한 남자에게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연한 의지를 다져보는 저녁이다.